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대표와 과대대표...

Posted by Back2Analog
2018.05.13 11:44 사회+문화+교육/about 거버넌스

마치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처럼... 협동조합을 빡씨게 전파하고 계시는 주수원 선생님이 내 페북에 ‘과소대표’와 ‘과대대표’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오셨다. 내가 가진 유일한 전문성은 바로 비전문성이다. 그 진지한 물음에 나는 비전문성을 발휘해 어설프게 답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현문에 우답이다... 



현문 : 과소대표와 과대대표...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마을(교육)공동체, 도시재생 등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인 것 같다. 시간, 공간의 한계로 의견수렴은 대의제로 구현된다. 그 가운데 항시 나타나는 문제가 과소(내지 과대) 대표성인 듯.

특히나 새정부 들어서 정부, 지자체, 교육청이 함께 정책을 논의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 커진다. “왜 매번 똑같은 사람이 대표를 하느냐”부터 “숫적으로 많지 않은 그룹의 의제가 왜 올라오느냐”, “왜 우리의 이슈는 의제에도 올라가지 못하느냐”까지... 그동안 여러 경험이 쌓여왔다고는 하지만, 정책이 더 커지고 관계자가 많아지다보니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의 한계도 드러나고 때로는 갈등도 생긴다. 어떤 이슈를 숫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또 수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대표를 하는게 맞는지도 문제다.

더 어려운건 정책적인 언어화가 어렵거나, 언어화를 해도 현재의 흐름과 달라 힘을 얻지 못하는 경우들이다. 현재의 지역기반 혁신에 있어 정부, 지자체, 교육청의 자원이 크고 이를 주도하다보니 정책과의 결합성이 각 사업들의 성패로도 연결된다. 민간의 자원이 축적되고 성장하는데는 시간이 걸리니 당분간 이 흐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민관협의체를 구성할 것인가인데 이 부분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결국엔 거버넌스가 화두인가 싶기도 하다.


우답 : 문제의 해결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는 답이 있지만 동시에 답이 없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2017년 11월 5일에 올렸던 "문제의 해결(링크 클릭)"이라는 포스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작년 장미 대선 중, 민주당의 X맨 홍준표는 문재인 후보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이념 검열을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은 홍준표의 이념 검열에 뜨뜨미지근하게 대응해 진보진영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비판에 시달렸고... 다음은 관련하여 제가 교육도시 서울 카톡방에 올렸던 글입니다. 


“비난(또는 문제의 지적)은 심플하고 자극적이며, 변명(또는 문제의 해결)은 복잡하고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죠. 그게 바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하지만, 결국 누가 문제를 잘 지적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선거가 가진 딜레마... 진보의 탈을 쓴 무책임한 근대주의자들은 가장 용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문제의 해결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가장 비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지적만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면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되었겠습니까?

지난번 대선 TV 토론회에서 때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를 지지하느냐고 물었죠. 문재인 후보는 명확한 답변을 피했습니다. 진보진영에서 난리가 났죠. 가부장제에 유교문화가 결합된, 거기다 꼴통 개독들이 판치는 한국사회에서 적어도 동성애 문제는 아직 당위 보다는 합의가 더 중요한 이슈입니다. 더더군다나 선거판에선... 만약 문재인 후보가 당위적 판단으로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했으면 당선이 될 수 있었을까요?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말했습니다. 사회적 관계의 피조물인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마치 세월호 사태 후 책임을 전가할 사람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던 상황이 떠오릅니다. 최초의 책임자는 비정규직 선장이었죠... 

구조화된 교육 문제와 관료문화의 문제를 교육감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제발 누군가에게는 책임을 전가해 자신은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근시안적 태도를 버리셨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보면 간음한 여인에게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돌을 던지실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감도, 선생님도, 그리고 저도 부족하디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현답을 할 수 없다는 밑밥을 어느정도 깔았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주수원 선생님의 질문(?)에 세 가지로 답하고자 합니다.


1. 개념의 혼재

시대라는 것이 무우 자르듯, ‘어제까지는 근대였고 오늘부터는 탈근대라고 합시다!’라고 할 수 없듯, 현재 근대의 터널을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개념의 혼란과 가치 분균형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정과 부실’입니다. 얼마전 서울시의 진보교육감 후보 경선(촛불 교육감?)에서 이성대 후보는 경선결과 발표 직후, 부정의 정황이 보이므로 경선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선관위 조사 결과를 받아들여 아름답게 진행 중...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원래 득표 결과는 발표하지 않기로 했는데, 모 신문사에서 조희연 후보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이 되었다고 발표를 해 버렸습니다. 즉, 부정을 이유로 경선을 무효화하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성대 후보가 자신은 20%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지만, 부정한 경선이므로 이 선거는 무효다라고 끝까지 주장했다면... 아주 볼만했을 겁니다. 선거의 목적이 ‘대중들의 선택’에서 ‘부정 유무의 확인’으로 바뀌었을 테니까요. 만약 신이 관장하는 선거라면 모를까... 인간은 부정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습니다.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신념은, 대중들이 외면해서도 신이 부여한 것이므로 물러설 수 없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죠. 

다음은 민과 관입니다. 거기다 학까지 끌어 넣어 보면... 개념이 아주 엉망진창이 됩니다. 어공인 저는 민인가요, 관인가요? 시민의 대표로 선출된 자치단체장과 의원 나리들은? 관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센터의 직원들은? 국가로부터 가르칠 자격을 부여받은 교사는? 이러한 개념의 혼재가 민・관・학 거버넌스의 발목을 잡고 있고, 각 주체들은 매우 자의적이고, 편의적으로 주체를 구분합니다. ㅋ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바로 이성과 본성입니다. 인간은 동물인가요, 인간인가요? 참 바보같은 질문이죠? 인간은 생존 방식으로 ‘관계’를 선택한 순간부터 동물적 본성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성이라는 것이 등장했죠. 이성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인간같지 않은 인간은 이성으로 본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을 말하죠. 인류는 신이 지배했던 중세를 벗어나면서 인간은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의 오만이 시작되었죠. 그것이 바로 근대입니다. 완벽한 인간에게 구질구질한 관계는 필요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근대... 하지만, 지금은 그 오만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죠...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통해 이성으로 억눌린 동물적 본성에 주목한 이유는... 인간은 이성을 가진 인간인 동시에 영원히 동물이 가진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 개념에 대한 가치 부여

개념의 혼란은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아직도 이성의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은 이 모든 개념에 가치와 질서를 부여합니다. 뜨뜨미지근한 부실보다는 부정이라는 말에 더 자극적으로 반응하고, 관은 악마고, 민은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을 하는가 하면, 인간의 동물적 본성은 나쁜 것이니 이성으로 완벽하게 억눌러야 한다는 가능하지 못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죠. 

부실은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 허용한 부정의 가이드라인입니다. 부실이 확대되어 인간이 합의할 수 없는 부정으로 나아가는 걸 막아야 하겠지만, 마치 참과 거짓만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지털 신호처럼 0과 1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인간 사회죠... 

저도 구청에 어공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관념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관을 절대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민과 관을 나누기 전에... 민도 관도 모두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먼저 선부터 긋고 시작하죠. 어쩌면 이 부분이 저와 김태정의 가장 큰 차이... ㅋㅋ 

어쩌면 인간은 이성을 갖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동물로서 가질 수 있는 많은 능력을 포기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자연재해를 미리 감지하고 움직이는 들쥐가 가지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인간은 이성 밖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도 동물적 본성을 숨기고 있으면서, 그걸 밖으로 표현하는 인간을 분리하죠. 이것이 참 무서운 건데... 히틀러가 인종학살을 한 이유는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과 다른 것을 분리해 제거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거죠. 즉 완벽히 이성적인 인간은 감정도 그만큼 억제됩니다.


