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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책 이야기

괴물과 함께 살기

by Back2Analog 2017. 6. 12.


서구의 시민사회는 일찍이 정치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자본주의 성장과정에서 점차 경제 영역으로 그 역할이 이동되어 왔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과정 속에서 서구의 시민사회는 독특한 경제적 경험을 축적했을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시민사회는 해방이후 독재정권과 투쟁해 온 재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과, 대한민국의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끈 개발독재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점 등, 아직도 정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정치적 시민사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비타협적 이념 투쟁의 근육을 단련시켜 왔다면, 경제적 시민사회는 경제의 효율적 성장을 위해 이견에 대한 절충과 타협 능력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의 시민사회가 "질이나 구조, 성능 등을 고쳐 더 좋게 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개량'에 대해 경끼를 일으키는 이유도 정치적 정체성이 경제적 정체성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비난이나 비판이 아닌 보완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다음은 정성훈의 '괴물과 함께 살기'에서 인용한 글이다. 

스미스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자기애 추구와 활발한 거래 및 교환을 위해 국가의 역할을 소유권 보호로 최소화시켰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이 간파했던 사회구조 변동의 방향은 국가의 최소화라기보다는 정치와 경제의 ‘분화differentiation’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로크 시절까지도 유지되었던 ‘시민사회는 곧 정치사회’라는 도식이 점차 깨진다. 정치가 사회를 대표하던 시대가 끝나고 정치와 사회 혹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것으로 파악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치나 국가가 아닌 경제가 사회 또는 시민사회를 뜻하게 된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19세기의 여러 지식인들의 글에서 ‘사회적social’이라는 말은 ‘정치적political’과 대립되는 수식어로 쓰였다. 즉 사회란 국가나 정치가 아니라 경제적 토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 영역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 것이다.

-알라딘 eBook <괴물과 함께 살기 :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루만까지 한 권으로 읽는 사회철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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