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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어설픈 페미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비논리적 혁신의 대상 '가족'

by Back2Analog 2017. 1. 30.

대한민국 남자에게 있어 결혼은 여자에게 참 미안한 일이다. 나도 참 미안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은기엄마에게 결혼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프로포즈랍시고 했던 기억이 난다. 명절이 되니 페북에 대한민국 명절 문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에피소드들이 '가열차게' 올라온다. 전통이라는 껍데기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명절 문화, 나아가 결혼 문화 속에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만 있는 문제에 답 또한 있을 리 없다. 씨월드가 가해자라고? 그거야말로 진짜 일차원적인 생각이고...

채씨 가문의 종손 며느리로 누구보다 빡씬 시집살이를 해 온 우리 어머니... 보통은 시집살이를 하다가 시어머니에게 쫓겨 나는데, 우리 어머니는 시어머니가 너무 무서워 도망을 가셨었다고 했다. 심성이 누구보다 착하고 여린 분이지만, 난 적어도 대학시절에는 우리 어머니를 보며 결혼할 생각을 접었었다. 그 이유인 즉...

대학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연세가 적지는 않으셔서 호상(?)이었다. 장례는 시골의 여느 상가집처럼 장례식장이 아닌 작은댁 마당에서 치렀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총동원되었고, 멀리서 문상을 온 사돈의 팔촌까지 치마를 두른 사람은 모두 장례 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 나도 뭐 상을 닦고, 음식을 나르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술을 따르는 노동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시골의 장례식장은, 특히 호상인 경우 더더욱 그 분위기가 잔칫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상을 마치고 나면 예의 남자들은 술을 마시며 여기저기에서 화투판을 벌였고, 여자들은 여자들 대로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들며 장례 음식 준비를 했다. 상주들은 중간중간 해야할 장례 의식이 있었는데,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 상주들은 웃고 떠들다가도 그 순간이 되면 눈물 뚝뚝 흘리며 곡을 해야 했다. 그렇게 서럽게 울다가도 곡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그 속에 결혼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사촌 형수도 있었다. 그 때 난 생각했다. 내 주변에 어떤 여자가 저 문화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주변에 그게 가능해 보이는 여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 때는 그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난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

난 나이 서른이 넘어, 2000년 12월 3일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첫번째 명절을 맞았다. 은기 엄마는 딸 다섯 중 막내다. 결혼한 딸들은 모두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명절 다음날 모인다. 전주가 고향인 장인, 장모님은 당시 부천에 살고 계셨고, 은기 엄마를 제외한 처형들의 시댁은 모두 전주였다. 난 명절 당일 쓸쓸하게 보내실 장인, 장모님을 생각하며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사정 얘기를 하며 다른 형제들보다 하루 일찍 가서 명절 준비를 할테니, 차례 지내고 일찍 처가집에 가면 안되겠냐고... 어머니는 사위도 자식인데 잘 생각했다며 그러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루 일찍 가자고 은기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막내인 나는 결혼하기 전, 명절 때마다 형들이 처가집으로 떠나고 나면 늘 어머니의 뒷담화를 혼자 감당해야 했다. 결혼하고 나니 마누라 치마폭에 싸여 처가집밖에 모른다는 식의... 그 때마다 난 어머니께 그런 뒷담화를 듣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어머니를 설득하고 나니 이제는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은기 엄마의 설득이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형제들 보다 하루 먼저 가서 일을 했다. 그리고 설날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를 마치고 처가집으로 향하려는데, 어머니가 결혼하고 첫번째 명절인데 그래도 누나 얼굴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며 말을 바꾸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거지... 만약 누나도 시댁에서 누나의 시누이를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면? 누나를 기다리기 위해 점심을 먹었고, 점심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누나가 오지 않자, 이제 그만 가 보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시댁에서 오는 누나와 마주쳤다. 그래도 얼굴은 보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했다. 집을 나서서 처가집으로 향하는데 깜박 놓고 온 짐이 생각이 났다. 다시 돌아가 현관 문을 열려는 순간, 누나를 향해 하소연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희태는 안 그럴줄 알았는데, 이 자식이나 저 자식이나 결혼하고 나니 모두 다 처가집밖에 모른다고...

결혼하고 17년이 흘렀다. 시어머니로서 어머니는 한 풀 꺾이셨고, 은기엄마한테도 시댁을 대하는 태도에 나름의 여유가 생긴 듯 하다. 그 사이에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을 견디게 한 끊어내기 쉽지 않은 관계가 있었다. 세상이 차라리 논리와 당위만으로 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필연이 쌓이고, 그 사이 사이를 우연이 메운 결과이다. 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필연 보다는 우연이라는 변수가 더 많이 작용한다. 때때로 의도치 않은 우연은 음모론에 의해 의도적인 필연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논리와 당위만으로 세상이 바뀐 예는 드물다. 어쩌면 가족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변화시키기 쉬운 비논리적 혁신의 대상일지 모른다. 우리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다른 대상들은 그만큼의 시간동안 관계를 유지시킬 수 없으므로...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하며,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명절 문화와 결혼 문화도 우매한 씨월드나, 여성으로서의 삶을 자각한 며느리나,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한남들 모두가 악의적 필연과 멍청한 우연이 만들어 낸 피해자임을 자각(?)하는 것에서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허리가 부러져라 만든 만두들... 만두를 빚는 일은 그럭저럭 재미있지만,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얇게 펴 만두 피를 찍어 내는 일은 꽤 고된 노동이다. 몇 년 전부터 만두피를 사서 하자고 어머니를 조르고 있는데... 쉽지 않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