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기억...



내가 코흘리던 시절을 제외하면 진정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또 존경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즈음인 걸로 기억한다. 어느 하루를 기점으로 앞으로는 그러기로 하자... 뭐 이런 것은 아니고...

국민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녀석들을 알게 되었다. 경태와 도연이... 그 전에도 친구는 있었겠지만 어른들과는 다른 또래만의 세계를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그 전의 친구와는 달랐다. 어쨌든 그때까지는 그래도 친구의 의미가 가족에 비견될 만큼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다.
친구의 중독성은 이제 훨씬 심해져 가족과 있는 시간보다 친구와 있는 시간이 "물론" 더 즐겁고, 나아가 굳이 가족이 없어도 친구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가끔씩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아마도...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 같다. 당연히 가족이라는 것은 그 사이에 끼지도 못했다.

다시 아버지 얘기...
철이 들어서 있을까? 어느 순간(위에 말했던 대로 대학 즈음...)부터 아버지의 사랑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가 왔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경험했지만 잊혀졌던... 아니 정확하게는 나의 의지로 잊어 버렸던, 아버지의 사랑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단칸방에서 셋방 살이를 할만큼 어렵던 시절, 세 발 자전거를 사 가지고 오시던 모습...
시장에서 새 운동화를 사 가지고 자전거에 날 태우고 돌아오시던 모습...
당신이 스스로 거대한 놀이 기구가 되어 날 태워 주셨던 모습...

사실 그러한 기억보다 더 크게 기억이 났던 건....
사랑을 가득 담아 나를 바라 보시던 아버지의 그 깊은 눈이었다.

그리고,
대학 즈음 보여 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자기 희생과 자식에 대한 걱정뿐이었던 것 같다.
옥상에 올라가 위험한 일을 할라치면...
혹시라도 자식이 다칠까 직접 하시겠다고 떼아닌 떼를 쓰시고,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올 땐, 꼭 나보다 하나 더 들겠다고 우기시고,
경찰서 앞에 와 형사 멱살을 붙잡고 내 자식 내 놓으라고 호통을 치시고...,
이십 여년 동안 멀쩡하게 키워 주신 몸뚱아리 다쳐 왔을 때, 그 상처를 바라보시던 쾡한 눈동자...

그리고... 지금...
나도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은기가 태어나고... 어느 날인가 불현듯 은기가 내가 중학생일때 품었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나에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 당시 아버지는 단지 무섭고 귀찮은 존재... 심하게는 아버지가 계시면 집안 공기가 무거워지고,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일찍 들어 오시는 게 정말 싫었던... 그 때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

과연...
그보다 더 끔찍한 상상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걸까?

.
.
.

하지만...
김정현의 "아버지"처럼...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운명이라면...
그 운명이 나에게도 다가 온다면...

어쨌든...
지금 당장은 정말 살 맛이 안 난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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