3. 인정의 결합, 그리고 기다림

마지막입니다. 저는 주수원 선생님의 질문에 이렇게 우문으로 답하고자 합니다. 거버넌스는 인정의 결합이어야 한다. 부실의 쓸모와 부정의 가치를, 민과 관이 각자 다른 역할 속에서 길러온 근육을, 그리고 동물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의 이성의 한계와 본성의 필요성을...

그리고 맨 처음에 링크한 글에 있는 것처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전 사실 거버넌스에 들어오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가치를 잣대로 들어오면 되네, 안되네 하지만... 이해관계의 충돌이 없다면, 그런 거버넌스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전 가끔 이야기 합니다. 이해관계로 인해 현실을 합의할 수 없다면, 미래를 합의하자. 우리가 거버넌스를 하는 이유는 현실의 이해관계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해와 이해의 연대와 결합으로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어떤 우월한 이해가 다른 이해를 천박하다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은 이해관계에 놓여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 또한 심각한 가치와 신념의 이해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주수원 선생님은 현재 협동조합이나 거버넌스 등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 속에서 ‘과소대표’와 ‘과대대표’라는 핵심적인 질문을 끄집어 내셨습니다. 저는 아둔하여 그 촌철살인의 질문에 이렇게 장황하게밖에 답할 수 없음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ㅠㅠ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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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정치에는 관심을 많이 안두네요. 하기사 요즘 정치인들이 제대로 하는것이 없네요 ㅡ.ㅡ
    •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플라톤) ^^

'거버넌스'라 쓰고 '투쟁'이라 읽는다?

Posted by Back2Analog
2018.05.12 11:07 사회+문화+교육/about 거버넌스

혹자는 내가 주장이 강하며, 고집이 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신념이 주관적이고, 상대적일뿐만 아니라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주장하며, 그 고집은 도저히 꺾을 수가 없다. 중세가 오만한 신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더 오만한 인간의 시대였다. 니체는 이야기했다. 신은 죽었다고... 신도 이야기했다. 니체도 죽었다고... 중세가 신이 통치한 암흑의 시대였다면, 근대는 인간이 통치한 학살의 시대였다.
인간의 오만이 인간을 학살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깨닫기는 했으되 아직 그 부족함을 인정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이 바로 근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류의 몸부림이다. 그리고 절대이성과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은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절대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혹자는 가치와 도덕을 배제한 루만의 사회체계 이론을 보수적이라 비판한다. 사회학의 쓸모는 처방이 아닌 진단에 있다. 진단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만약 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가 환자가 암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진단에 임한다면?
사회문제의 해결(=처방)은 도덕과 가치를 배제한 객관적 진단의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이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합의의 당사자들이 때로는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합의로 나아가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객관적으로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아직도 신념의 오만에 빠져있는 근대주의자들이 좀비처럼 탈근대 사회를 활보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시장의 실패와 국가 정책의 실패를 겪은 후 탈근대적 겸손으로 자신의 단점을 상대방의 장점으로 ‘보완’하기 위해 시작된 거버넌스에 나의 신념으로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해온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대체’하려는 투쟁의 관점으로 임한다. 대놓고 자신의 밥그릇을 내 놓으라고 만들어진 테이블에 앉을 바보는 없다. 자신의 신념에 그토록 자신이 있다면 근대적 방식으로 그 잘난 투쟁을 하면 된다.

 ​@back2analog

니체라고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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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자요 니체는 허무주의자였지요. 그의 유명한 말이 신은 죽었다 라는 말.. 지금도 기억에 나네요. 하지만 진정으로 죽은 사람은 니체였지요. 전 신은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마다 믿음이라는것이 있지요.

교육부는 기껏 생각해 낸 것이 또 ‘공모’인가?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9 13:54 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교육부는 기껏 생각해 것이 공모인가?

온종일 돌봄 선도사업, 10 시・군・구 공모 대한 비판!


교육부는 지난 5 3일, 보도자료를 통해 3년간 80억원의 예산으로 226 시・군・구 10개의 온종일 돌봄 선도사업 시・군・구를 공모해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 하나인온종일 돌봄 추진하기 위해 관계 부처뿐만 아니라, 여러 지자체들과도 협의를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과거와 다름 없는 공모 방식을 내 놓은 것이다.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쉽고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거나 확산시킬 있는 방법은 자신의 기준으로 없는 자들을 세우는 것이다. 

먹고 싶은 사람은 앞에 , 근데 빵이 10 밖에 없어!”


민선 5, 6 지자체는 정부의 무능으로 빚어진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과 협력해 다양한 창의적인 실험들을 추진해 왔다

대책 없는 도시개발로 주민들의 정주권이 위협받을 지자체는 도시재생으로 주민들의 정주권을 지켜왔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지자체 예산 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이제 확산을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 확장된 주민들의 참여는 자치분권의 중요한 토대이다. 주민들의 참여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게 권한을 이양하겠는가!


이미 226개의 지자체는 부족한 예산으로 각자의 처지에 맞게 다양한 돌봄 정책을 추진하고 있. 대표적인 정책  하나가 바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혁신교육지구이다. 혁신교육지구는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일반자치와 교육자치, 그리고 마을과 학교가 칸막이를 넘어 협력하고 있고,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마을교육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교육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민선 5, 6 전국의 지자체가 이루어낸 성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공모를 통해 지자체를 세우고 서로를 협력이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 내몰고 있다하여 나는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온종일 돌봄 선도 사업을 다음의 가지 관점에서 비판하고자 한다.


첫째, 돌봄을 교육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행위를 비판한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학교 교육을 말한다. 이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만들어 합의이다. 소위 교육 전문가의 전문성은 주로 자신의 전문 영역인 교육의 특수성과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작동해 왔다. 교육 문제를 해결할 있는 자격과 권한은 오직 교육 전문가들에게 있고, 모든 교육 문제의 원인은 비교육적 잣대로 교육을 재단하는 사회의 탓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교육에 대한 전문성의 부재로 인해 빈약한 상상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비전문가들은 눈에 보이는 학교를 통해서만 교육을 인식한다. 이러한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합의가 만들어 것이 바로 학교 교육 중심의 대한민국 교육이다. 이럴거면 교육부는 학교 교육부로, 교육청은 학교 교육청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맞다

대한민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부가 해야할 일은 교육의 범위를 학교에서 학교 밖으로, 교육의 기간을 학령기에서 연령대로 확대하는 것이다. 교육부의 온종일 돌봄 선도사업 이면에는 엄연한 교육의 영역인 돌봄을 교육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많은 지자체들이 어렵게 추진해 왔던 다양한 교육 실험을 교육부가 과거로 역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돌봄을 성장이 아닌 선발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행위를 비판한다!

