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익숙함과의 투쟁이다.

얼마전 출근 카플을 하고 있는 한 청년과 작은 논쟁이 있었다. 일정 시간 동안 강제적으로 폐쇄된 공간 안에 있어야 하는 카플은 건강한 논쟁을 하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다. 차를 태워주는 사람이 갑질을 하지 않고, 차를 얻어타는 사람이 갑질의 위계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그건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일단 접어 두고...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인정해온 것과 다르지 않은 경험으로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불편한 감정을 가져 왔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을 불편하다고 매도하면 익숙하다는 단어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억울한 상황을 잘 참지 못하는 편이다. 갑자기 ‘억울함’이라는 단어에 빠지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만, 오늘의 주제는 ‘익숙함’과 ‘불편함’이므로 ‘억울함’은 이전에 썼던 다른 글의 링크로 대신한다. (소통과 억울)


논쟁의 발단은 이렇다. 내가 맥북을 쓰는 것이 의외라고 말한 그 청년은 자신은 불편해서 맥북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맥북은 매우 편한 디바이스라고 항변했다. 청년은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했고, 난 그게 그게 아니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에게 맥과 윈도우를 쓸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윈도우를 선호할까? 참고로 맥과 윈도우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윈도우보다 맥을 더 많이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맥은 비싸다. 예전엔 넘사벽으로 비쌌고, 지금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하지만 나에게 맥은 그 비쌈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편리함을 제공해 준다. 맥이 주는 뽀대와 아우라는 덤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맥 패밀리들... 어? 아이폰은 어디 갔지? 아! 사진!!!


윈도우와 비교해 맥이 가지고 있는 편리함 100가지 중 딱 5자기만 열거하자면...

1.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맥의 인터페이스는 매우 직관적이고, 심플하다. 대표적으로 화면 스크롤의 예를 들어보면 위도우는 화면 오른쪽에 있는 스크롤바의 관점으로 화면을 통제하지만, 맥은 화면의 입장에서 스크롤을 한다. 즉 맥에서는 마우스의 롤을 내리면 화면이 내려가고, 올리면 화면이 올라간다. 윈도우는 그 반대이다. 물론 윈도우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그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맥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윈도우의 불편함에 우리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2. 터치 패드의 편리함

난 맥을 쓰게 되면서 마우스를 안 쓰게 되었다. 미세한 그래픽작업을 하지 않는 한 맥의 트랙패드는 마우스보다 훨씬 편리하다. 한 손 가락, 두 손가락, 세 손가락, 네 손가락 제스쳐를 인식해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3. 멀티테스킹

맥은 원한다면 한 화면에 여러 개의 창을 띄우지 않고 여러 개의 창에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띄울 수 있다. 창과 창의 이동은 세 손가락으로 트래팩드를 쓸어주면 된다. 

4. 안정성

윈도우는 쓰면 쓸수록 느려지고, 에러가 많이 생긴다. 난 맥을 약 8년 간 써 오면서 단 한 번도 맥OS를 다시 설치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안정적이다. 덤으로 맥은 바이러스에도 강하다. UNIX 기반인 맥은 해커들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얻어 낼 수 있는 득보다 공이 더 들기 때문이다.

5. 예쁘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두...

이건 너무 주관적인가? 하지만 맥에 익숙해 지고 나면 윈도우의 그 조잡함은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익숙함과 편리함에 해당되는 예가 몇 가지 더 있다. 바로 한글 자판인 두벌식과 세벌식...

난 세벌식 자판을 쓴다. 두벌식은 한글의 제자원리와 무관하게 한글을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했다. 세벌식은 한글의 제자원리에 맞게 한글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한다. 우리가 두벌식 자판에 익숙해져서 생기는 폐해는 다음과 같다.


1. 도깨비불 현상

두벌식은 한글을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받침이 없는 글자 다음에 쓴 초성은 모음을 치기 전에는 앞 글자의 종성에 위치한다. 채희태라는 이름을 두벌식으로 쳐 보자.

채 - 챟 - 채희 - 채흴 - 채희태

이런 현상을 도깨비불 현상이라고 한다. 영어 자판의 원리를 아무 생각도 없이 그대로 가지고 와 한글 자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께서 살아 계셨다면 기껏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를 만들어 주었더니 이따구로 대접한다고 노발대발 하실 일이다.

2. 터널증후군?

