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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정’과 ‘반’이 ‘합’에 이르지 못하는 시대...

by Back2Analog 2017. 11. 7.

조금은 민감한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모름지기 ‘좋은’ 정책이란...
각각 독립적으로 돌고 있는 관성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의 집합에 비유한다면... 그 중에는 동력을 전달하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고, 주위의 톱니바퀴가 돌 때 무작정 따라 도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다. 어떤 톱니바퀴는 윤활유가 없어 빡빡하게 돌 수도 있고, 큰 톱니바퀴가 한 바퀴를 돌 때 수 십 바퀴를 돌아야 하는 작은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다. 혼자 도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고, 여럿이 함께 도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돌지 않거나, 돌지 못하는 톱니바퀴도...
도는 방향이 달라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빠그러지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고, 어설프게 맞물려 돌다가 빨리 닳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톱니바퀴가 더해지기도 하고, 녹이 슬어 사그라지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고...
문제는 한 사회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맞물려 있지 않아 각자의 관성에 따라 따로 돌아가는 톱니바퀴들...

정책이란 여기에 몇 개의 톱니바퀴를 의도적으로 더해 톱니바퀴의 회전 관성에 작용하는 것...
톱니바퀴 몇 개를 어떻게 더하느냐에 따라 특정 톱니바퀴 그룹을 더 잘 돌아가게 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톱니바퀴 그룹과 연결시킬 수도 있으며, 다른 톱니바퀴를 멈추게 할 수도, 나아가 열심히 돌고 있는 특정 톱니바퀴 그룹을 뽀갤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정책이다.

뭐 적폐 톱니바퀴는 당연히 뽀개야겠지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파편이 되어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르는 상식? 아니면 주관적으로 정한 적폐의 정도의 차이? 예수님이 환생하신다면 아마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적폐와 무관한 톱니바퀴가 적폐 톱니바퀴를 뽀개라!!!

맑스의 탁월한 통찰로 인해 문명이 시작된 이래, 적어도 근대까지 역사는 정반합으로 발전해 왔다고 확신한다. 굳어진 ‘정’에 ‘반’하는 것이 곧 ‘합’을 만들어 왔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합’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과 강대국 방산업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과 냉전, 그리고 학살까지도 미디어로 정당화되는...

의도와 무관하게...
‘정’의 오만이 ‘반’을 키우고, ‘반’의 목적의식성이 ‘정’을 고착화하기 위한 명분이 되는 시대... 그리하여 진보와 보수가, 노동자와 자본가가 이해관계라는 진흙의 카르텔 안에서 함께 뒹굴고 있는 시대... 마침내 ‘정’과 ‘반’이 ‘합’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딜레마의 시대...

오호, 통재라...

다시 말하건데, 좋은 정책이란 각자 독립적으로 돌고 있는 관성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톱니바퀴를 전략적이고, 창의적으로 배치해 조정하는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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