근대교육이 가지고 있는 가장 장점과 한계는 바로 선발이다. 선발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변별해 왔지만, 반면 선발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선발 이전의 교육은 사회화(=성장)였. 즉, 중세에는 지배계급인 귀족을 교육을 통해 선발하지 않았다. 산업자본주의의 성장과정에서 선발 중심의 교육이 기여해 왔던 점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발 교육이 가지고 있는 긍정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성장 없는 과도한 선발이 아동・청소년의 성장, 시민의 성장, 국가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선발에만 치우쳐 있는 교육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보완할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의 성장 기능이다. 교육부는 자신이 정한 기준으로 지자체를 세우고, 중에서 10 지자체를 골라내는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 맞게 각자의 돌봄 생태계를 구축할 있도록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백년지대계인 교육의 중요한 축이 될 온종일 돌봄을 추진하고 있는 교육부에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일반행정과 교육행정이 칸막이를 넘어 협력하고 있는 혁신교육지구를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둘째, 마을과 학교가 협력하고, 교육과 돌봄이 통합하는 지자체 단위의 마을교육생태계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셋째, 교육부는 하향식 경쟁 공모를 지양하고, 지자체 민과 관의 합의를 존중하는 상향식 정책 추진을 지향해야 한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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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7 14:29 사회+문화+교육/영화 이야기

역시 난 '마블'보다 'DC' 세계관이 맞는 거 같다.

2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졸대 깨다, 졸다 깨다...

아직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영화 스포를 하자면, 이보다 더 허무할 순 없다?

만약 후속작이 안 나온다면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는 훗날 포스트모던을 대표하는 영웅물 영화로 기록되겠지만... 그럴리가 없지.

암튼... 포스트모던적 관점에서 오랜만에 영화 관람평을 한번 써 보도록 하겠다. 


1.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개인은 영웅들이 우주를 구하거나 말거나 별 관심이 없다.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다.

'다른 사람이 입은 큰 상처보다 내 손에 가시가 더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지구가 물에 잠겨도, 지구 반대편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그 아픔은 내 손에 박힌 가시의 아픔보다 못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뇌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손에 상처가 났을 때 반응하는 뇌와 내 손에 상처가 났을 때 반응하는 뇌의 영역이 같다고... 인간은 원래 공감의 존재라고... 그건 내 손에 가시가 박히지 않았을 때 얘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손에 박힌 가시로 인해 모두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봐 달라고 목 놓아 소리를 높여도, 또 다른 자신들은 자신의 손에 박힌 가시를 보며 아파할 뿐이다. 


2. 듣도 보도 못한 마블의 영웅들이 정말 난잡하게 등장한다.

모든 전지전능한 영웅들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영웅이 된다. 하지만 대중들은 더이상 한 명의 전지전능한 영웅이 등장하는 영웅물에 열광하지 않는다. 왜? 포스트모던 시대에 모든 영웅은 죽었고, 개인이 영웅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탈영웅주의 시대, 또는 개인의 재발견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현실 속 영웅을 부정한다. 내가 바로 내 삶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만약 "내가 바로 영웅이오" 라고 나선다면 대중들로부터 소위 '꼴깝' 취급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경험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에 참여한 대중들은 영웅으로 자처한 지도부를 대놓고 부정했다. 광우병 촛불의 실패를 경험한 근대의 영웅들은 박근혜를 파면한 광화문 촛불혁명 과정에서는 지도의 역할이 아닌 촛불을 담는 플랫폼으로 결합했다. 

영웅들이 개떼처럼 등장하는 영웅물에 진정한 영웅은 없다. 그리고 그 영웅이 아닌 영웅들은 영화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내 손에 박힌 가시를 시원하게 빼 줄 영웅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3.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처럼... 거대악의 승리로 끝난다.

더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진실이 승리한다는 말처럼 헛된 거짓말은 없다. 힘을 가진 자가 진실을 독점한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말은 힘 없는 사람들의 절규다. 그 말은 소수가 힘으로 진실을 독점하고 있고, 다수가 은폐된 진실로 인해 고통 받고 일을 때, 힘 없는 다수를 결집시키기 위한 슬로건으로 쓰인다. 만약 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에 가시가 박혔을 때 '손에 가시가 박히지 않는 법'이라는 책과 인문학 강의를 찾아다니는 자기계발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가시가 박힌 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면... 힘 없는 자들의 진실은 승리할 수도 있다. 마치 우리가 촛불로 박근혜를 파면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싸워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 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쪼개고 쪼개져 파편이 된 진실은 그저 개개인의 주관적 인식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개인인 나의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규정한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고, 근대에 발이 묶여 있는 소위 진보주의자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적을 외면한 채 신념화된 자신의 주관적 인식으로 적아 아를 나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실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악은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킨다. 

별 쓰잘데 없는 영화 하나 보고 와서 너무 잡설이 길었다. 난 대중들과 상식을 공유하기 위해 적어도 천 만 이상이 본 영화는 의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공감할 수 없다면, 나의 뇌는 내 손에 가시가 박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대중들의 손에 박힌 가시를 외면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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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의 영화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2주동안 달리고 있다는 흥행작이였군요. 울 반려자님과 함께
    영화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리뷰가 도움이 많이 되네요.
    참 오늘 어버이날인데 아드님이 카네이션 선물해주던가요?

    ㅋㅋㅋ 오랜만에 들렸지요. 그렇다고 서운해하지 마세요. 늘 마음은 이곳에 있으닌까요.
    • 말씀을 어쩜 이렇게 예쁘게 하시는지... 괜히 파워블로거가 아니시네요. ^^
      전 딸만 둘인지라 아들한테는 카네이션을 못 받았구요. 둘 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어 크게 기대도 안하고 있습니다. ㅠㅠ
      저두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요즘 하던 공사가 다 망해서... (아재게그...)
    • 저런..제가 좀더 연구를 해야겠어요. 아마도 따님이 둘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드님으로 잘못 이해를 했나 봅니다. 용서하세요. ㅎㅎㅎㅎ 자주 왕래하다보면 가족사도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사진으로 청춘에 이별을 고하다...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6 18:36 back2analog

우연한 기회에 옛날 앨범을 보게 되었다. 

반 백을 넘겨서 그런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청춘의 그 빛나던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래도 만들었는데... ㅠㅠ (홍추가 청춘에게... 링크 클릭)


내가 지나온 청춘의 구석구석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가끔은 불현듯, 맥락도 없이 과거의 어느 시간이 갑자기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난 미래형도, 현재형도 아닌 과거형이다.

앞으로도 언젠가는... 청춘의 시절을 떠올린 비슷한 감정으로 오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내 청춘의 구석구석은 아니지만, 그나마 사진으로 기록된 몇 장으로 내 청춘의 포토 에세이를 써 보고자 한다.

청춘에 대한 이별의식일 수도 있고, 새로운 해석일 수도 있다.


나의 뿌리인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사진을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1968년 또는, 1969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어렸을 적 사진... 왼쪽에 있는 사람이 돌아가신 큰형이다...


1983년, 중 3때... 아마 친구 제희네 집에서 찍은 사진 같다. 웃음이 어색하다...


1983년, 중3 소풍... 유진영 선생님, 그리고 이름 기억 나는 친구들이 많이 없다. 


1983년, 역시 중3 때... 아마 누나가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인 거 같다. 


1988년 2월 13일, 날짜까지 있다. 재수 끝에 대학을 합격한 후 빡씨게 놀기 위해 성당의 성가대에 들어갔다.


1988년, 대학 입학식... 계산해 보니 이때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도 어리셨다.


1988년, 과 모꼬지... 1학년 때 참석한 모꼬지만 10번이 넘는다...

정말 자알 놀았다. 


1989년, 국문과 노래패 꼴굿떼의 동기와 후배들...


1989년 여름 서울지역 국문과 연합 모꼬지... 

캬~ 저 얼굴 갸름한 거 보소!


1989년 가을, 확실히 기억난다. 2학년 2학기 과대표였을 때... 


1989년 겨울, 과학생회장 출마를 위해 찍은 사진...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친구에게 양보하고, 1990년 1년 동안 휴학생으로 살았다.


