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탈근대 인류가 느끼는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가히 원시시대 인류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해 느꼈던 공포를 능가하고 있다.
원시시대 인류는 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자연 현상을 신의 뜻이라고 그 원인을 인간의 의지로부터 분리해 인식했다. 인류는 약 1만년 전, 밀의 유혹으로부터 비롯된 지난한 농경의 과정을 거치며 불확실하다고 느꼈던 자연현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해가 축적된 것이 바로 문명의 토대가 된 자연과학이다.

뻐뜨, 그러나...
무지한 인간과 분리된 신의 의지가 지배했던 사회가 차라리 행복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행은 인간의 필연이 아니라,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의 필연, 즉 우연의 영역이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우연의 결과를 받아들이면 되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재수가 없어서 내가 불행하다는데 누굴 탓하겠는가!
인류는 앞으로 더더더 불행해질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필연이라는 인과관계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불행은 필연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원인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류는 자연현상의 불확실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갖게 된 오만을 사회현상의 불확실성에 그대로 적용시킨다. 자연과학의 연구 대상인 자연의 법칙은 지구가 생긴 이래 본질적으로는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변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인류라는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므로 자연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리고 자연과학은 이미 지구를 넘어 우주를 향하고 있다.
자연과학은 인류와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연을 연구한다. 반면,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늘 가변적이었다. 지금 우리를 불확실성으로 내 몰고 있는 사회현상, 사회문제, 그리고 그 원인이 원시시대, 중세, 근대, 그리고 근대에서 벗어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동일할까?

사회과학이 자연과학과 다른 중요한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자연과학이 자연에 대한 외부 관찰의 결과라면, 사회과학은 인간이 인간을 살피는 자기 성찰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실 세계의 불확실성은 그것이 ‘통제 불가능한 개인’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집단이 개인을 통제할 수 있었던 영웅주의의 시대였던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사회현상의 불확실성이 이렇게까지 인간을 공포로 내 몰지는 않았다. 또한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존재해야할 연구 대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금세(?) 그 연구의 결과를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맑스의 자본론이다. 초기 자본주의를 통찰한 맑스의 사상은 노동자 계급에겐 저항의 무기였지만, 동시에 자본가 계급에게 노동자를 보다 세련되게 통제할 수 있는 억압의 망치를 쥐어준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인간이 사회과학을 통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확실성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면, 그리고 그 연구의 결과가 보다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사용되기를 바란다면, 사회과학에 섣부르게 가치나 도덕을 개입시켜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사회과학의 기틀을 다진 ‘막스 베버’나, 갈수록 프렉탈화 되어가는 사회를 체계이론으로 분석한 ‘니클라스 루만’이나... 정작 가치와 도덕을 앞세운, 주로는 교조화된 막시스트들로부터 현실에 작동하지 않는 영혼없는 학문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아마 현실의 열정이 주관 속에 갇히고, 학문이 객관화되면서 현실이 요구하는 영혼을 잃게 된 것은 교조에 빠진 맑시스트와 사회과학을 객관화시킨 막스 베버 간의 논쟁(?)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원래 첫 문장 하나로 글을 끝낼 생각이었으나, 상념과 잡념이 범벅이 되어 하염없이 글이 길어졌다. 이러다간 끝을 맺지 못할 것 같아 성급하게 결론을 맺겠다.

1. 갈수록 복잡해지고, 개인화되고 있는 사회로 인해 인류가 느끼는 불확실성의 공포는 더더더 확대될 것이다.
2.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연구의 대상이 가변적일뿐만 아니라, 대상과 연구가 상호 간섭의 관계에 있으므로, 자연과학이나 이전의 사회과학(ex: 근대를 대표하는 맑시즘?)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3. 사회과학의 역할은 사회문제의 해결이 아닌, 객관적 진단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사회과학의 특성으로 인해 가치나 도덕이 개입하면 객관적 진단이 불가능하다.
4. 사회문제의 해결은 사회과학이 수행한 객관적 진단에 기초해 정치나 행정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어야 한다.
5. 그래서... 난 배 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차라리 배 부른 돼지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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