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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책 이야기

유시민의 작지만 치명적인 편견, “역사의 역사”

by Back2Analog 2018. 9. 24.


마눌님이 가지고 온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훔쳐 읽다가 본격적으로 읽어 보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 노동자 유시민... 때로는 사이다 같은 논리로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지만, 그가 정치적으로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나는 그에게 대놓고 편견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문열의 네가지 없는 발언을 듣고 분노해 그가 쓴 삼국지를 불 태운 것과 다르지 않은 이유다. 사실 이문열의 삼국지는 내가 읽은 그 어떤 삼국지보다 문장이 쫄깃쫄깃하다. 조조를 간웅이 아닌 영웅으로 해석한 관점도 신선했고... 황석영의 삼국지는 그 담백함에 빠져 두 번 정도 읽었고, 고우영의 삼국지는 내가 화장실에서 고뇌할 때마다 늘 곁을 지켜주는 벗같은 존재다. 고우영 삼국지를 만화라도 업심여기지 말았으면 한다. 고우영의 삼국지 해석은 그 누구보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다.

다시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로 돌아와서...
유시민의 글은 그에 대한 나의 편견과, 추석 때 읽으려고 가지고 온 두 권의 책을 제치고 빠져들만큼 매력적이다. 하긴 그 재능은 이미 대학 시절, ‘항소 이유서’를 쓸 때부터 빛이 났으니...
이정도 칭찬을 해 주었으니 유시민에 대한 나의 편견은 어느 정도는 완충 되었다고 보고... 하지만 유시민은 “역사의 역사” 3장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부분에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나한테 들키고 말았다.

“이슬람 문명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으며, 역사는 그 어두의 진원지를 이슬람의 교리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와 세속 권력의 결합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세속의 국가 권력과 한몸으로 태어나 한몸으로 성장했다. 처음에는 달콤했을지 몰라도 이 것은 결국 해소하기 어려운 독이 되었다.”
“역사의 역사” 100p

이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위험한 세력이라는 편견은 철저히 서구의 관점이다. 동서냉전에서 소련에게 승리한 미국은 그 과정에서 공룡처럼 거대해진 방위산업체의 유지를 위해 새로운 적을 필요로 했다. 그 새로운 적이 바로 이슬람과 덤으로 얹혀진 북한이었다. 부시가 미국에 이익에 반하는 후세인을 공격한 것이 과연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였을까? 그 과정에서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경험한 이슬람이 부모와 동족의 원수에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 평화적인 복종이었을까?
지식의 훌륭한 나열과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유시민의 작지만 치명적인 편견... 북한이 예측불가능하여 미국의 군사적 명분이 아닌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관점과 무엇이 다른가! 난 유시민이 그 지식에 걸맞는 “역사의 역사”를 언급하려 했다면 적어도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 “오리엔탈리즘” 정도는 가지고 와, 보다 가열차게 서구의 우월성으로 도배되어 있는 문명사에 메스를 들이댔어야 한다고 본다. 5장에서 마르크스의 역사법칙을 소개하며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종말론을 곁들인 것처럼...

어쨌든 난 오랜만에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유시민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가졌던 나의 편견에서 벗어나 풍부한 지식의 향연에 빠질 수 있었다. 유시민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분명 우리 시대가 가진 소중한 자산임을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이 되면 그동안 사놓고 안 읽은 유시민의 책을 좀 거들떠 보아야 겠다. 그와는 달리 편견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