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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포스트모던 시대의 변증법...

by Back2Analog 2017. 11. 10.

맑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통해 인간의 역사발전 단계를 과학적으로 이론화한 바로 순간, 아이러니 하게도 변증법은 새로운 변이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정해진 것을 벗어나기 위해 상상하는 존재이므로...
과거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할 당시와 비견될 정도의 무게중심이 포스트모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인류의 인식 안팎을 보편적으로 넘나드는 맑스의 변증법으로는 더이상 포스트모던 사회를 진단할 없다. 현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한 인류의 역사와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새로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한국에서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에 대해 가장 정통하다고 알려진 동양대 이철 교수님과의 페이스북 대화... ^^

얼마전에 사회연대경제 포럼 관련해서 프랑스와 덴마크를 다녀왔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프랑스의 사회당(?) 의원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혹시 니클라스 루만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르더군요. ㅠ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하머마스는 지고 루만이 뜬다"라는 기사를 보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으니 그 영향력이 독일을 넘어 유럽으로 확산되지 않았을까? 라는 기대를 가지고 물어보았는데...
제 일천한 지식으로 판단하건데, 러시아혁명 이후 맑스의 공산주의에 대한 상상은 실천과 학문이라는 두 가지 길로 나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레닌은 러시아는 혁명을 통해 맑스의 상상을 현실에 적용하는 실험을 한 반면, 호크하이머를 위시한 프랑크프르트 학파는 학문을 통해 맑스라는 위대한 통찰자의 그늘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사회연대경제에 같이 참석한 금천의 차성수 구청장님과 루만에 대해 잠깐 이유기를 나누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미 현실의 모든 분야에서 루만의 통찰이 펼쳐지고 있는데, 굳이 그 어려운 학문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만약... 루만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지적 능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해야만 한다면... 현실 세계에서 그 이론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엥겔스는 심오한 맑스의 사상을 도식화하여 대중화하는데, 나름 기여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중화라는 긍정성 이면에 교조주의라는 역설을 만들어 내는데도 기여를 했지만...
전 현재 루만을 그저 알게 되었다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기회가 되면... 기회는 저의 절박함이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만... 더 깊숙이 루만에 빠져보고 싶은 생각 또한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 그러한 저의 행동이, 루만이 말했던 것처럼... 루만이라는 전문적 체계 안에 갇혀 사회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루만의 이론은 대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때,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겠죠. 인류가 루만의 이론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 능력이 보편적으로 성장하든가, 아니면 루만을 이해하고 있는 누군가가 대중들이 이미 이해하고 있는 언어로 그 심오한 이론을 '도식화' 시켜 주든가... 제가 지향하는 것은 후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루만의 이론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능력가 여유가 되지 않음을 한탄할 뿐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예수를 중세를 대표하는 인물, 맑스를 근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들의 불규칙한 결합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의 사회인 포스트모던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은 니클라스 루만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 
맑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통해 인간의 역사발전 단계를 과학적으로 이론화한 바로 그 순간부터, 아이러니 하게도 변증법은 새로운 변이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늘 정해진 것을 벗어나기 위해 상상하는 존재이므로... 하여 제가 이전 댓글에서 말씀드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변증법"에 대한 고민이 근대와 탈근대, 맑스와 루만 사이를 연결(연속성으로서의 연결이 아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루만의 언어를 사용해야만 루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은 사회를 떠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만이 그것을 진정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소위 이 시대를 진보시키고 싶다는 주관적 열정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맑스의 언어로 루만을 설명해 내지 못한다면... 루만의 이론은 실천적 의미를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이상은... 루만의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는 한 후학의 치기 어린 괴변이었습니다. ^^

@back2analog


댓글2

  • Back2Analog 2017.11.13 22:28 신고

    이철 교수님이 제 글에 달아주신 댓글을 옮겨 적습니다.

