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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타협은 결핍의 산물? - 북미정상회담 성사될까?

by Back2Analog 2018. 5. 25.

트럼프가 어제(5월 24일, 현지 시각)북미정상회담 테이블을 걷어찼다.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그럴 줄 알았다."부터 "아직 뒷 문은 열려 있다."까지...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예측하는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은 아직 51:49이다. 현재 북한과 미국은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고, 각자 자존심과 실리 사이에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 4월 27일 열렸던 남북정상회담 이후 많은 일이 너무 순조롭게 풀려온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7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온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공포를 생각한다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4월 27일부터 북미정상회담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6월 12일은 채 두 달이 안되는 '찰나'일 수 있다. 하지만, 빠른 시대적 변화와 화려한 특수효과에 익숙해진 21세기 포스트모던 인류에게 무려 한 달 반은 매우 지루한 시간이다. 세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모습에 열광했고,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기대치에 미지근한 물은 끼얹은 것은 정상회담 장소라고 생각한다. 싱가폴? 약간 뜬금 없다. 가끔 전문가들은 사건보다 사건의 의미에 더 주목한다. 사건에 의미가 더해져야 전문가들이 그 잘난 이빨을 털어가며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싱가폴로 정해지자, 세계인의 기대감에 살짝 바람이 빠졌다. 그리고 어제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언까지 그야말로 스펙타클한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 ​

그리고 세계의 70억 인구(맞나?)가 이 전개를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서 매우 다채롭게 인식하며 반응하고 있다. 70억 개의 감정을 모두 다 열거하고 싶지만... 대충 늘어놓자면, 즐기거나, 안타까워 하거나, 이해득실을 생각하거나... 또는 나처럼 '진단'하고 싶어하거나일 것이다. 진단을 함에 있어 가능하면 주관적 기대를 제거하고 싶지만, 진단도 인간의 몫이라 그저 노력만 할 뿐이다. 진단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부터 어제,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까지의 과정을 복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과 미국, 나아가 북미정상회담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의 결핍, 즉 ”아쉬움"을 살피는 것이다.​


​먼저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과정에 대해 복기를 해 보겠다.​​

  • 3월 8일 :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 3월 31일 :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 방북​

  • 4월 27일 :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 4월 29일 : 존 볼턴, 북핵 문제 리비아식 해법 주장​

  • 5월 7~8일 : 북중정상회담​

  • 5월 10일 :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재방북​

  • 5월 10일 : 납북 미국인 전원 석방​

  • 5월 10일 : 개최 일자(6월 12일)와 장소(싱가폴) 확정 ​

  • 5월 11일 : 강경화 외교부 장관 방미​

  • 5월 11일~24일 : 한미연합공중전투훈련 “2018 맥스 선더” 실시​

  • 5월 16일 : 북한, 맥스 선더를 이유로 남북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 선언​

  • 5월 16일 :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북핵문제 해결은 “리비아식’이 아니라 “트럼프식” 발표​

  • 5월 22일 : 한미정상회담​

  • 5월 24일 :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 5월 24일 :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한국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을 돌며, 북한 또한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 북중정상회담을 하는 등 적지 않은 외교적 노력을 해 왔다. 그 사이에 회담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간을 보기 위해 강도를 달리하며 서로 쨉을 주고 받아 왔으며, 특히 북한은 기존의 방식과는 과감하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강경 발언에는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불사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기가 북미정상회담을 할 적기라고 이야기한다. 북한과 미국이 모두 서로에게 아쉬운 게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북정상회담과 연관이 있는 이해 당사국이 처해 있는 결핍을 살펴보자. 미국은 뭐가 아쉬워서 쨉도 안되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려고 하는 걸까? 한국의 입장에선 애가 탈 노릇이지만, 북한과 미국은 그동안 적당한 긴장관계 속에서 챙길 건 대충 챙겨왔다고 생각한다. 북한, 나아가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은 미국을 지탱하고 있는 방위산업체의 좋은 명분이 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싸드 배치다. 북핵이 없었다면 미국이 중국의 앞마당에 어떻게 CCTV를 설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미국 정가의 권력 구조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트럼프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미국적이면서 그로인해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욕을 먹고 있는 대통령이다. 트럼프를 보고 있으면 21세기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 미국의 속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천부적인 “장사꾼”에, 트위터를 장착한 “쇼맨쉽”, 부끄러움을 모르는 도덕성까지... 미국인이 트럼프를 싫어하는 맥락은 대한민국 국민이 이명박근혜를 부끄러워하는 것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여튼...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가 미제국주의를 지탱해 왔던 방위산업체의 이해관계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는 특이점은 남북관계에 청신호로 작용할 수 있는 미세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트럼프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올해 11월에 예정되어 있는 미국 중간선거다. 현재 미국은 트럼프의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모든 나라의 선거가 그렇지만, 미국의 역대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당선 과정에서 러시아 게이트 등 의혹이 많은 트럼프에게 있어, 중간 선거의 패배는 매우 치명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미국인들의 환심을 사 중간선거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관계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트럼프가 북미관계를 잘 풀더라도 그것이 미국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예측이다. 그러한 예측은 최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남북관계를 다시 최악으로 내몰 수 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북한과 악마의 계약이라도 할 것이다.​ 원래 정치란 것이 그런 것이다. 나의 유불리에 전 세계의 운명을 걸 수 있는...


다음은 북한이 계속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는지 살펴보자. 그동안 자존심 하나로 벼랑끝에서 버텨왔던 북한이지만, 이번에는 만만하면서도 힘든 상대를 만났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이전의 북한답지 않은 행보를 자주 보여왔다. 미국의 한 외교 담당자가 북한을 가리쳐 “Respect Enemy”라고 할 정도로 북한은 미국이 존경할 만한 외교 능력을 지닌 나라다. 그런데 이전의 관성과 김정은의 새로운 스타일 사이에서 미세한 엇박자가 난 듯 하다.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북미정상회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볼턴과 펜스의 연이은 스트레이트성 쨉에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며 마치 관성화된 듯한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다. 스트레이트성 쨉을 피하며 훅같은 쨉은 날린 것이다. 바람 소리는 거셌지만, 그 훅을 트럼프가 맞을지는 아마 북한도 예측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겁을 주려고 날린 훅에 트럼프는 오히려 얼굴을 들이 댔다. (역쉬, 미치광이 트럼프!!!) 그리고 돌연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다. ​


러시아와 일본은 몰라도 여기에 중국의 입장을 더하지 않을 수 없지만, 글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이전에 썼던 글의 링크로 대신하고자 한다. (미국과 중국의 힘의 균형이 만든 신냉전체제와 사드배치-링크클릭)미소 냉전이 군비경쟁으로 표현된 정치 대결이었다면, 현재 명실상부한 G2인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다분히 정치를 넘어선 경제 대결의 측면이 강하다. 예전의 중국이었다면 여지가 없었겠지만,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화해가 중국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만 있다면 중국은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의 요구로 삽입되었다고 알려진 판문점 선언 내용의 다음 구절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중국은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통해 힘의 논리가 작동되었던 정치 시대를 빠져나와, 이해득실의 시대인 경제 시대로 깊숙히 진입해 있다. 그러한 중국을 예의주시해 온 북한도 정치에서 경제로 무게중심을 신중하게 이동중이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선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알려진 북미수교일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주사위가 던져져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다. 이 주사위를 막을 사람은 누구일까? 트럼프? 김정은? 아니면 타임지가 인정했던 Negotiator, 문재인 대통령? ​타협의 결핍의 산물이다. 김정은과 트럼프 중간에서 협상을 이끌어 내려면 그 둘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