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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먹으란 말이냐? (석 달 간의 당뇨 투병기 3)

by Back2Analog 2022. 3. 9.

3. 도대체 뭘 먹으란 말이냐!

당뇨에 걸린 후 주로 유튜브를 통해 공부한 결과 당뇨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바로 식이요법과 운동이다. 운동은 그렇다 쳐도 식이요법은 참 어렵다. 의사는 뭘 먹지 말라는 얘기만 할 뿐, 뭘 먹으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처음 며칠은 뭘 먹을지 몰라서 진짜 풀만 먹고살았다. 슈퍼에서 샐러드용 새싹을 사 간도 안 한 채 씻어 먹기도 했고, 상추를 입에 욱여넣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간이 배어 있는 반찬은 물에 씻어 먹었다. 가끔은 두부만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모태관종인 난 당뇨에 걸린 사실을 페북에 알렸다.

 

 

그동안은 먹는 낙으로 살았는데, 이젠 살기 위해 뭐라도 먹어야 했다. 평소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군바리들이 휴가를 나오면 눈에 밟히는 것처럼, 당뇨에 걸리고 나니 주변에 당뇨환자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곳곳에서 당뇨 관리를 위한 "비기"들을 댓글로 알려 주었다. 한 번은 생일을 맞은 지인에게 커피와 케이크 쿠폰을 카톡으로 보냈는데, 어떻게 지내느냐는 지인의 인사에 당뇨에 걸려 고생한다고 답을 했더니 여주즙 한 박스를 보내주었다.

 

난 마음을 독하게 먹고 생존 모드로 돌입했다. 먼저 식사량을 반으로 줄였다. 식사량을 줄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음으로 일을 줄였다. 모 시민단체와 진행하고 있던 장기(3~5개월?)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일을 내려놓았다. 중간에 일을 그만두다니... 내 인생에서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술자리에 가더라도 눈치 보느라 중간에 빠져 나오지 못해 늘 마지막까지 남아 있기 일쑤였는데… 언제, 얼마를 받는다는 기약도 없이 기획일을 해준 한 친구에게는 기획료를 빨리 달라고 앓는 소리를 했다. 급하게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친한 선배에게는 페이를, 그것도 선불로 줄 거 아니면 일 시킬 생각도 하지 말라고 네가지 없게 말하기도 했고, 공주에서 월세 마련을 위해 기타 강습을 하고 있었는데, 강습생과 강습비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각을 세우기도 했다.

 

살면서 남의 부탁을 거절해 본 적이 많지 않다. 하지만 당장 내가 죽을 판인데 누구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그동안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라는 태도로 살아왔는데, 난 삶의 태도를 180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하자!

 

① 식이요법, 이렇게...

당뇨 투병기의 첫 번째 글, 마지막에 올렸던 운동하는 의사 "닥터딩요"의 유튜브가 당뇨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닥딩은 당뇨의 개념을 시장과 돈의 흐름에 비유해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고, 어려운 의학 개념이 닥딩의 독특한 억양으로 인해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재밌고 쉬운 당뇨 강의, 인정!!!

식이요법에 관해 닥딩은 내가 지킬 수 있는 정답에 가까운 조언을 해 주었다. 사실 정답은 중요하지 않다. 정답을 지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킬 수 없는 정답은 무의미하다. 소위 자신의 가치가 정답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는 진보 꼰대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나도 사랑하는 옆지기로부터 진보 꼰대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옆지기는 곧 사과를 했지만, 그 말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 잔상처럼 남았다. (워워~) 또 삼천포로 빠질 뻔했다. ㅠㅠ

닥딩의 정답에 가까운 조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당뇨를 극복하기 위해 뭘 먹어야 하는지 물어본다. 이 말은 다이어트에 무슨 음식이 좋은지 물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만처럼 당뇨도 많이 먹어서 걸린 병이다. 당뇨에 좋은 음식은 사실상 없다. 뭘 먹어서 고칠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덜 먹으면 된다.
당뇨환자는 식단을 통제하기 어려운 외식을 피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한다면 밥은 무조건 두 숟가락 덜고 먹어라!

 

닥딩의 말을 들으니 내 당뇨 인생에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당뇨에 걸린 지난 석 달 동안 나에게 당뇨를 가져다준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믹스 커피와 그 좋아했던 라면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솔직히 라면은 딸이 먹을 때 가끔 한 젓가락 빼앗아 먹은 적은 있다.) 어쩔 수 없이 흰쌀밥을 먹어야 할 땐 두 숟가락이 아니라 무조건 반을 덜고 먹었다.

 

② 그리고, 운동...

다음은 운동이다. 즐길 수 없는 것을 모두 피하고 나니 시간이 많아졌다. 그 시간을 운동, 주로 걷기에 투자했다. 아침 먹고 5Km를 걷고 오면 곧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점심을 먹고 나면 또 5Km를 걸었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는 간격이 좀 있다. 저녁을 먹고 다시 5Km를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아무리 추워도 대략 1Km를 걷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한 번은 서대문에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나간 적이 있는데, 나간 김에 안국동에 있는 후배를 걸어서 만나러 가기도 했다.

 

아이폰의 나이키 앱, 석 달 동안 464.4Km를 걸었다 얘긴가?

 

다음으로는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아파트는 16층인데, 특별히 바쁜 일이 있지 않으면 무조건 걸어 올라갔다. 처음엔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팠지만, 지금은 잠깐 딴생각을 하면 집을 지나쳐 올라가기도 한다. 그리고 드디어 도전 과제가 생겼다. 집 바로 앞에 가현산이라는 산이 하나 있는데, 산의 정상인 세자봉까지 올라가려면 무조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큰 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난 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중간에 숨을 몰아쉬며 산에 오른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다시 산에 오드러다로 이 계단만은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 했었다. 하루는 이 정도면 그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제가 오른 계단 수를 댓글로 달아주시는 분께는 특별한 선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숨소리가 의외로 섹쉬하니 소리는 끄고 들어 주시길... ^^

인천 집에 있을 땐 집을 중심으로 매일 코스를 변경하며 반경 5Km 이내를 샅샅이 돌아다녔고, 공주에 있을 땐 주로 제민천을 걸었다. 자취방에서 나와 제민천을 한 바퀴 돌면 얼추 5Km가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실 비가 올 땐 안 걸었다. 제민천을 걸으며 가끔 사진을 찍는 재미도 쏠쏠했다.

 

to be continued…

석 달 간의 당뇨 투병기 4,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