1990년 봄, 과 전체 모꼬지... 90학번 신입생들의 풋풋한 모습도 보인다. 형욱이, 한영이, 유진이...


1990년 여름, 당시 총학생회 문화부장이었던 광석이형이 차세대 문화일꾼으로 키울 88학번 몇 명을 꼬셔 마석으로 모꼬지를 데려갔다.


1990년 8월 15일 범민족대회... 아마 연대 정문 앞 같은데... 아닌가?

잘 찾아보면 맨 앞에 나도 있다.


1990년 여름, 노래학교에서 90학번 후배들과...

이당시 난 성대 노래패협의회 의장이면서 노래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었다.


1990년 11월 15일, 난 군대를 갔다. 부산의 군수사령부 군악대, 총기수여식...

그당시 감시동기였던 조한구가 왼쪽 아래에서 째려보고 있다. 인상 참 드럽다.


1991년 초, 부모님이 아들 보러 부산까지 면회를 오셨다. 고참들이 다려준 옷에 손이 베일 거 같다.


1991년 여름, 매형과 누나, 윤희와 경윤이가 면회를 왔다. 여긴... 해운댄가?


1991년, 군대 있을 때 사진이 젤 많다는 건 참 아이러니다...


1992년 부대방문 행사... 아버지는 친목계 모임을 뿌리치고 아들을 만나러 부산으로 내려오셨다.


1992년 군대 안에 있는 성당 공소에서... 이때까지만 해도 냉담자가 아니었다.


1992년 말? 똥폼을 잡고 찍은 걸 보니 확실히 쫄병 때는 아니다.


1993년... 드디어 전역이 며칠 남지 않았다. 


드디어 전역... 개인 정보와 군사기밀은 가렸다...


1993년, 제대하고 작은형 입학식에 참석했다.


1993년, 복학한 후 후배들한테 등 떠밀려 총학생회에 문화국장으로 들어갔다. 

사진은 여름농활 중 문선대 지지 방문 때...


1993년, 꼴굿떼 정기공연에서 드럼으로 참여...


1993년 11월 15일, 총학생회실에서 훈이와...


1994년 크리스마스, 산타삼촌이 되어 조카들 선물 들고 방문... 왼쪽에 윤희, 오른쪽에 경윤이


1995년, 친구 자취방에서... 헤드롹 걸린 친구는 족광수.


1995년 겨울, 꼴굿떼 정기공연 중...


1996년 2월, 대학 졸업...


1997년, 나의 첫 직장 창조 ArtMarketing


드디어 밀레니엄... 내가 키우다시피한 조카, 현기가 태어났다.


2000년 4월 22일, 조카 민기 첫돌 때...


2000년 12월 3일,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유정아와 결혼...


2001년, 극단 노래감독 시절, 공연 후 배우들과...

추억은... 여기까지!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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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8 08:47
    비밀댓글입니다
    • 정말 한번 들어도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이름을 가지셨군요. ^^
      왜 어르신들이 왕년 얘기를 그렇게 하시는지 50을 넘기니 겨우 알것 같습니다. 하지만 왕년에 연연하지 않고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거북이 소풍과 촛불교육감 경선...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6 10:54 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거북이 세 마리가 소풍을 갔다. 

그런데 김밥을 먹으려고 보니 물을 안 가져온 것이었다. 

세 마리 거북이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거북이가 물을 뜨러 가기로 했다. 

결국 한 거북이가 졌다. 

그 거북이는 자기가 물 뜨러간 사이에 나머지 두 마리의 거북이가 김밥을 다 먹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너희들 나 올 때까지 김밥 절대로 먹으면 안돼, 알았지?”


물을 뜨러 가며 거북이는 신신 당부를 했다. 


“알았어, 너 오면 같이 먹을게, 걱정 마.”


나머지 두 마리의 거북이는 물 뜨러간 거북이를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가 지났는데도 물을 뜨러간 거북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두 마리의 거북이는 배가 너무 고파 김밥을 하나씩만 먹기로 했다.

두 마리의 거북이가 김밥을 하나씩 집어든 순간, 바위 뒤에서 물 뜨러간 거북이가 튀어 나왔다.


“이거봐, 이거봐~ 내 이럴줄 알았어..."



2012년 통진당 사태 이후, 선거만 하면 부정과 부실 논란이 일어난다.

직접 투표함에 투표를 한다고 해도 부정을 100%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 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함 투표는 부정 선거를 차단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부득이 온라인 선거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부정을 차단해야 하겠지만, 그럴 경우 투표율이 현격히 떨어져 투표 행위가 가지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선거의 목적은 부정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대중들의 의사를 묻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온라인 선거로 뽑을 수는 없다. 그래서 투표일을 휴일로 지정하고, 그날 힘들면 사전에 하라고 사전 투표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 촛불교육감추진위에서는 직접투표와 온라인투표를 병행했다. 촛불교육감을 뽑는다고 설레발을 쳐 놨는데, 정작 시민들이 “촛불교육감? 그게 뭔데?”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제 부정과 부실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진보진영을 대표할, 그것도 촛불교육감을 뽑는 선거인데 부정 요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목표인가, 아니면, 부정은 최소화하되, 일정정도의 부정은 부실의 영역으로 인정하여 보다 많은 대중들이 선거에 참여하게 하여 명실상부한 촛불교육감을 세우는 것이 목표인가...


교육감 후보는 정당이 없다. 대신 교육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그래서 정치인은 정당에서 공천을 하지만, 교육감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후보를 정리한다. 이번 촛불교육감추진위처럼... 학교교육이 교육의 전부인 대한민국에서 내가 학교를 다니거나, 나의 아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상, 교육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니다. 6.13 지방선거의 서울시 유권자 수는 약 862만 명 정도다. 서울의 학령인구가 현재 약 100만 명 정도... 그런데 그들은 투표권이 없으니까... 한 가정에 평균 아이가 둘이 있다고 치면 대략 교육에 이해관계가 있는 학부모는 한 100만 명 쯤 되지 않을까? 그 중, 반올림해서 13,000명이 촛불교육감을 선출했다. 촛불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것 치고는 참 참여자가 조촐하다. 그 수도 대부분은 후보들이 경선에 참여하며 모아왔다고 한다면... 교육 시민단체들은 이번 촛불교육감추진위를 하며 제대로 광을 판 셈이다.


거북이 소풍의 우화와 비교를 하자면...

첫째, 촛불교육감추진위는 소풍 가기 전에 먼저 빠진 것은 없는지 잘 챙겼어야 했다. 촛불교육감추진위는 물 뿐만 아니라 정작 소풍의 꽃인 김밥(촛불?)도 안 챙기고 소풍을 가자고 선동했다.

둘째, 이성대 후보는 가위바위보에 졌으면 남은 동료들을 믿고 물을 가지러 갔어야 했다. 동료들을 믿을 수 없었다면 애초에 가위바위보를 하지 말든가... 

마지막으로 조희연 교육감은 촛불이라는 레떼르가 아무리 탐이 나더라도 준비가 안된 소풍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to be continued...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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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뭐예요?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2 23:59 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내가 서울시교육청에 있을 때,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을 낸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관에서 제작하는 사례집은 주로 '사업 중심' 사례집이다. 난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을 기획하면서... 사업이 아닌 '사람 중심' 사례집을 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바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례집系의 대작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뭐예요?』이다. 

 

그냥, 소소하게 책임 편집으로 이름을 올렸다.


