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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과T에서 과잠까지, 대학교 단체복의 변천사...

by Back2Analog 2018. 4. 22.

80년대 연합 집회나 회의에서 만난 서울대 학생들은 자신이 소속한 대학을 다소의 겸손과 부끄러움을 담아 ‘관악’이라고 소개했다. 공부를 못해 서울대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는 왜 서울대를 그렇게 소개하는지 직접 물어본 적은 없으나 내가 만난 서울대생 중 10중 8~9는 자신의 대학을 소개할 때 '관악'이라고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배들로부터 따로 교육을 받았을까? 아니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통일까? 우리 사회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학벌사회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소극적 표현일 수도 있고, 대학 이름 앞에 대한민국의 수도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한 미안함일 수도 있을 거라 추론한다. 아무튼... 그 시절에는 자신이 가진 것이 오롯이 자신이 잘 나서 획득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겸손의 미덕 같은 것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학생들의 상식이 그러하였으므로, 총학생회에서 학교의 이름을 크게 새긴 단체복을 따로 제작하지는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입학할 때 학교에서 나눠주는 체육복에는 학교명이 영문으로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보통은 과 차원에서 과티를 만들어서 입거나, 큰 행사를 홍보하기 위해 티를 제작하기도 했던 것 같다. 과티에는 학교나 과의 이름 보다는 주로 과의 특성을 살린 기발한 문구를 더 크게 넣었다. 이를테면... 내가 다녔던 학교의 철학과 과티에는 앞면에 크게 "과티"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난 역시 철학과 답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과티의 앞에는 "앞면", 뒤에는 "뒷면"이라고 적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옷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국문과였던 나는 과티는 아니었지만, "나랏말 싸미 듕국에 달라, 미국에 달아, 일본에 달아"라고 쓰여진 옷을 즐겨 입고 다녔다. 

그 외 큰 행사를 앞두고는 홍보를 위해 티를 나눠주거나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전대협(한총련) 출범식이나, 통일선봉대, 범민족대회, 청년학생 한마당 티 등이 그런 경우다. 가끔(?)은 티에 새겨져 있는 문구에 NL, PD 등 정파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어 옷으로 정파를 구분하거나 정파적 소속감을 고취시키려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주로 NL계열은 조국, 민족, 통일 등의 문구를 선호했으면 PD는 민중, 노동 해방 등의 문구를 주로 티에 새겨 넣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시대는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보다, 어떤 정파에 속해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요즘 대학생들을, 그 중에서도 신입생들 중심으로 과티 보다는 소위 '과잠'이라고 하는 단체복을 즐겨 입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대학 이름뿐만 아니라 자신의 출신고(주로 자사고나 외고)까지 새겨 넣어 과도한 학벌 과시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렇다고 과잠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고등학교와 달리 사복을 입어야 하는 대학생들 입장에서 과잠은 어느 옷에나 편하게 걸칠 수 있는 매우 저렴한 외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잠 한 벌의 가격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35,000원 ~ 90,000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신입생들은 보통 학교 마크가 새겨진 잠바를 입고 다니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은 고3이 아니고서야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고학번이나 졸업생들 중에는 후배들이 잠바를 입고 우르르 몰려다니면 염병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까지 있다(…). 간혹 이런 문화를 장삿속이라거나 무의미한 학벌자랑이라고 비판하는 교수님들도 있다.
신입생 때를 빼면 편하고 겨울옷 챙겨입기 귀찮아서 입고 다닌다. 특히 고시생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으며, 각 학교 중앙도서관이나 근처 독서실, 고시학원 등에서 과잠을 입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끔 대학생활 동안 한 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과잠을 입고 다니는 용자도 존재한다." (나무위키, "과잠바"에서 인용)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서열을 매기는 것에 매우 익숙해 있다. 꽃 중에서 1등은 단연 장미이고, 꼴등은 아마 '풀꽃'일 것이다. 오죽하면 소설가 조정래가 "풀꽃도 꽃이다"라는 제목의 교육 소설을 썼겠는가! 서열 사회에는 늘 '자부심'과 '부러움'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자부심과 부러움으로 분리된 서열의 차이는 '계급' 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계급 갈등은 적어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작동하지만, 서열 갈등은 자칫 서로에 대한 혐오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혐오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증거는 '일베'나 '메갈'의 사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갈등이, 투쟁이 혐오로 발전하면 그 이후에는 답을 찾기 어렵게 된다. 

과티와 과잠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혐오 논리로까지 나아가다니... 기성세대에 속해 있는 내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지옥 같은 입시 경쟁에서 승리한 대학생들이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입는 과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 사회를 '자부심'과 '부러움'으로 갈라놓은 주체는 대학생이 아닌 오히려 잘난척 하는 나 같은 기성세대이다. 나는 그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 살펴볼 뿐, 그 책임을 나로부터 분리할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난 나의 무능력과 무관심을 질타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과티와 과잠에 대해 자부심과 부러움으로 분리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그 자부심과 부러움에 대해 툭 터놓고 얘기를 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