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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8 07:09

혐오와 분노

분노는 애정의 끝자락,증오는 기대의 맞은편...애정이 없으면 분노도 일어나지 않으며,증오는 기대의 크기만큼 증폭된다. 동물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은분노도 할 수 있고, 그 분노가 증오로 나아갈 수도 있다.하지만 혐오는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혐오는생산력 확대를 위해 필요했던 전문성의 분화,부도덕한 자유와 맞서온 정의로운 평등,그리고 사소한 차이를 구분하고, 논쟁하고, 투쟁해 왔던 근대의 역설적 산물이다. 분노와는 달리 혐오는 문제의 해결이 아닌 분리이며,증오와는 달리 혐오는 분리된 대상을 죽여 없애지 않는한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괴물이다. 그래서 나는...인종과, 계급과, 성 정체성과, 세대와, 그리고 이념 간에 존재하는 모든 혐오를 혐오할 것이다!신이 아닌 인간이 혐오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혐오 그 자..

2018.12.07 00:33

지식의 종말과 근대적 허무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844~1900)니체는 중세를 벗어나 근대들 향하고 있는 어느 날,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근대에서 벗어나고 있는 현재의 어느 날인 오늘, 인간이 죽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인류는 버젓이 살아 그들을 위한 번영을 거듭하고 있으니, ​대신 인간이 발견하거나 만들어 낸 모든 지식의 종말을 주장하고자 한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통해 중세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면, 난 지식의 종말을 통해 근대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그 양을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만 의미가 있었다. 만약 10개의 유한한 지식 중 8, 9개의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지식의 양으로 인간의 지위를 결정해도 좋다. 한발 물러나 지식의 총량을 특정..

2018.12.06 12:12

나나 잘 하자!!!

​인류가 근대를 관통하며 몰입한 것은 오직 인류가 나눠 먹을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일이었다. 어떤 파이를 만들지, 어떻게 나눌지는 나중의 문제였다. 파이를 효과적으로 키우기 위해 많은 역할이 분화되었다. 심지어 파이를 키우는 것과는 무관해 보이는 역할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무관해 보이지만 모든 것은 파이를 키우기 위한 목적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파이를 키우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사회로부터 하나씩 격리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파이는 충분히 커졌다. 하지만 이번엔 파이를 효과적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등장해 익숙해진 각자의 역할이 문제였다. 그 역할은 모두 파이를 키우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고, 그래서 다른 역할로 인해 발생하는 사소한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묵인하기도 하고, 묵인되어지..

2018.11.20 18:59

아파트가 파괴한, 그리고 파괴하고 있는 마을 생태계 (소득주도 성장 시리즈 2)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 창문 너머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저기가 온통 아파트 공사판이다. 원래 아파트가 지어질 저 마을에는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소한 생산과 소비의 생태계가 있었을지 모르다. 전통 시장이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의 코 묻을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구멍가게도 있었을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에 올려질 떡을 공급하는 허름한 방앗간도 있었을 것이고, 어두침침한 전파사에는 납과 인두기만 있으면 무엇이든 고치는 순돌이 아빠가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을 ‘재생산’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의 필요가 곧 생산이 되고, 그렇게 생산된 필요는 정이라는 덤이 얹어져 거래되는… 우리가 “응답하라, 1988”에서 느꼈음직한 불편하지만..

2018.11.20 18:46

소비주도 성장에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소득주도 성장 시리즈 1)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우리의 빈약한 상상력은 가끔 소득주도 성장을 섣부르게 ‘수당’과 연결시킨다. 아마도 소득주도 성장이 2017년 핀란드에서 최초로 시작한 기본소득제도와 비슷한 맥락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전에 ‘왜’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왜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고, 문재인 정부는 왜 소득주도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소득이 아닌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성장하려면 절약이 아닌 소비가 미덕이 되어야 한다. 중복적으로 소비하고 과하게 소비해야 과잉생산의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공황을 막을 수 있다. 중복 소비를 부추기는 대표적..

