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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영화 이야기

국가 부도의 날...

by Back2Analog 2018. 12. 1.

일은 안하고 영화만 본다고 할까봐 후기를 안 올리려고 했지만... 그래도 영화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한 마디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몇 가지 파편적인 기억과 관점을 남기고자 한다.

1997년... 나 역시 무너져 가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급여는 밀리고, 사장은 아니었지만 사장의 후배라 당시 가지고 있던 음악 장비를 팔아 회사의 경비를 충당하기도 했었다. 이듬해에 난 회사를 그만 두었고, 대략 3년 가까이 프리랜서 작곡가로 버텼다. 몇 년 뒤 사장이었던 선배는 재기에 성공했는지 나한테 그 당시 유행하던 텔레토비로 교육용 CD를 제작한다며 음악 쪽 일을 의뢰했다. 난 회사가 힘들었을 때 내 장비를 팔아 회사 경비를 썼으니 밀린 월급은 못 주더라도 그건 좀 줄 수 없겠느냐고 말했다. 그나마도 말을 꺼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 당시 시대가 그랬는지, 내가 바보 같아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장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내 페이에 장비값을 얹어 주었다.
영화는 2007년(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 “The big short”와 다소 스토리가 겹친다. 한국의 IMF 사태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복잡한 금융이 만들어낸 사태니 뭐 당연할 수도 있겠다.
영화 “빅쇼트”에 마이클 버리 박사(크라스챤 베일)가 있다면, 영화 “국가 부도의 날”에서는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버리 박사는 저금리의 부동산 담보 대출(모기지)로 주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며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를 못 갚는 디폴트가 발생하고, 집을 팔아 이자를 갚으려는 사람이 늘어나면 당연히 집값 폭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자신이 관리하는 투자자들과 함께 CDS 채권을 사들인다. CDS 채권은 신용파산스왑, 즉 주택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데 돈을 빼팅하는 것이다. 한편 국가 부도의 날에서는 한국의 허술한 금융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간파한 윤정학이 다니던 금융회사에 멋지게 사표를 던진 후, 역시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곧 국가 부도가 도래할 것이므로 돈을 모아 달러와 폭락한 부동산을 사자고 꼬득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유아인이랑 친해 두는건데... 빅쇼트의 탐욕스런 월스트리트 금융자본 역할을 국가 부도의 날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담당한다. 국가 부도를 경고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의 조언을 무시하고, 사실을 은폐하며, 무한 경쟁의 시장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경제의 새 판을 짜기 위해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다. 그 때 IMF 총재였던 개새끼의 이름이 깡드쉬였나?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소새끼의 이름은 모두 알다시피 김영삼이었고... 참 미국 재무부 차관인 말새끼도 하나 등장한다. 죄없는 개와 소, 말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다.
금융권의 강제 부도, 외국 자본의 투자 제한 폐지, 적대적 M&A 허용, 노동 시장 유연화 등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자본주의의 악한 면, Dark side of the Capital은 모두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이 나라 국민은 나라 정도는 팔아먹어야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만약 IMF 사태가 없었어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을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정신 나간 국민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이 샤머니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두려워 2016년 겨울 내내 촛불을 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얼마전에 본 “완벽한 타인”이 그랬듯이 요즘 감독들은 영화 마지막에 관객들을 계몽하기 위한 메시지 하나씩 심어 놓는 게 유행인 것 같다. IMF 사태 이후 20년이 지나 이미 되돌리 수 없는 양극화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김혜수는 역사는 반복되며 또 당하지 않으려면, 첫째, 모든 것을 의심하고, 둘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셋째, 늘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고 충고한다. 개인적으로 둘째가 가장 마음에 든다. 지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혁신과 변화의 작은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 영화를 보며 느낀 생각... 지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금융자본주의는 인류가 멸망한다는 확신만 있으면 거기에 빼팅해 돈을 벌 수 있는 아주 잦같은 경제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