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스위치와 꼰대

누구나 자신이 중간이고, 평균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주변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자각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분노의 스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그 스위치가 켜지는 원인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노의 스위치는 육체적 고통에 반응하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육체적 고통보다 심리적 고통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가끔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다른 것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분노의 스위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의 난 뒤통수를 맞으면 분노의 스위치가 켜 졌었다. 뒤통수를 친 사람이 나보다 어른이든, 친구든, 아니면 아이든 뒤통수를 맞으면 정말 눈이 뒤집혔다. 지금도 그런지, 아니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최근엔 뒤통수를 맞아본 경험이 없기도 하거니와, 나와 친한 사람들은 어쩌다 내 뒤통수에 손을 댄 후 눈이 뒤집힌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분노의 스위치가 언제 켜 지는지 자각하게 된 후부터 그 스위치가 꺼졌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내가 가지고 있는 또다른 분노의 스위치를 발견한 것 같다. 두, 세 번 정도 비슷한 심리 상태에서 분노의 스위치가 작동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분노의 스위치가 켜 졌다고 해서 완전히 이성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감정을 숨기거나 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어쨌든...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분노의 스위치가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는지 알게 되었으므로 비로소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에 꼰대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보통은 ‘늙은이’나  ‘선생님’을 지칭하지만, 아거가 2017년에 쓴 “꼰대의 발견”에 따르면 오늘날 꼰대라는 단어는 특정 성별과 세대를 뛰어넘어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충고하는 것과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를 지칭한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는가? 혹시... 당신 주변에 있는 꼰대를 떠올리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꼰대를 주변에서 찾을 것 없이 당신이 바로 그 꼰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꼰대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꼰대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얼마전... 모구청의 요청으로 구정연구단 연구원 채용 심사를 갔던 적이 있다. 난 모든 응시자에게 같이 일하는 공무원과 의견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그 공무원을 설득하겠다고 답했다. 그 누구도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전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예전의 나처럼... 공무원은 반드시 틀렸고, 틀릴 수밖에 없고, 틀려야 한다는 확신, 그리고 그에 비해 자신은 반드시 옳다는 오만을 가진 듯 했다. 인간인 내가 감히 전지전능한 신을 심사하러 간 것일까? 

연역적 방식에 익숙해진 근대인류는 모두 답을 정해 놓고 사는 답정너가 되어 버린 것 같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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