더 늦기 전에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의 기획의도를 밝히고자 한다. 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ㅠㅠ

첫째, 위에서도 언급했듯, 사업 중심 사례집이 아닌, 사람 중심 사례집을 만들고 싶었다. 사례는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참조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사례를 통해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사례의 빛나는 결과만을 '이식'해 왔기 때문이다. 사례는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업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참조'하는 것이다. 사례의 이식과 참조에 대해서는 '사례는 이식하는 것인가, 참조하는 것인가(링크 클릭)'를 '참조'하기 바란다.  


둘째, 사례집에 내가 생각하는 거버넌스의 원리를 의도적으로 우겨 넣었다. 

언젠가는 새로운 민이나 관, 학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정책에 참여할 것이다. 그 새로운 민, 관, 학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사례집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께서' 남북통일을 위해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잡이 노릇을 자처하듯... 소위 거버넌스를 함에 있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의 사례를 가장 먼저 참조할까? 당연히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의 사례를 가장 먼저 살펴 볼 것이다. 즉, 민이면 민의 사례를, 관이면 관의 사례를, 학이면 학의 사례를... 모름지기 모든 인식의 확장은 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관이라면 사례집에 등장하는 관의 사례를 먼저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쓴 사례라면 거부감 또한 적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사례에 등장하는 다른 주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제목은 "민관학이 함께 걸어온 2년의 혁신교육지구 이야기"이고, 저자는 "20개 혁신교육지구 68인의 민학"이다. 난 그것이 바로 거버넌스의 원리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나의 졸고 '아케이드 관점에서 바라 본 거버넌스(링크 클릭)'를 참조하기 바란다. 


셋째, 별 건 아니지만, 관 냄새가 덜 나는 단행본 스러운 사례집을 만들고 싶었다.

먼저 표지를 살펴보자. 표지는 2016년 1년 동안 20개 혁신교육지구에서 진행했던 다양한 행사의 웹자보를 마치 벽지처럼 이어붙였다. 그리고 그 위를 투명한 종이로 덮은 후 구멍을 뚫어 사례집의 제목을 썼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뭐예요?"


제목에는 고급지게 UV코팅을 입혔다. ㅋㅋ


여기까지가 사례집의 기획 의도였고... 내가 만약 기획만 해 놓고 누군가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누가 비아냥거린 것과 다르게 난 교육감의 은총과는 무관하게 설시굑청에 어공 따까리 주무관으로 들어왔다. 전에 있었던 구청의 잘난 보좌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획부터 실무, 실무의 따까리까지 혼자 감당해야 했다. 오죽하면 구청에 있을 때 내 따까리(?)를 해 주던 윤종인 주무관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겠는가! 내가 구청에서 우아하게 정책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밑에서 열심히 오리발질을 마다하지 않았던 윤종인이라는 공무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기획 의도에 맞게 사례를 모은다는 게 사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샘플 원고를 쓰고,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사례를 모아달라고 자치구에 공문을 보냈다. 바쁜 와중에도 여기저기 독촉해 사례를 챙겨준 자치구의 담당 주무관님들께는 매우 죄송한 말이지만, 그렇게 해서 접수된 사례 원고는... 그나마 영등포혁신교육지구에서 보내온 사례를 제외하면 쓸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난 20개 혁신교육지구에서 내 의도를 이해해 줄 분들을 일방적으로 정해 다이렉트로 연락을 했다. 그래서 그당시 내 노트북에는 늘 20개의 카톡 대화창이 열려 있었다. 원고가 들어온 지구는 대화창을 하나씩 닫아가며 원고를 독촉했다. 차라리 내가 다 쓰고 말지... 누군가에게 원고를 독촉하는 일은, 그것도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무려 20명... 그 20명은 또 자기 지구의 민관학 주체들의 원고를 독촉해야 했으니... 얼추 원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끝끝내 원고가 들어오지 않은 곳은 나랑 같은 어공인 대변인실 권혜진의 도움을 받아 시민 기자단을 섭외해 직접 인터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원고에 맞는 사진 자료를 모으고, 디자인 편집에 들어가면서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쉬운 프로젝트라도 복병은 늘 존재하는 법! 연말이 다가오자 재정과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빨리 마무리 하고 대금 지불까지 마치라고 독촉이 왔다. 이런 분야에서 법을 집행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한마디로 유두리가 없다. 거기다가 추상같은 재정과 담당자가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도 모를 어공 따까리 주무관의 말을 들을 리 없다. 옆자리에서 행정 업무를 도와주던 주무관은 재정과에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며 복지부동...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왜 없겠는가! 과에서 서무를 맡고 있는 나이 어린 임은주 주무관이 내 모습이 하도 딱했는지 재정과에 사정해 일정을 며칠 미뤄 주었다. 첫 직장에선 3일 밤낮을 한 숨도 안자고 꼬박 세운 적도 있지만, 오십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시간에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밤샘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그 때 쓴 페북글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례집은 나왔고,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 사례집이 어떤 산고 끝에 나오게 되었는지...

암튼 그 와중에 내가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해 썼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썼다는 흔적을 남길 수 없었던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글쓴이가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 편집부'라고 되어 있지만, 편집부는 개뿔... 그 편집부가 바로 나다!

그리고 총 3장으로 나뉘어진 일본말로 '도비라'의 시작글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책 만들고, 글 쓰느라 열나 고생했으니, 제발 10분만 투자해서 읽어만 주시라...

댓글이나 공감까지 눌러주면 베리베리 땡큐고...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을 펴내며

2015,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경계를 넘어 마을과 학교의 분업이 아닌 협업의 방식으로 당면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한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지난 2년간의 시험 운영(?) 마치고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있습니다. 그동안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중앙이나, 다양한 변수와 싸워가며 정책을 추진하고 집행해야 하는 현장이나 이루 말로 표현할 없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과정에서 서로를 변화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마을과 학교가 비로소 교육이라는 배를 타게 되었고, ·· 거버넌스가 새로운 교육의 주체로 등장하는 성과 또한 없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2015 서울형혁신교육지구는 경쟁 공모 방식을 취하면서 과도한 경쟁으로 비롯된 교육의 문제를 자치구 경쟁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다소 모순된 방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자치구들이 혁신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 동안 서울의 25 자치구 20 자치구가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 참여하는 예기치 않은흥행 거두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정책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학을 만족시켜주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서로 아무런 소통도 이해도 없었던 2 ··학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충분히 느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은 경쟁 방식을 버리고 지정에 의한 신청으로 공모 방식을 바꾸었고, 미흡하나마 하향식 정책 관성에 상향식 의사 전달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으며,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일반자치와 교육자치, 마을과 학교 사이에 이해가 확대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례집을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서 어떤 사업이 펼쳐지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밝혔듯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진정한 성과는 사업이 아니라 사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학의 거버넌스 경험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교육청 장학사의 시야는 학교를 넘어 마을로 향하게 되었고, 순환보직을 통해 교육관련 부서에 배치된 자치구청 주무관은 교육과 거버넌스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민은 제도에 묶여 있는 관의 처지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관은 민이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열정을 행정에 반영하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를 우리나라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이식 오고 싶은 충동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빛나는 성공 사례 이면에는 우연에 기인한 특수성과 주체들의 노력이라는 필연의 과정이 숨어 있습니다. 성공 사례를 이식해 오면서 고단한 과정이 아닌 빛나는 결과만을 섣부르게 취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례라고 할지라도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게 것입니다. 성공한 사례는 과정 속에 다양한 문제와 실패의 경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정 참조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맞는 빛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 2년의 경험을 담은 사례집은 마을과 학교의성공 아닌성장 기록입니다. ·· 거버넌스의결과 아닌과정 기록입니다. 모쪼록 사례집이 그동안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함께 가면서 어려움을 헤쳐온 서울시 20 혁신교육지구의 ·· 담당자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험난한 과정에서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할 있으면 좋겠습니다. 걸음 나아가 아직은 어렴풋하게 있는 혁신교육의 길로 접어든 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현재진행형이며, 길에 많은 ··학이 함께할 있기를 기원합니다.


