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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영화 이야기

"안녕, 나의 소녀"를 보며 이정희를 생각하다.

by Back2Analog 2018. 5. 28.

며칠 전, 은기와 “안녕, 나의 소녀”를 봤다. 여주는 대만의 대표적인 청춘물, “나의 소녀시대”에서 린전신 역을 맡아 오글거리는 연기를 했던 송운화다. 내가 본 몇 안되는 영화 중, 빗 속에서 넘어진 채 따라오는 남자를 손을 뻗어 저지하는 장면을 능가하는 오글씬은 존재하지 않는다. ㅋ 

바로 이 장면! ㅋ

송운화는 “안녕, 나의 소녀”에서는 청순미를 살짝 벗어 던지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스타 ‘은페이’로 분한다. 아무로 나미에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1997년?) 일본의 한 기획사는 대만에서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오디션을 연다. 은페이는 당당하게 오디션에 뽑혀 일본으로 진출하지만, 1집을 낸 후 팬들에게 잊혀져 비운의 삶을 살다 38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은페이를 짝사랑하던 친구, 정샹(류이호 분)은 은페이의 장례식장에서 나와 신비로운 노파(?)로부터 세 송이의 꽃(목련?)을 산다.

“한 송이에 하룻밤”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는 노파... 정샹은 신비로움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한다. 눈을 뜬 정샹은 자신이 20년 전인 1997년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은페이의 불행이 오디션에 합격해 일본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정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은페이의 오디션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오디션 날짜가 연기되었다고 뻥을 치고, 자전거의 바람을 일부러 빼 스스로 다치는 등...

내가 "안녕, 나의 소녀"를 보며 든 생각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주인공 송운화의 외모가 현재 비운에 빠져 있는 정치인 "이정희"를 닮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정샹의 은페이에 대한 노력이 마치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내 모습과 오버랩 된다는 것. 먼저 이정희에 대해 얘기해 보자...

왼쪽 '이정희' 전 대통령 후보와 오른쪽 나의 소녀시대에 나왔던 '송운화'


이정희는 지난 2012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대놓고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최초로 공중파에서 일본 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본명(?)인 "다카키 마사오"를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등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으나, 토론 도중 대한민국을 "남측 정부"라고 표현해 종북 몰이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박근혜는 18대 대선에서 51.6%라는 악마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미 촛불 이전에 박근혜 치하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견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저지하려 했던 이정희는 진보와 보수를 포함한 국민 모두로부터 마녀 사냥을 당했다. 박근혜를 지지한 보수는 그렇다쳐도 이정희를 지지하거나, 그 또랑또랑한 사이다 발언에 열광했던 국민들은 왜 이정희를 마녀로 몰았을까? 우리 모두는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전가할 누군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비겁하게도 그 누군가로 가장 선두에서 박근혜와 싸운 이정희를 지목했다. 박근혜와 보수 우익뿐만 아니라, 언론도, 그리고 진보 진영마저도...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촛불 시민들에 의해 파면 당했다. 그리고 이명박근혜 시대를 보내며 마치 악마로 규정해 왔던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차례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곧 미국의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솔직히 이정희의 근황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인, 그리고 나와 다르지 않은 한 인간인 이정희가 그동안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는 만약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짐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늦었지만 진지하게 묻고 싶다. 2012년 대선 패배의 모든 책임이 이정희에게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는 그대들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질 생각이 있기는 한가?

나의 소녀시대에서 린전신은 부정행위를 했다고 의심받는 친구를 위해 자신도 처벌해 달라고 용기있게 나선다.

두번째는 은페이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정샹의 태도를 보며 든 생각... 은페이는 왜 정샹이 자신의 오디션을 방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은페이는 자신의 재능을 지지해 주었던 친구 정샹의 달라진 태도에 분노한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내 딸... 아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도 은페이처럼 마치 미래에서 온 것 같은 부모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정샹처럼 미래에서 온 것도 아니면서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오지랖에 근거한 확신과, 정샹처럼 미래에서 오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인생 경험 속에서 축적된 지혜에 대해 무조건적인 부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오만... 탈근대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장의 적당한 합의"라고 주장해 왔던 나는 부모의 '확신'과 자녀들의 '오만' 사이에는 '당장'도, '적당함'도, 그리고 '합의'도 없음을 깨닫는다. 

부모들은 과거를 살아온 자신의 '확신'이 자녀들이 살 미래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은 전부는 아니어도 부모가 제시하는 지혜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여지'를 둘 수는 없는 것일까? 탈근대 시대의 모든 결과는 0과 1 사이의 소수점으로 존재하지만, 근대를 살아온 우리들은 그동안 0과 1, 참과 거짓만을 구별할 수 있는 훈련을 해 왔다. 거듭 말하거니와 탈근대를 사는 우리는 참과 거짓, 정답과 오답, 그리고 세상은 0과 1로 존재한다는 '확신'과 '오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오력"해야 한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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