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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영화 이야기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by Back2Analog 2018. 5. 7.

역시 난 '마블'보다 'DC' 세계관이 맞는 거 같다.

2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졸대 깨다, 졸다 깨다...

아직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영화 스포를 하자면, 이보다 더 허무할 순 없다?

만약 후속작이 안 나온다면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는 훗날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는 영웅물 영화로 기록되겠지만... 그럴리가 없지.

암튼... 포스트모던적 관점에서 오랜만에 영화 관람평을 한번 써 보도록 하겠다. 


1.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개인은 영웅들이 우주를 구하거나 말거나 별 관심이 없다.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다.

'다른 사람이 입은 큰 상처보다 내 손에 가시가 더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지구가 물에 잠겨도, 지구 반대편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그 아픔은 내 손에 박힌 가시의 아픔보다 못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뇌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손에 상처가 났을 때 반응하는 뇌와 내 손에 상처가 났을 때 반응하는 뇌의 영역이 같다고... 인간은 원래 공감의 존재라고... 그건 내 손에 가시가 박히지 않았을 때 얘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손에 박힌 가시로 인해 모두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봐 달라고 목 놓아 소리를 높여도, 또 다른 자신들은 자신의 손에 박힌 가시를 보며 아파할 뿐이다. 


2. 듣도 보도 못한 마블의 영웅들이 정말 난잡하게 등장한다.

모든 전지전능한 영웅들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대중들은 더이상 한 명의 전지전능한 영웅이 등장하는 영웅물에 열광하지 않는다. 왜? 포스트모던 시대에 모든 영웅은 죽었고, 개인이 영웅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탈영웅주의 시대, 또는 개인의 재발견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현실 속 영웅을 부정한다. 내가 바로 내 삶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만약 "내가 바로 영웅이오" 라고 나선다면 대중들로부터 소위 '꼴깝' 취급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경험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에 참여한 대중들은 영웅으로 자처한 지도부를 대놓고 부정했다. 광우병 촛불의 실패를 경험한 근대의 영웅들은 박근혜를 파면한 광화문 촛불혁명 과정에서는 지도의 역할이 아닌 촛불을 담는 플랫폼으로 결합했다. 

영웅들이 개떼처럼 등장하는 영웅물에 진정한 영웅은 없다. 그리고 그 영웅이 아닌 영웅들은 영화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내 손에 박힌 가시를 시원하게 빼 줄 영웅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3.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처럼... 거대악의 승리로 끝난다.

더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진실이 승리한다는 말처럼 헛된 거짓말은 없다. 힘을 가진 자가 진실을 독점한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말은 힘 없는 사람들의 절규다. 그 말은 소수가 힘으로 진실을 독점하고 있고, 다수가 은폐된 진실로 인해 고통 받고 일을 때, 힘 없는 다수를 결집시키기 위한 슬로건으로 쓰인다. 만약 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에 가시가 박혔을 때 '손에 가시가 박히지 않는 법'이라는 책과 인문학 강의를 찾아다니는 자기계발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가시가 박힌 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힘 없는 자들의 진실은 승리할 수도 있다. 마치 우리가 촛불로 박근혜를 파면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싸워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 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쪼개고 쪼개져 파편이 된 진실은 그저 개개인의 주관적 인식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개인인 나의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규정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고, 근대에 발이 묶여 있는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적을 외면한 채 신념화된 자신의 주관적 인식으로 적아 아를 나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실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악은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킨다. 

별 쓰잘데 없는 영화 하나 보고 와서 너무 잡설이 길었다. 난 대중들과 상식을 공유하기 위해 적어도 천 만 이상이 본 영화는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공감할 수 없다면, 나의 뇌는 내 손에 가시가 박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대중들의 손에 박힌 가시를 외면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