-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 편집부 



1장, 마을과 학교의 협력이 시작되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관료사회를 표방하며 건국한 조선은 나라를 경영할 관료를 선발하기 위해 과거제도라는 시험을 통해 신분 상승을 위한 좁은 문을 귀족이 아닌 평민에게까지 열어 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빗대어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비루한 개천이고, 개천을 탈출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교육이 과연 올바른 교육일까요? 

서울형혁신교육지구는 마을 속에 존재하는 학교가 이상 개천을 탈출하기 위한 등용문이 아닌, 맑고 아름다운 개천을 만들고, 개천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놀 있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마을과 학교는 서로를 위한 성장의 지렛대가 되고,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배움을 영위할 있는 터전이 것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이전의 학교는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교육복지 사업의 확대와 혁신학교 운동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학교의 대표적인 노력입니다. 하지만 마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학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시 중심의 경쟁 교육의 관성은 계속되었고, 사교육비 증가로 인해하우스 푸어 이어에듀 푸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을에서는 공교육의 보완이 아닌 대안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공동육아, 대안학교 제도의 지원을 포기한 학교 울타리 밖에서 파편적으로 교육의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누구도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과 학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보자고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이전에 교육의 문제를 대하는 마을과 학교의 태도였습니다.

2017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주요 운영 방침 연구를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81%(6,357 5,238) 마을과 학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 2년을 지나며 적지 않은 교사들과 마을이, 그리고 혁신교육지구가 교사의 업무를 가중시키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마을과 학교가 협력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동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한 자리에서 학교 교육과 혁신교육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시간에도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학교 교육과 혁신교육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학교 교육 VS 혁신교육 

개천에서 용 나는 교육 VS 개천을 행복하게 만드는 교육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 VS 자신을 긍정하는 교육 

경쟁하는 교육 VS 협력하는 교육 

남과 비교하는 교육 VS 자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비교하는 교육 

선발을 위한 교육 VS 성장을 위한 교육 

아이만 성장하는 교육 VS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교육 

지금의 내가 결과인 교육 VS 지금의 내가 과정인 교육


혁신교육은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마을과 학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입니다.


2장, 협치에 구체성을 더하다. 민・관학 거버넌스

··학의 생각과 행동이 완벽히 일치한다면 우리는 굳이 ·· 거버넌스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각자 다른 역사와 다른 경험에서 비롯된 서로 다른 관성을 갖고 있지만, 그중 어떤 열등한 1 다른 우월한 1 흡수되어 1+1+1 결국 1 되는 것은 진정한 거버넌스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가진 1 더해져 때로는 서로의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때로는 장점과 장점이 만나 무한한 가능성이 되는 창의적 거버넌스가 필요합니다.

2015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필수 과제 하나였던· 거버넌스 구축 지원 사업 사업이 진행되는 사이 자연스럽게·· 거버넌스 구축 지원 사업으로 개념이 보다 구체화되었습니다. 그것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성과인지,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인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지의 결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 거버넌스의 논리는 ·· 거버넌스와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교육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교육주체 생각과 교육의 결과가 만들어 놓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교육객체 생각의 차이가 어쩌면 민과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보다 훨씬 크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민과 관과 학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습을 만약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왼쪽과 같은 그림이 되지 않을까요? 학은 과잉된 교육에 대한 기대로 인해 교육을 완전무결한 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일반적으로 관은 교육을 밋밋하고 단순한 평면으로 인식합니다. 일반행정에서 바라보는 교육은 건설, 교통, 문화, 복지 다양한 행정 분야 하나일 뿐입니다. 현재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되어 혁신교육지구를 담당하고 있는 과장, 팀장, 주무관은 교육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보직을 순환하며 돌다가 우연히 자리에 앉게 것뿐입니다. 그리고 교육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고 있는 민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습은 울퉁불퉁하고 정확한 형체가 없습니다. 장님이 자신이 만진 부분을 일반화시켜 코끼리의 모습을 상상하듯, 교육 거버넌스의 당사자인 민과 관과 학은 각자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교육의 모습을 우리 사회의보편적인교육의 모습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교육 거버넌스가 내딛어야 첫걸음은 지금까지 교육을 바라보고 있었던 자신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민과 관과 학이 함께 느끼고 있는 교육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모습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교육에 대한 다른 인식과 가치와 지향을 가지고 있던 민과 관과 학이 처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서툴고 갈등도 있지만, 지금 보고 있는 ·· 거버넌스의 모습은 결과가 아닙니다.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기 위해 흔들림을 멈추지 않듯이, ·· 거버넌스라는 나침반은 앞으로도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릴 것입니다


3장,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입니다

인간은 유아기와 아동·청소년기를 거치며 인류가 수천 동안 이루어낸 진화와 문명화의 과정을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 함축적으로 학습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 아마 인류에게 있어 가장 영향을 미친 교사는 바로 자연일 것입니다. 발전을 거듭해 과학문명의 관심이 인간이 딛고 있는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고 있는 21세기에도 자연은 마치 교실에서 말썽을 부리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엄격한 교사처럼 여전히 인류에게 두려운 존재입니다. 

자연의 일부에서 비롯된 인류가 자연에서 벗어나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인류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떠한 규칙도 읽어낼 없는 자연에게 신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외로움 자체였던 자연의 거대한 섭리 속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인류는 자연을 이용할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의 축적이 인간의 문화가 되었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을 이용하기 위해 자연을 관찰하고, 관찰한 자연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교사가 자연이고, 인류가 자연의 가르침 속에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면, 인류의 역사는 자체가 하나의 장대한 교육과정이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교육과정과는 다르게 인류의 역사라는 교육과정은 교사인 자연이 아닌, 학습자인 인간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교사인 자연 앞에서 보통은 겸손한 자세를 취했지만, 때로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처럼 반항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성장의 바퀴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학습자의 본분을 망각한 인간의 그러한 태도는 이따금씩 자연의 분노를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지만, 과정 속에서 인류는 당당한성인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인류가 인간의 내재적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자의 주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요? 한때 토관과 신토(土官과 紳土)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던 영화, 사관과 신사(士官과 紳士) 생각해 볼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교사라는 우월한 지위에 있던 하사는 자신에 의해 우월한 존재인 장교로 성장한 리처드 기어에게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교육을 교육 제공자의 입장이 아닌 학습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의 창의적인 성장 가능성에 경의를 표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육 문제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주도해 인류의 교육과정과는 다르게, 학습의 모티브를 제공할 뿐인 교육 제공자의 주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는 교육의 주체는 학습자인 학생이고, 교사는 지원자 또는 협력자일 뿐이라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검증된 공식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때는 아닐까요?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학생들은 그동안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에 억눌려 왔던 자신들의 생각을 하나씩 펼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혁신교육지구에서 청소년의회를 구성하여 학생들도 사회의 당당한 주인임을, 나아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할 있는 주체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필수과제인 마을과 학교의 협력, ·· 거버넌스의 구축은 교육을 통해 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고 과정이 것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지향하는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학생이 교육의 주체가 되고, 사회를 구성하는 당당한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입니다.


