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를 반대하시는 아르미님께...

댓글을 쓰다 보니 글이 길어져 새 글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런 답을 원하시는 같지는 않지만아르미님이 쓰신 댓글을 찬찬히 읽어보니관련 법과 주민 정서 사이의 간극 문제의 핵심으로 보입니다. 잠깐 삼천포를 먼저 다녀 오겠습니다. 앞에 보이는 답이 삼천포에는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도 찬찬히 읽었으니 아르미님도 찬찬히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조 :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를 둘러싼 갈등 (링크 클릭)

중세 이전엔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을 신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좋은 일은 신의 은총이고, 나쁜 일은 신의 시기, 그나마 긍정적인 사람은 신의 시험이라 여겼습니다. 전쟁터로 떠나는 자식에게 가족들은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지만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의 말처럼 신의 보편적 영향력은 중세에 막을 내립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신의 연할을 인간이, 중에서도 소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는 세기 전에 막을 내렸지만, 아직까지도 영향력 아래 사시는 분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수렵과 채집을 하던 원시시대 유전자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성들은공간 감각 뛰어난 반면, 여성들은공감 능력 뛰어납니다. 멀리 사냥을 떠나야 했던 남성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굴로 돌아오기 위해 년에 걸쳐 공간 지각 능력을 진화시켜 왔을 것입니다. 여성들은 동굴 근처에서 채집을 하며, 그리고 자식들을 돌보며 공감 능력을 진화시켜 왔겠지요. 대략 20 동안 생존을 위해 진화해 인류의 유전자로 인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지도를 보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한때 여성 운전자들은 남성들에게 소위김여사라는 혐오스런 단어도 불린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신이 사라진 불행한 시기입니다. 불행한 것은 신이 아닌 인간이, 중에서도 소위 전문가들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의 위치에 있는 전문가는 모든 인간의 요구와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이는 신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신이 인간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신도 없는 역할과 책임을 한낱 부족한 인간이 지려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절대 이성을 추구하며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오만은 급기야 인종 학살과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른 후에야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소위 탈근대라고 불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신이 사라진 이후, 산업과 미디어의 발달로 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간 사회의 저변에서 유지를 위해 작동해 왔던 상식입니다. 지금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시기의 가장 문제는 상식이 사라진 인간 사회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까의 문제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상식이, 마을과 학교의 상식이, 그리고 은평자원순환센터를 둘러싸고 행정과 주민이 서로 다른 상식으로 각을 세우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전 짧은 댓글에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등의 표현에 대해 불편하다고 지적한 이유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는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백지화를 요구하는 아르미님의 상식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역자원순환센터를 지어야 하는 행정의 상식이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사정을 한발짝 떨어져 살펴보면 사실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식과 더불어 사라진 것이 하나 있네요. 바로 신뢰입니다. 이상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의 손해가 공공의 이익으로 간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때만 하더라도 골목이 있었고, 골목을 중심으로 마을이 있었고, 마을 안에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국가 부도의 에서도 나왔듯 우리나라는 1997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MF 구제를 신청했고, IMF 철저하게 대한민국을 금융 자본의 사냥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IMF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모았던 금의 대부분이 부도덕한 금융 자본을 회생시키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올해는 31 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눈여겨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슬로건이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켜 것은 지배 계급이 아니라 밑에서 착취를 당하던 민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민초들 사이에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쉬운 얘기는 아니지만, 필요한 얘기라 주절거려 보았습니다. 현학질을 하려는 의도는 조금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이 아니기에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처음에 말씀드렸던무조건법을 지키려는 행정과, 법과 무관하게무조건반대를 하고 있는 주민들 사이의 벌어져 있는 인식의 간극이 조금이나마 좁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본문에도 썼지만, 이전에 지하화로 추진하자고 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반대가 극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사이에 지축지구 입주라는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휴먼 코미디라는 연극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러브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이 신문에서 학교 주변에서 영업하고 있는 러브호텔로 인해 아이들의 동심이 파괴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얘기합니다. “ 멀쩡히 장사하고 있는 러브호텔 주변에 학교를 짓고 지랄이야!” 반은 웃자고 드린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해당 부지는 2000년에 이미 도시계획법에 의해 폐기물 압축 시설 부지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만약 폐기물 압축 시설이 주거 밀집한 뉴타운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했다면, 주변에 뉴타운 개발을 하지 말거나, 뉴타운을 짓기 전에 해당 부지의 용도를 변경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소위 법의 상식입니다. 그리고 제가 본문에도 썼듯, 이미 뉴타운, 그리고 지축지구 입주자들은 해당 부지에 자원 회수 시설이 지어진다는 것을 인지했고, 시장논리에 의해 납득할 있는 비용을 지불하고 입주를 하였습니다. 만약 모르셨다면, 그것은 행정의 책임이 아니라 아파트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취득함에 있어 조사를 게을리한 입주민들이 져야 책임입니다.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백지화를 요구하시는 분들은 명백히 인과관계의 오류를 범하고 계십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지나가다가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습니다. 그런데, 앞에 살고 있는 주민이 나와서 쓰레기를 치우려는 사람한테 쓰레기를 버렸냐고 따집니다. 그냥 따지는 아니라 인격 모독까지 하며 모멸감을 줍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아르미님이라면 복창 터질 아니겠습니까? 아르미님이 쓰셨던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이라는 표현은 이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색 재활용 집하장의 이동 또한 구청장이 아니라 구청장과는 매우 무관한 2008, 이미 노재동 구청장 시절에 결정된 사항입니다. 하지만 또한 구청장을 공격하기 위한 논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논리에 자신의 유불리라는 감정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모든 구청장의 탓이라고 몰아 세웁니다.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부지의 지정, 은평뉴타운 지축 지구 개발, 수색 재활용 집하장 이동 등과 하등 연관이 없는 은평구청장에게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모함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주민소환제를 실시하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얼마전에 이재오 의원이와이라노라는 개인 유투브 채널에서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정말 분이 와이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재오 의원의 주장, 그리고 은백투가 주장하는 문제점 중에 창릉천이 하천법 12조에 따른 홍수관리지역이라는 것은 명백한 가짜 뉴스입니다. 창릉천은 홍수관리구역이 아니며 과거에 범람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부터 20 전인 1998년의 일입니다. 아르미님의 주장대로라면 지금까지 홍수로 인해 범람했던 모든 지역은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도 홍수관리지역이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망원동이 그렇죠. 상습적 침수지역이었던 망원동은 작년 집중 호우 때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기사 링크, “[중부 '100 만의 물폭탄'] '水害 단골' 중랑천ㆍ망원동 피해 없었다)