2018.11.10 20:17

민선 7기, 은평구 공공정책과 문화정책의 방향

민선 7기, 은평구 공공정책과 문화정책의 방향 은평구청 정책실장 채희태 1. 序 : 문화의 시대적 역할우리가 누리고 있는 근대 문명은 ‘분업화’된 ‘전문성’의 결과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자연에 의지했던 농경에서 벗어나게된 인류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산업사회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분화시켰고, 그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축적해 왔다. 그렇다면 문화 전문성도 산업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분화되었을까? 주지하다시피 문화를 뜻하는 영단어 ‘culture’의 어원은 ‘경작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cultura’다. 문화는 인류의 직접적 생존 방식이었던 노동(경작) 행위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미 산업사회 훨씬 이전부터 그 본질인 노동과는 무관하게 성장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동과 문화의..

2018.11.08 09:23

가치 판단의 기준과 유, 불리...

나한테 불리해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었’다. ​반대로 아무리 나한테 유리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이 근대 인류가 추구해왔던 ‘절대’ 가치였다. ​상대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존재하며 추구했던 이러한 절대 가치는 근대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포스트모던한 개인, 즉 ‘포스트모더니쿠스(단어 저작권자 채희태... 함부로 갖다 쓰지 마시길... ^^)’에 의해 절처하게 부숴지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가치는 다시 선(agathon : 득이 된다)과 악(kakon : 득이 되지 않는다)이라는 개념이 출발했던 그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일까?​트럼프 중간 선거에 대한 이런저런 논평을 듣고 있자니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절대 가치와 상대 가치는 서로 ..

2018.11.07 23:53

확대를 바라는 생산력과 분배를 요구하는 생산관계의 모순...

​한반도 평화공동체 실현을 위한 국제정책포럼에서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남북화해시대, 통일의 관문인 은평의 역할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윤대규 경남대 명예교수는 기조발제를 마무리하며 “지금 지구상에는 이미 과거 냉전시기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체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체제 경쟁? 소련과 미국의 사회주의대 자본주의 경쟁은 구소련의 해체로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애초에 맑스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병렬적 체제 경쟁을 통해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고 나면 자체 모순으로 인해 사회주의로 리니어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레닌이나 마오, 그리고 호치민같은 피끓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2018.10.25 22:03

노동을 중심으로 한 세대 권력의 변화

노동 후 세대 = 은퇴 세대노동 중 세대 = 부양 세대노동 전 세대 = 배움 세대 이 중에서 누가 세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을까?농경사회에서는 은퇴 세대에 막강한 권력이 있었다. 농사에 있어서 만큼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본 그들이기에 노동 중인 부양 세대에게 가르칠 것이 많았고, 은퇴 세대에 대한 노동 세대의 부양은 그 가르침의 댓가였을 것이다. 삶의 끄트머리를 살고 있는 은퇴 세대는 그 권력을 사후 세계까지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고, 농경 사회에 정착된 제사 문화는 그렇게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업사회에 진입하면서 권력 구조의 개편이 일어났다. 공장에서 노동을 해야 하는 부양 세대는 더 이상 은퇴 세대에게 받을 가르침이 없었다. 생산력의 확대를 위해 날로 발전하는 기계는 은퇴 세대가 ..

2018.10.13 17:06

풍등과 쓰레기,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의 원인으로 풍등을, 그리고 풍등을 띄운 스리랑카 노동자를 범인으로 지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매우 익숙한 패턴이다. 문제를 빨리 해결... 아니 덮기 위해 가장 만만한 대상을 찾아 책임 전가하기...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언론은 발빠르게 비정규직 선장에게 그 어마어마한 책임을 전가했다. 차라리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게 더 낫다. 소는 이미 잃었고, 외양간까지 고치면 지나친 비용이 들기 때문일까? 부실의 책임을 힘 없는 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가 왜 문제의 해결보다 책임의 전가에 몰입하게 되었는지 논리적 비약과 괴변을 동원해 그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복잡한 우연과 간편한 필연... 외양간이 부실하다고 반드시 소를 잃지는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