이상 넋두리 끝!!!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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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꼼지락
    • 2018.05.03 00:10 신고
    이 책이 엄청 궁금했던 1인..
    글 속에 나오는 그 시민기자단으로 기획은 알고 있었으나 이것저것 바빠진 일정으로 기자단도 끝까지 못했지요.
    책 한권이 나오기까지 고생하신 채샘의 회고가 그냥 읽히지만 않네요.
    • 꼼지락
    • 2018.05.03 01:46 신고
    서대문 오가다 카페 2층!
    서울시교육청 기자단으로 채샘을 처음 뵈었지요^^

난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2 14:34 사회+문화+교육/반反반半 정치공학

난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돼지는 돼지의 눈으로,

부처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교사는 교사의 눈으로,

예술가는 예술가의 눈으로,

정치인은 정치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잊고 있었다.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가치, 그들의 상식, 

그리고 그들의 세상은

그들의 유, 불리가 유일한 기준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들을 볼 땐

나의 눈이 아닌 그들의 눈으로 보아 주리라...


2018. 5. 2.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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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현실인식과 예견?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1 11:36 사회+문화+교육/반反반半 정치공학


지난 2012년 타임지는 박근혜를 표지모델로 선정했다. 

카피는 "The Strongman's Daughter" 즉, 독재자의 딸...

이는 박근혜의 본질인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2017년 5월 표지 모델로 문재인 대통령을 표지모델로 실었다. 

카피는 "The Negotiator" 협상가...

지금 생각해 보니, 문재인을 협상가라고 표현한 건 예견, 또는 탁월한 통찰이었다.


타임지가 왜 타임즈인지 난 2018년 4월 27일에야 깨달았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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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적 필연...

Posted by Back2Analog
2018.05.01 00:32 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확실히 필연보다 우연의 결과이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부모도 자식을 낳을 때 부모가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유전자의 비율을 의도적으로 섞을 수 없다. 이는 부모가 자식의 성을 정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누군가는 첫째로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둘째나 막내로 태어난다. 예전과 다르게 아이를 낳을지 말지, 낳으면 몇을 나을지 정도는 의도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이에게 어떠한 필연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모든 첫째와, 모든 막내와, 모든 외동이 같은 성격으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유아기 때 접하는 다양한 시각, 청각, 그 외 다양한 감각 정보를 부모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까? 맹모 삼천지교? 그것 또한 우연한 결과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맹자의 엄마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맹자를 마치 붕어빵처럼 찍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인 동시에 가능성,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우연적 필연이다.

우연은... 마치 자본처럼 불확실하다. 자본과 우연은 서로의 인과관계이며, 또 서로의 공생관계이다. 우연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은 자본의 확산과 침투를 눈감아 주고, 자본의 확산과 침투는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우연의 자양분을 만든다.

현재는 과거라는 우연이 수 없이 축적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필연적으로 의도할 수 없다. 지나친 필연은 오히려 역설적 결과로 이어진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탄생은 필연의 오만에 빠진 진보가 부른 역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는 보수가 의도했던 필연과 그 오만이 불러 일으킨 촛불에 의해 파면 당했다.

우연과 도착의 시대...
중세가 암흑의 터널이었다면, 근대는 인간의 오만이 만든 필연과 확신의 터널... 그래서 근대를 벗어나고 있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필연과 확신이다. 탈근대로 접어들면서 신념으로 가득 찬 확신, 그리고 필연의 오만은 늘 역설적 결과를 초래해 왔다. 우리가 우연의 시대인 현실을 제대로 진단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진단의 결과를 확신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인류의 종말을 비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당장 내가 실천해야 하는 것은 바로... 확신을 거두는 일이다. 난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우리의 미래도 확신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대중은 그저 1/n의 집합체...
나의 영향력이, 재력이, 신념이 아무리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난 그저 1/n일 뿐... 그래서 탈근대의 진보는 내가 우월한 영향력, 재력, 신념으로 n/n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1/n의 상식과 결합하는 것이다. 난 미래를 필연의 힘으로 주도하려고 하는,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역사의 진보를 막고 있는 모든 우월한 1에 대항할 것이다. 우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치와 행정 권력, 우월한 재력으로 모든 관계를 소비로 대체하려고 하는 자본과 시장의 노예들, 그리고 우월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시민 밖, 아니 시민 위 시민단체들... 그들이 바로 탈근대의 진보를 가장 구조적으로 막고 있는 적폐이자, 보수이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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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3 17:40
    비밀댓글입니다

현재, 과거, 미래의 관점으로 바라본 남북 정상회담...

Posted by Back2Analog
2018.04.27 10:47 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오늘 드디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글을 쓰는 사이 남북 정상회담이 시작되었다. ㅠㅠ) 사실 ‘드디어’라는 말이 다소 무색하긴 하다. 주지하다시피 남북 정상회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남북정상회담 일정까지 합의한 상태에서 돌연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 되었다. 그리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평양으로 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이 최초였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도보로 군사 분계선을 넘은 것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드디어 2018년 4월 27일, 오늘... 판문점에서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엔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남측으로 내려온다. 

내가 ‘드디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그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밝혔듯, 북미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잡이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암튼 이번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므로 맥락 없이(?) 현재, 과거, 미래의 세 가지 관점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3차라서 세 가지? 썰렁~)


첫 번째, 현대적 관점으로 당위와 현실의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남과 북이 주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당위이다. 모름지기 당위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과 전술과 만났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당위와 현실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단계가 존재한다. 그 단계를 무시하고 당위 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당위가 현실이 되든 말든... 그저 신념화된 당위 그 자체이다. (이 지점에서 현실의 복잡성은 외면한 채 당위만을 짖어대는 근대주의자 몇몇이 떠오르는 이유는?)

한반도의 문제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1953년 휴전 협정을 맺은 당사국은 정작 남한은 빠진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위가 아닌 망상이다. 이 점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익히 인지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국제 정세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에 몰두를 한 이유는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그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이 아무리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미국과 중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거기다가 이명박근혜 정권은 전통적으로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세력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의 전략이 빛나는 이유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객관적 현실 진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치 상식이 되어 버린 당위를 앞세워 본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한의 역할이 이전에도, 지금도 그저 길잡이일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깔대기를 하나 대자면... 2017년 9월 19일 노모씨 아들, 모병갑씨와 2년 안에 북미수교가 될 것이라고 무려 30만원이나 걸고 내기를 한 이유 또한 막연한 기대나 당위가 아닌 객관적인 시대 진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이 아무리 말로 으르렁 거려도 지킬 것이 많아진 21세기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전쟁은 가능하지 않다. 그걸 알면서도 서로 극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을 보며, 북미수교를 예견한 것이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어둠이 짙다는 것은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근거, 중국의 입장 변화이다. 중국은 등소평이 개혁 개방을 추진한 이후 빠르게 자본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군사적 이익과 자본의 이익을 저울질 했을 때, 예전과는 다르게 자본의 이익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군사적 문제로 북한의 북미수교를 막아온 중국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두 번째, 지금까지 통일을 바라보았던 과거진행형의 관점에서 한번 바라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물론 수면 아래에서 수없이 많은 오리발질이 있었겠지만, 트럼프가 오바마 정부의 무능력을 지적하고 있듯이, 이쯤되면, 지금까지 통일을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의심해 볼 만 하다. 통일이 진짜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믿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우리는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던 통일이라고 하는 민족적 의제를,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으로만 대해 왔던 극우 세력들의 입놀림에 놀아나며 지금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을 넘어 종전, 평화협정, 그리고 북미수교로까지 나아간다면 이제 분단을 정치적 무기로 지탱해 왔던 자한당은 이제 무엇으로 약을 팔겠는가?



