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문화+교육/영화 이야기

좀비 영화의 개연성

by Back2Analog 2016. 8. 14.


1. 좀비 영화의 개연성
다양한 영화 장르가 있다. 멜로, 코미디, 호러, SF, 그리고 좀비...
내가 인상 깊게 본 좀비 영화는 레지던트 이블과 웜 바디스, 그리고 최근에 본 부산행이다. 그 외에도 본 좀비 영화가 없지는 않으나 아마도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영화와 현실과의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레지던트 이블은 밀라 요보비치의 매력이 쩔기도 하지만, 다국적 방위 산업체 엄브렐러가 생체 생화학 무기인 앨리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좀비들이 등장하게 된다는 현실과의 개연성이 깔려있다.
웜 바디스에서는 기존의 좀비 영화와는 다소 다른 각도로 좀비를 조망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좀비를 악마화시킨 것이 아니라 좀비 입장에서 인간을 바란본다. 다소 코믹스럽긴 하지만 웜 바디스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뒤엎는 의외성이 현실과의 개연성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본 부산행은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다른 주제들(우리 은슈를 펑펑 울게 한 공유의 부정(父情), 좀비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신, 좀비물 특유의 끔찍한 볼거리 등...)에 비해 다소 밀려나 있기는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현실 개연성이 충분한 제법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부산행의 프리퀄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좀비 발생 원인에 대한 암시가 바로 그것이다.
능력있는 펀드매니저로 분한 공유는 자신(회사?)이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문제가 있는 회사를 소위 작전을 통해 살려내는데, 그 회사에서 발생한 사고가 좀비 발생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는 회사의 도덕성을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회사가 자신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느냐, 아니면 손해를 입히느냐이다.

2. 손해의 의미와 크기...
내가 어공으로 일을 하면서 만난 모든 민원인들의 공통점은 자신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심정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다. 나의 손해가 공익이 아닌, 누군가의 사익이 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왜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겠는가!
이러한 손해의 의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손해의 크기이다.
사소한 손해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내가 손해를 감수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누군가의 피해 또한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러한 태도는 사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독재자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며, 때로는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기도 한다. 어쩌면 권력자는 수백, 수만 명의 생명보다 자신의 사소한 감정적 손해의 크기가 더 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만행을…
과거에는 주로 물리적 힘의 형태로 존재하던 권력의 자리를 지금은 돈이 자치하고 있다.
힘의 권력은 소수로 구성되어 있는 지배자의 논리에 피지배자들이 복종하거나 또는 저항하는 수직적 성향이 강하지만, 돈이 만든 권력은 그 많고 적음에 따른 수직적 성향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키려고 하는 수평적 성향이 더해졌다.
수직적인 권력 관계는 투쟁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수평적 이해 관계는 투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말기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문제를 진단했던 마르크스의 처방전이 아직도 유효하기는 하지만, 교조적으로 맹신할 수는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