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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반反반半 정치공학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한 반(半?反?) 정치공학적 견해

by Back2Analog 2017. 2. 2.


박원순 서울시장에 이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앞으로 몇 명의 후보가 더 불출마 선언을 할지, 아님 눈치없이(?) 완주를 할지 모르겠으나, 나름 적지 않은 시간동안 대선의 꿈을 키워왔던 두 분의 불출마 선언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다. 하여 평소 정치공학의 ‘정’자도 모르지만 올해로 꼬박 30년을 유권자로만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두 분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어설픈 반정치공학적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 단단한 알에 갖힌 아브락사스, 박원순 서울시장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렇다쳐도, 박원순 시장의 대선 레이스 중도 하차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박원순 시장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때 문재인과 김무성을 꺾고 차기 대권 지지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난 그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메르스 대처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몰상식과 비상식이 판 치는 대한민국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대처를 했을 뿐이다. 그때 난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건 무거운 ‘혁신’이 아니라 단지 ‘상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할 말은 아니지만 메르스 사태가 1년만 더 늦게 터졌더라면 지금 대선 판도가 어땠을지… 

과감하게 뒷모습을 선거 벽보로 사용했던 파격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에 그쳤던 기존 선거운동 방식과는 달리 참신한 모습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박원순식 선거 운동은 케케묵은 정치공학의 틀을 크게 흔들었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기 불출마 선언으로 인해 2017년 대선은 그저그런 정치와 선거공학의 틀 안에서 소위 ‘선수’들 중심으로 식상하게 치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내가 박원순 시장의 ‘조기’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아쉬워 하는 이유가 단지 대선 흥행을 위한 페이스 메이커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않아서 만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이 아예 대통령의 꿈을 접었다면 모를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5년과 10년 후를 생각했다면 이번 대선에서 예의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선거 운동을 통해 점수를 축적하고, 나아가 시민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해 마라톤을 완주하는 꼴찌에게 보내는 ‘감동’이라는 부채라도 남겼어야 했다. 마치 지난 총선에서 회초리를 맞고 쓰러진 문재인에 대해 호남의 민심이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한 때는 강한 상대에 대한 네가티브가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번 대선 패배의 트라우마와 촛불정국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문재인을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 세운 것은 명백한 패착이었다.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박원순 시장이 가지고 있는 표의 확장성이다. 박원순 시장은 과거 시민 운동의 경험이 겹겹이 쌓여 마치 단단한 알처럼 굳어진 부분이 없지 않다. 박원순 시장이 가지고 있는 알은 대한민국의 그 어떤 정치인이 가지고 있는 알보다 크고 단단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알이 너무 단단하다 보니 다른 알에 비해 확장성은 떨어진다. 대선은 하나의 단단한 알이 차지할 수 있을만큼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 갈 밭이 없어서 밭을 탓하며 떠난 농부, 반기문 전 총장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 1번지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해 떨어질 때마다 “농부가 밭을 탓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한 노무현 정신이 노사모를 만들었고, 노사모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음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정치 초보 반기문은 불출마 선언을 하며 밭을 탓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만약 저 양반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임기 내내 국민 탓만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UN 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이어진 이번 대선이 반기문 전 총장에게는 대통령을 꿈 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오라는 데는 많았지만 딱히 갈 데는 없었다. 반기문 전 총장은 대권의 꿈을 꾸며 자기 앞에 놓여진 여러 선택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샤머니즘 국가로 만든 박근혜의 원죄를 여전히 품고 있는 새누리로 갈 것인가, 아니면 권력의 단 맛을 함께 빨아먹다가 찌질하게 떨어져 나간 바른정당으로 갈 것인가… 관료는 상상력이 풍부하면 안된다. 아니 관료는 정확히 자신이 책임질 부분까지만 상상한다. 그래서 우리는 관료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반기문 전 총장을 평생을 관료로 살아온 몸이다. 반기문 전 총장은 현재의 새누리와 바른정당의 비루한 처지를 보며 전 UN 사무총장이었던 자신이 결합해 만들어 낼 시너지를 상상해 내지 못했다. 이명박이 아무리 나라를 파 헤쳐 폐허로 만들고, 박근혜가 아무리 무당의 굿판 위에서 날뛰어도 결국 대한민국의 대선은 막바지로 가면 대략 50대 50으로 갈린다. 상상력이 빈약한 관료 출신의 반기문 전 총장이 어렵게 머리를 짜내 만들어 낸 말이 결국 ‘정치 교체’와 ‘진보적 보수’이다. 오라는 데는 많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반기문 전 총장은 혼자 텐트를 치고 사람들이 올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을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진보적 보수라고 포지셔닝 했다.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그런 반기문 전 총장에게 헛다리 짚지 말고 새누리로 들어오라고 충고 했다. 상황이 녹록치 않음을 느꼈던 반기문 전 총장은 결국 불출마 선언을 통해 대권의 꿈을 영원히(?) 접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완주했으면 정말 좋았을 뻔 했던 반기문 전 총장의 지지율은 뜬금없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가장 많이 돌아갔다.  


선거기간 내내 난리난리 개난리를 쳤던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처럼, 대한민국의 대선도 눈에 보이는 지지율에 안심했다가는 지난 대선 꼴이 날 수도 있다. 인간의 숨겨진 탐욕은 당위나 명분보다 훠얼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천박함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성과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만 경쟁에서 승리하면 된다는 어떠한 당위나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천박함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겠는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하고 있는 지지는 박근혜로 인해 그 탐욕이 까발려지자 황교안이라는 밋밋한 대안을 찾아 숨은 결과다. 현재로서는 문재인이라는 대세에 가려 크게 의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식 자본주의에서 돈만 밝혀온 대한민국의 천박한 탐욕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에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