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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어설픈 페미

'Hidden Figures'라는 요리의 접시와 양념에 대하여...

by Back2Analog 2017. 3. 27.


꿀같은 주말의 끝자락인 일요일 저녁 6시 50분… 은기엄마와 은기를 데리고 ’Hidden Figures’를 보고 왔다. ‘히든 피겨스’의 시대적 배경은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61년의 미국이다. 당시 소련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며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의 우수성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자존심을 구겨가며 소련을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던 때이다. 영화를 통해 보여진 미국의 분위기는 닐 암스트롱이 1969년 달을 밟은 게 과연 과학적 사실인지, 정치적 사실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과장되어 있다. 

빌어먹을 공산주의자들이 인공위성으로 미국을 감시하고 있다며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경찰이나, 유리 가가린이 지구 궤도를 무사히 돌고 귀환하는 모습을 공포스럽게 지켜보며 소련을 앞지르기 전에는 집에 들어갈 생각하지 말라며 채근하는 나사의 우주개발 프로젝트 책임자(캐빈 코스트너)나, 그리고 마치 지역 감정을 비롯한 모든 갈등을 붉은 악마로 통합시킨 지난 2002년 월드컵 때의 대한민국처럼, 인종차별이라는 어마어마한 갈등 속에 있으면서도 우주개발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흑인들의 모습은 웬지 익숙하면서도 생경하게 느껴진다. 

물론 헐리웃 영화인 ‘히든 피겨스’의 메인 주제가 동서냉전 시대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던 미국에 대한 기억 따위일 리가 없다. ‘히든 피겨스’를 음식에 비유하자면, 인종차별을 딛고 올라선 미국 흑인 여성들의 감동적인 도전이 메인 요리이다. 그리고 그 메인 요리를 동서냉전 속 미국의 분위기라는 접시가 단단히 받치고 있고, 당시 인종차별보다 덜 절박한 문제였던 여성인권이라는 양념이 다소 의도적으로 얹혀져 있다.

적어도 인종차별의 문제는 이제 전지구적 이슈는 아니다. 그래서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므로… 하지만 만약 메인 요리가 아니라 요리를 받치고 있는 접시와 그 위에 얹어진 양념에 주목을 한다면 ‘히든 피겨스’는 마냥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소련의 붕괴로 세계는 동서 냉전에서 벗어 났을지 모르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는 여전히 남북 냉전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마치 북한 미사일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매스컴이 오버랩 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안보 문제를 대하거나, 친일 기득권 세력이 오랜 세월 구축해온 극우적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좌측으로 쏠리기라도 하면 당장 ‘종북’이라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다음으로 여성인권 문제는 개인적으로 장차 대한민국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보다 더 유교적인 가부장제가 마치 유전자처럼 각인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와, 경제와 더불어 압축적으로 성장한 민주화 과정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여성주의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깊고 넓은 간극 때문이다. 마치 중산층이 없는 양극화가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 듯, 중간지대가 빈약한 이념의 양극화는 사회 갈등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휴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여성가족정책론’이라는 수업을 청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