세 번째, 이제 미래적 관점으로 통일이 만들어 낼 미래를 맘껏 상상하즈아!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는 인간이 창의적인 사고를 할 때 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는 뇌의 영역과 영역 사이에서 스파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창의적인 행위는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가장 창의적이지 못한 ㅅ시대를 살아왔다. 이제부터는 진짜 경계를 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젠가? 김어준이 뉴스공장에서 통일에 대한 시민적 상상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많은 시민들이 문자를 보냈다. “통행료를 내고 차를 타고 평양 가서 옥류관 냉면을 먹고 싶다.”, “대동강 맥주를 마트에서 사 먹고 싶다.”, “개마고원에서 말달리기 체험을 신청하겠다.”, “역사 유적 공동 발굴을 하고 싶다.”, "북한 어학연수를 통해 욕설 없이 뼈를 때리는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등 기발한 제안들이 쏟아졌다. 김어준이 소개하는 시민들의 상상을 들으며 만약 우리가 제도의 제약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통일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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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합의문 잘 이행되었으면 좋겠어요^^
  2. 평화협정 체결, 체제 보장 그리고 점짐적인 통일이 정답입니다
    • 그렇지요. ^^ 한반도에도 진짜 봄이 오려나 봅니다. 하고자 했으면 진즉 할 수 있었던 일들을 그동안 못 한게 아니라, 안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빌어먹을 정치란...

Posted by Back2Analog
2018.04.26 15:48 사회+문화+교육/반反반半 정치공학

최근... 자꾸 영화 "내부자들"에서 나왔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왜일까?
우장훈 검사(조승우)는 미래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이 사건에 유력한 대선주자인 장필우(이경영)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주간인 이강희(백윤식)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장훈 검사는 이들에서 배신을 당한 조폭 안상구(이병헌)가 비자금 증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폴리페서로 국회의원이 된 대학 은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 우장훈 검사 : 교수님은 요즘 어떠십니까?
# 폴리페서 : 뭐가?
# 우장훈 검사 : 걱정이 좀 돼서요. 교수님 같으신 분이 이런 정치판에 계신다는 게 좀...
# 폴리페서 : 내가 처음 여의도에 들어올 때, 누군가 나한테 그러더라구. 여당, 즉 집권당이 되는 거 외에 국회의원이 정치적으로 지향할 것은 없다. 정치란 큰 의미로 생존! 국가의 생존, 국민의 생존, 그리고 나의 생존이다. 하하...

그래... 집권당이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정치적으로 지향할 게 없어서 그런가? 

국회의원이 된 폴리페서는 정치를 한 마디로 '생존'이라고 말한다.
국가의 생존, 국민의 생존, 그리고 나의 생존...
뒤집어 말하면 내가 생존하지 못하면 국가도, 국민도 어찌되든 상관 없다는 얘기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통치의 권한을 준 것은, 그 권한을 자신을 위해 쓰라고 준 것이 아니다.
국민이 국회의원들에게 입법의 특권을 준 것도, 그 권한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쓰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적 의제인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지금, 구태의원들은 오직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지방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어디, 앞으로 그 잘난 주댕이로 국가와 국민을 입에 올리기만 해 봐라!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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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봐라!!

오늘은 은기 중간고사 보는 날...

Posted by Back2Analog
2018.04.26 09:44 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오늘은 3 , 은기가 중간고사 보는 ...

시험이 아닌 시험지를 보고 오겠다는 딸에게 7 (초딩 2학년) 주고 받았던 문자를 보내줬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빠는 은기가 잘 하는 것 보다, 즐겁게 하길 바라고 있다.

잘하지 못해도 좋다, 즐겨라!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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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자에서 사랑뿅뿅이 느껴지네요~~저도 제 아들에게 저런 엄마가 되고싶네요~

껍데기는 가라! 촛농도 가라!

Posted by Back2Analog
2018.04.24 14:12 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촛농은 가라

- back2analog


촛농은 가라.

촛불도 알맹이만 남고

촛농은 가라.


촛농은 가라.

겨우내 광장에서 메아리쳤던, 아우성만 남고

촛농은 가라.


그리하여, 다시

촛농은 가라.

이곳에선, 

세울 하나 없는 시민들이

적폐 없는 대한민국 앞에 서서

부족함 드러내며

연대할지니


촛농은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통일 조국을 향한 바람만 남고

,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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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껍데기는 가라 잘보고 갑니다.
    촛농은 가라? 자작글인가요?
    • 패러디 한 걸 자작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ㅎㅎ

아빠의 명언?

Posted by Back2Analog
2018.04.24 09:57 back2analog


며칠 전부터 사춘기로 힘들어 하는 3 딸에게 출근하기 , “아빠의 명언 문자로 보내주고 있다.

아빠와 명언이라는 조합이 서로 이율배반적이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더니...

좋다고 자기 직장 들어갈 때까지 보내달라고... ㅠㅠ


딸을 키우며... 사실 내가 키운게 아니지만, 육아일기를 볼까 생각해 적이 있다.

언제 처음 아빠라고 말했는지, 언제 처음 뒤짚었으며, 언제 처음 걷기 시작했는지...

그런데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아이가 유치원 다니기 시작했던 터라 그냥 포기를...

이제부터라도 육아일기는 아니지만 딸과 주고받은 문자라도 기록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나면 모두 소중한 기억들일테니...


오늘은 그동안 딸에게 보낸 잔소리 같은아빠의 명언 남긴다.



앞으로 은기에게 아침마다 아빠의 명언을 하나씩 보내주마...

아빠의 명언 1. (180410)

은기의 오늘이 어제보다 행복하기를... 오늘이 쌓이고 쌓여 내일의 행복이 될지니...


아빠의 명언 2. (180411)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듯, 

내가 생각하고 있는 (엄마? 아빠? 친구?) 진정한 그가 아닐지 모른다. 

학교 다녀와~~~



아빠의 명언 3. (180412)

아빠가 살면서 경험한 끝이 없는 3가지...

1. 우주... 만약 우주의 끝이 있다면 끝의 다음은 도대체 뭘까?

2. 노력... 나는 할만큼 했다... 말할 할만큼 기준은 도대체 뭘까? 

3.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은기야... 전학 결정 엄마가 계속 우울해 보여서 걱정이구나... 남은 며칠은... 엄마가 바라는 은기 모습으로 살아보면 어떨까?


아빠의 명언 4. (180413)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도 그렇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아빠의 명언 5. (180416)

슬럼프에 빠진 운동 선수가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을 하는 것이다. 무언가 하기 싫을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날씨 좋네~ 학교 다녀 ~


아빠의 명언 6. (180417)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내가 긍정적인 면을 있다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인 면만 본다면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 것이다. 아빠는 오늘도 은기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출근한다. ^^


학교 다녀 ~


아빠의 명언 7. (180418)

매일 아침 

은기를 생각하며 보내는 문자가 

은기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그리고, 잔소리로 여겨지지 않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빠는 괴로워 했다. 

은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은슈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새벽에도 

잠자리에 있는 가족을 보며 일터로 향한다. 


아빠의 명언 8. (180419)

오늘은 아빠가 중학교 좋아했던 ...

때는 시를 줄줄 외웠는데...


얼굴 / 박인환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길을 걷고 살면 무엇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없는 지금

물빛 눈매를 닮은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엇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