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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사례는 이식하는 것인가, 참조하는 것인가?

by Back2Analog 2017. 9. 24.

정책의 가장 큰 성공요인은 빛나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주체 간에 합의이다. 합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 정책은 특정 주체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러한 정책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우므로...

우리가 정책의 성공적인 결과, 즉 사례에 주목하는 이유는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또는 합의되기 전 특정 주체의 이익(가치?)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조급함에 기인한다. 

"저 봐라, 저기는 저렇게 훌륭한 사례가 있지 않느냐, 우리도 닥치고 저렇게 해 보자."

성공한 정책은 '사례'라는 이름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간의 합의를 폭력적으로 건너뛰면서 그 사례를 이식하고자 하는 특정 지역을 황폐화시킨다. 만약 주체간의 합의를 위해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참조하려 한다면, 사례는 그 지역의 특수성과 결합해 한 층 더 빛나는 정책(사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한때 화성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음악을 이루고 있는 음들이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울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피타고라스가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소리들의 주파수를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음계를 만들지 않았다면, 모짜르트가, 비틀즈가, 레드제플린이 어떻게 모든 인류를 관통하는 음악적 유산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화성학은 이런 울림이 더 자연스럽고, 좋더라... 라는 수학적 합의의 결과이다. 하지만 모든 음악가들이 그 합의에 갇혀 있었다면 음악은 지금까지도 신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했던 중세 음악의 지루함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례가, 또는 학문의 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사례나 학문은 다른 지역의, 또는 과거의 합의일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다른 지역의 사례를 참조할 뿐, 이식하려 하지 않는다. 현실 문제의 극복을 위해 학문을 참조할 뿐, 현실을 학문의 이론 안에 가두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미래의 모습은 사례를 병렬적으로 확대한 결과도, 논쟁에서 승리한 학문의 결과도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합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