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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2

절박함을 감추는 훈련... 모두가 자신이 처한 삶에 절박함을 느낀다. 그 절박함에 평균 따위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지 않았으면 모르되, 모두의 손톱 밑에 ‘절박’이라는 가시가 박혀 있고, 모두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주는 통증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 가시가 주는 통증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손톱 깊숙히, 어떤 사람은 손톱 끝에 가시가 살짝 걸쳐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상대적으로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모두 100이다. 평균(고통의 절대적 수치?)적인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네 손에 박힌 가시는 나보다 안 아플 거 같은데? 내 손에 있는 가시 좀 먼저 빼 주면 안될까?”여기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해 보다. 진짜 아픈 건 사회적 약자... .. 2018. 8. 2.
장미대선에 대한 기대와 우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 속에 치뤄지고 있는 장미 대선... 페북의 타임라인을 보고 있으면 그 기대도 절박하고, 우려도 절박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페친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절박함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관적 기대와 객관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고, 찢겨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견에 대한 막말과 분리를 통해 생각과 생각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리적 38선을 그어 왔다. 그 중간에 끼어 여러 진영의 주장을 관망(?)하는 것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과연 절박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절박함을 넘어서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일까? @back2analog 2017.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