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얘기만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딸...
미성년인 아이들을 내보낼 수 없으니 자신이 나가겠다고 울먹이는 엄마...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아빠...
이게 현재 우리집 모습이야...
그동안 몇 년째 수차례의 합의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서로 감정만 다치고 끝이 났지.
가족과의 합의는 실패했고,
우리 가족은... 이제 더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아.
권위는 실종되었지만,
그래도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아빠는 더이상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종의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
아빠가 왜 사는지 생각해 봤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지옥같은 오늘을 사는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은기, 은수...
은기가 어렸을 때 했던 말이 생각이 나네...
“엄마, 아빠, 우리는 가족이지~”
그래, 우리는 가족이고... 아빠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야.
가족을 위협하는 무엇이 있다면 그 무엇으로부터 가족을 지킬 의무가 있는 사람...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현재 우리 가족을 위협하고 있는 가장 큰 존재는
사춘기의 절정을 치닫고 있는 은기도,
결혼 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육아에 매달려 온 엄마도,
조금씩 머리가 굵어져 반항을 시작한 은수도... 아니라고 생각해.
한 번 우리 가족에게서 핸드폰을 걷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 봤어.
모두 힘들겠지...
아빠는 개인적으로도 핸드폰을 사용하지만, 적지 않은 부분 업무를 위해 사용하고 있고...
그래서 일 하는데 많이 불편할 거야. 얼마나 불편할지는 아직 상상해 보지 않았지만...
누워서 핸드폰으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는 엄마도 불편하긴 마찬가지겠지.
어쩌면 살아온 인생 대부분이 핸드폰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은기와 은수는 더욱 힘들지도 몰라.
왜 모든 문제를 핸드폰과 연결시키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핸드폰이 없었을 때 우리 가족은
서로를 바로보는 시간, 이야기하는 시간, 의존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
물론 언제까지 은기와 은수를 엄마와 아빠 품 안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법적으로도 그렇고...
아직 은기와 은수는 엄마아빠 품을 떠날 준비가 안되어 있고...
엄마아빠도 은기, 은수를 내보낼 준비를 하지 못했어.
처음에 아이폰을 산 건 아빠였지...
아빠도 아이폰에 빠져서 조금씩 우리 가족과 멀어졌던 것 같아.
그 다음은 엄마...
엄마는 처음엔 아이폰을 안 쓰겠다고 했지.
하지만, 쓰고 나서부터 엄마도 아이폰에 빠지게 되었지.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그리고, 은기와 은수...
요즘 아이들은 아빠가 자랄 때와는 달라서
온라인 소통을 하지 않으면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이왕 스마트폰을 쓸 거면, 안드로이드 보다는 직관적인 아이폰을 쓰게 해 주고 싶었지.
엄마는 반대했지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 가족은
손바닥 만한 기계에 빠져서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지...
아빠가 그걸 처음 느낀 날이 아마 은기에게 손찌검을 한 날일 거야.
아빠가 생각하는 은기의 모습과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는 은기 모습 사이의 괴리를
그 당시 아빠는 동물적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은기도 그렇겠지만, 그 행동의 트라우마로 아빠는 가족의 문제에 대해 더 우유부단해 진 것 같아.
모든 것을 아빠보다 이성적인 엄마한테 떠 넘겼지.
은기와 은수도 힘들었겠지만, 엄마도 많이 힘들었을거야.
핸드폰이 없으면 모두 불편하고 힘들거야.
그래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은기은수도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이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아빠가 우리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아.
핸드폰이 없어서 집을 나가거나 만약 은기가 말한대로 더한 생각을 한다고 해도
아빠는 말릴 수가 없어...
말로도 설득이 안되고, 그렇다고 얘전처럼 아빠가 동물처럼 힘으로 할 수도 없으니...
그리고...
가족의 관계보다 핸드폰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딸에게,
핸드폰만 쓸 수 있다면 가족이 어떠한 상처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딸에게...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아빠는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 가족을 벼랑에서 떨어지도록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엄마와 아빠에게 눈을 부라리며, 신경을 끄고, 냅 두라고, 죽어 버리겠다고 하는 은기를 보며
우리 가족이 다시 옛날로 돌아 올 수 있다는 기대도 저버린지 오래야.
다만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야.
우리 가족에게서 핸드폰을 걷어내겠다는 아빠의 결심은 바뀌지 않을 생각이야.
그리고, 그 책임은 모두 아빠가 질 거야.
만약... 아빠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우리 집에서 제일 많이 산 아빠가 죽을게.
손바닥만한 핸드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기엔
아직 십대라는 나이는 결정된 것보다 가능성이 더 많은 나이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