    오전에 서울로 이동하여 일정을 마치고 이제 귀가했네요. 프랑스 사회당원이 루만을 몰랐다는 것은 프랑스와 독일의 심리적 거리와 사회당원들과 루만 체계이론의 간극으로 미루어 당연한 일일 수 있을 겁니다. 독일어권에서는 2006년부터 관련 총출간물 양이 하버마스의 그것을 추월한 이후 계속 차이를 벌려가고 있습니다. 루만이 70년대부터 집필 작업을 했던 결과가 이제 초학제적인 바람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니, 우리나라도 기다려 보시지요.

    포스터 모더니즘은 이론 자체의 역량보다 부정에 더 많이 의존할 뿐이어서, 지속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채 선생님이 마르크스를 좋아 하시는 것은 알면서도, 그러한 선호 자체가 이론 자체의 역량 때문이었다기보다 그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현실로 인해 착시 현상이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마르크스는 성과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았지요. 경제체계를 정치체계의 계획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역사적인 실패로 드러난 것이 그 보기이겠지요.

    저는 지금 사회의 시급한 문제가 실제 사회의 작동과 그러한 사회를 기술하는 의미론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가 먼저 변한 후, 그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사회학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사회학은 현재 베버, 뒤르켐, 짐멜 등, 기둥 몇 개 세운 정도였을 뿐, 통일적 이론도 관점도 만들어내지 못했지요. 국내에서는 파슨스 전공자가 몇 년 전 가까스로 한 명 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동안 사회는 다시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요. 이제 사회는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정과 반이 합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상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 과학, 종교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의 문제가 되었고요.

    자본/노동 프레임이든, 지배/피지배 프레임이든 그 자체가 효력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보수/진보 프레임 또한, 시간이 바뀌니 보수가 지킬 가치도 바뀌어 버렸고, 진보는 낡은 가치를 실현하려는 “보수”가 되어 버리지요.
    답글

    • Back2Analog 2017.11.13 22:31 신고

      이철 교수님의 댓글에 이어지는 저의 댓글입니다. ^^

      저는 교수님과의 이런 대화가 매우 유익한데... 혹시라도 제가 교수님 정신을 어지럽혀 드리고 있다면 당장 멈추겠습니다. ^^

      몇 가지 이견이나 보충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덧붙이겠습니다.
      1. 포스트 모더니즘은 말 그대로 모더니즘과 비교하여 다른 경향성들의 집합...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는 프리 모던, 모던, 포스트 모던의 경향성들이 뒤섞여 있구요.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 모던니즘에 특정한 가치를 부여하여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은 사회학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요? ^^
      2. 저는 예수와 더불어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꿰뚫은 통찰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도, 마르크스도 매우 좋아하지요... 하지만, 크리스챤과 맑시스트들은 경계를 하는 편입니다. 종교도 독실한 안티 크리스챤이구요. 막시스트와 관련해서는 주관적 당파성에 빠져 교조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3. 시간이 바뀌니 보수가 지킬 가치도 바뀌어 버렸고, 진보는 낡은 가치를 실현하려는 '보수'가 되었다는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4. 마지막으로... 루만 이론의 사회적 쓸모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17년 전에 태어난 예수의 통찰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요? 예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극히 일부분만을 말과 행동으로 '통지'했을 것이고, 그 통보를 주관적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12 제자일 것이고, 그 제자들로부터 비롯된 정보 - 통지 - 이해의 반복을 통해 굴적된 것이 지금의 기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지요. 엥겔스와 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굴절되었을 것입니다.
      루만에 대해서도... 그런 전철의 되밟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루만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루만을 감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루만의 생각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
      하여 저는 가능하면 루만에게 더 다가갈 생각이지만, 그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제 뇌를 혹사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루만도 그걸 바랄 거 같구요. ^^
      제가 저의 주관적 필요에 의해 루만을 끌어들인 이유는 루만의 이론이 이 사회를 객관적으로 진단하는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준비하고 있는 논문이 얼추 마무리되면, 김태정 군을 따라 루만학회에 열심히 다닐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