쌍자음과 복잡한 종성으로 인해 두벌식은 쉬프트 키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자판을 칠 때 쉬프트를 많이 누르면 손목을 좌우로 꺾을 수밖에 없다. 세벌식은 숫자키까지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쉬프트 키를 적게 눌러 상대적으로 손목에 무리가 덜하다.

3. 리드미컬한 타이핑

만약 beatles를 친다고 가정해 보자. ‘l’이외의 자판은 모두 왼손으로 칠 수밖에 없다. 즉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치는 것이 아니라 왼손 여섯 번에 오른손은 한 번만 치게 된다. 구조적으로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면서 칠 수 없기 때문에 리르리컬한 타이핑이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쿼티(qwerty)자판은 기계식 타자기 시절 빠른 타이핑으로 인해 글쇠가 서로 꼬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타자 속도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자판의 배열이다. 쿼티 자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드보락(dvorak) 자판이다. 영어 타이핑을 많이 하는 프로그래머 중에서는 쿼티 자판 대신 드보락 자판을 쓰는 사람도 꽤 있다고 알고 있다.


자 이제 두벌식과 세벌식 중 어떤 것이 더 익숙하고, 불편한지가 아니라 어떤 것이 더 편리하고 불편한지를 따져 보자. 두벌식이 이미 익숙하니까 편리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마지막으로 오래전에 이미 막을 내린 VHS와 Beta의 비디오 테이프 표준 논쟁을 다시 살펴보자. 비디오 플레이어 시장 초창기에 소니는 Beta 방식으로 시장을 선점하려고 했으나 JVC가 VHS 방식을 별도로 내 놓으며 소위 마케팅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표준 전쟁이 시작된다. 소니가 비디오 테잎의 화질과 내구성 측면에 집중했다면, JVC는 화질과 내구성을 포기하고 시간에 집중했다. 


“최초 경쟁 분야는 녹화 시간이었다. 처음 개발된 베타맥스 방식은 최대 한 시간밖에 녹화를 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영화 한 편을 담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었다. 이에 반해 VHS는 카세트의 크기가 크고 테이프 감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2시간 분량을 녹화할 수 있었다. 이에 맞서 소니는 "BII" 모드를 개발하여 녹화 화질이 안 좋은 대신 시간을 늘리는 기술을 선보였다. 비디오테이프에 사용하는 자기 테이프가 가늘어지면서 두 가지 표준 모두 용량이 늘어났다. 1980년대에 베타는 3시간 15분을 녹화할 수 있는 반면, VHS는 3시간을 녹화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롱 플레이 (LP) 기술이 개발되면서는 VHS는 8시간까지 녹화할 수 있었다.

베타맥스 방식은 VHS와 비교했을 때, 고화질의 영상을 제공했고 영상 잡음도 적었으며 루마-크로마(luma-chroma 누화)(crosstalk)도 적었다. 흔히 이런 이유 때문에, 베타맥스가 VHS보다 앞선 기술이었지만 마케팅에서 패배하였기 때문에 퇴출된 기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기술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으며 VHS 방식도 당시 대부분의 사용자들에게 '충분히 뛰어난' 화질을 제공했다. 화질은 테이프의 보존 상태나 각 기계의 상태 같은 다른 요소들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in 위키백과)


소니와 JVC의 표준화 전쟁을 익숙함과 편리함 논쟁으로 끌어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연결고리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소니가 개발한 Beta는 이후 그 앞선 기술력으로 인해 방송국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대략 1997년 DVD가 개발되면서 사라진다. 난 소니와 JVC의 시장 표준화 전쟁을 ‘기술력’과 ‘편리함’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장은 ‘기술력’보다 ‘편리함’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기술력’을 이긴 ‘편리함’은 시간이 지나 앞서 ‘기술력’을 이긴 그 얄팍한 시장의 논리로 ‘익숙함’에 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무리하게 연결시켜 보자면 중요한 것은 기술력도, 편리함도 아닌 그저 익숙함이라는 것? 마치 진실과는 무관하게 인정투쟁에 몰두하고 있는 작금의 사회 현상을 보는 듯 하다. 익숙함을 전파시킬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사회의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신념도, 당위도, 국가 권력도 아닌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만이 익숙함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급하게 결론을 맺자면... 

그래서 혁신은 모든 익숙함과 투쟁하는 것이라고 이 연사 핏대 세워 주장하는 바이다. 익숙함에는 편리함도, 인류를 위해 필요한 기술력도 무력화시키는 전지전능한 힘이 있으니...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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