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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어설픈 페미

열혈강호, 민폐린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by Back2Analog 2016. 4. 10.

다음 열혈강호 팬까페에서 한때 논란이 되었었고, 지금까지 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민폐린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이 글을 지금도 창작의 고통과 연재의 압박 속에서 시름하고 계실 양재현 작가님께 헌정합니다. ^^


정말 담화린이 민폐린이라고 생각하세요? 


열혈강호 1권 초판 발행일이 1994년 12월 27일이네요...

열혈강호가 무려 20년을 넘게 연재해 오면서도 그 동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물론 늘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전극진 작가님의 탄탄한 스토리 구성 능력과, 갈수록 정교함이 더해가는 양재현 작가님의 작화 내공 덕분이겠지만… 전 열혈강호 공식 팬카페인 바로 이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쟁과 논란도 단단히 한 몫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저 만화일 뿐인 열강을 보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밖에서 지켜본 이들은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열강 속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 열강폐인들에게는 그 어떤 삶의 진실보다 열강 세계관의 무게가 덜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동안 기꺼이 외부자들의 따가운 시선과 유치함을 감수하며 그 논쟁들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논쟁과 논란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스토리 전개에 대한 독자들의 이견이 그 원인이었기에, 논쟁과 무관하게(때로는 유관하게?) 전개되어지는 연재를 통해 해소가 되어 왔습니다. 


빠뜨, 그러나...  

언제부턴가 등장한 민폐린 논란은 최근 귀면갑과 마령감 각성 과정에서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으나, 최근 대단히 편향적인(?) 관점으로 다시 민폐린을 거론하는 글을 보며 담화린을 민폐린으로 보는 것이 과연 담화린의 문제일까, 아니면 담화린을 민폐린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문제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자라면 그건 작가님의 영역이니 제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고, 만약 후자라면 민폐린 논란은 절대 경미하지 않은 사회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민폐린 논란을 사회문제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문화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그 해석이 다르고, 해석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는 소비자들의 세계관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흥부전은 조선시대 때 구전을 통해 창작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계몽 설화입니다. 흥부전을 통해 우리는 놀부처럼 살지 말고, 흥부처럼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당시 서민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반면 현대적 관점으로 흥부전을 해석한다면 흥부는 게으른데다가 대책 없이 애만 많이 낳는 무책임한 가장의 전형입니다. 반면 놀부는 현대사회의 성공한 캐릭터를 대변합니다. 흥부보쌈은 없어도 놀부보쌈은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들과 같은 세계관을 가졌다면 절대 보쌈집 이름에 놀부를 갖다 붙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얘기가 삼천포로… ㅠㅠ

암튼 제가 민폐린 논란을 사회문제로 보는 첫번째 이유는 논란의 등장 시기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민폐린 논란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매유진의 등장 즈음일 것입니다. 주인공 한비광의 파트너인 담화린을 대체할 매유진이라는 여성캐릭터가 등장하면서 민폐린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담화린을 민폐린이라고 싫어하는 인식 저 깊은 곳에는 언제든 더 좋은 조건의 여자가 나타난다면 그동안 만났던 애인(또는 아내?)과의 추억(결혼?)은 쉽게 던져 버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남자라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민폐린 논란 등장 시기에 대해 제가 착각하는 거라면… 

아마 그 시기는 한비광의 무공이 담화린을 뛰어 넘은 그 언저리 즈음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어떤 남자가 여자의 뒷바라지로 성공해 그 여자의 능력을 뛰어 넘게 되자 이제는 그 여자의 존재가 불편해 진다는…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이 사회 부도덕한 남성들의 전형… 담화린을 민폐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는 혹시 이러한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한비광, 나는 그런(또는, 그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남자니까 너도 그런 남자가 되어 나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여자)들한테 이 세상 남자들의 생각을 대변해 줘!”

그러한 생각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부끄러운 수컷이니까요. 하지만 전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저를 부끄럽다고 여기고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민폐린 논란의 수면 아래에는 이 시대 남성들의 여성관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뭐 사람마다 이성에 대한 취향이 다를 수 있겠으나… 매유진은 성격이나 몸매(?)… 등등이 모두 담화린 보다는 다소 여성성이 강조된 캐릭터입니다. 심지어 담화린은 남장 여자… 

농업 사회 이후로 지속되어 온 남성들의 가부장적 유전자는 늘 자신에게 순종하는 여성을 더 선호해 왔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이고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여성의 지위 향상(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지만…)은 왜곡된 유교 문화에 바탕을 둔 가부장적 유전자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시댁)과 아내(처가)가 가지는 위치의 변화, 일반적으로 남성 보다 더 안정적인 여성의 사회진출 등을 보면서 유전적으로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남성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제 주변엔 결혼 정년기를 넘긴 남성과 여성이 많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그 남녀를 서로 소개시켜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미혼 여성들은 대부분 능력이 있어서 결혼을 안 한 경우가 많고, 미혼 남성들은 능력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도 남성이고 남성들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최근의 불거지고 있는 남성들의 연애 폭력을 통해 우리는 여성의 지위 상승에 대한 남성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사회에서 남성들은 힘이 아니면 여성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찌질해 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주관적 인식의 객관화 입니다. 

사실 스토리 전개상 주인공 한비광은 담화린이 없었다면 이만큼 성장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강호로 화룡도를 들고 나오게 된 것도 담화린 때문이고, 한비광은 심지어 담화린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화룡도를 버린 적도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매 스토리 마다 한비광의 성장 뒤에는 담화린이 직, 간접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담화린을 민폐린이라고 말합니다. 한비광이 엽민천과의 대결에서 담화린을 죽이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때에는 아무도 담화린을 민폐린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제의 제자가 되어 무공의 기초를 닦고, 자하신공까지 익혀 드디어 무림 고수의 길에 들어선 한비광이 담화린을 죽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혈맥을 모두 끊어 버렸습니다. 민폐린을 이야기 하려면 이 시기에 했었어야 합니다. 이제 민폐린 논란은 스토리 전개와 무관하게 담화린을 향하고 있습니다. 담화린이 한비광을 위해 목숨을 걸어도 민폐린이고, 한비광을 지키기 위한 의지로 인해 마령검과 귀면갑을 각성시켜도 내가 이미 담화린을 민폐린으로 규정했으니 당연히 담화린은 민폐린인 되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한 번 낙인이 찍힌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낙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분단과 비타협적 이념 투쟁의 역사가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모두 나와 이 사회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고, 죽어 없어져야 할 악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모습이 민폐린 논란 이면에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 참으로 공포스럽습니다. 


이 글 또한 저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저와 다른 생각을 하시는 분도 많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제 생각이 틀렸다고 반박해 주신다면 예의를 다해 논쟁에 임하겠습니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인정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논란과 논쟁을 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쓴 글이 아님을 알아 주시길…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