저는개인적으로 광역자원순환센터 같은 재활용 시설을 오히려 주거 밀집지역에 그것도 지상에 지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인천의 싸구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저는 경제적 여건만 된다면 그렇게 지어진 광역자원순환센터 바로 앞에 기꺼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진정 님비가 아니라 환경을 걱정하시는 분이라면 광역자원순환센터를 백지화가 아니라 지상에 지어달라고 요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매번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자원순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있기 때문입니다. 하천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천 위를 덮으면, 하천의 환경은 진짜로 심각하게 파괴됩니다. 댓글에 님비로 몰리는 억울하다고 하셨던 같습니다. 님비가 아니라면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다른 입장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를 둘러싼 입장에는 고양시와 은평구, 그리고 고양시의 지축지구와 향동지구 입장이 가장 첨예한 입장입니다. 제가 본문에 인용한 부동산 투자 전문가의 말대로 은평뉴타운은 행정 구역상으로만 해당이 되지, 물리적으로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것이 은백투만 부정하고 있는 상식입니다.


현실을 열정이 난무한 주관이고,

학문은 영혼을 상실한 객관이다!


제가 사회학을 공부하며 쓰게 말입니다. 현실은 모두 열정만 난무한 주관에 갇혀 있습니다. 각자의 주관만 남았고, 모두를 관통하는 소위 상식은 사라졌습니다. 상식이 사라진 시대,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입니다. 그래서 상식과 상식이 만나 논쟁이 벌어지고, 서로 합의가 안되면 우리는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법대로 하자고자신의 주관적인 상식에 벗어난다고 법을 무시하고 싶으시다면 방법은 가지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법이 관할하는 지역을 벗어나거나, 아니면 자신만을 위해 법을 만들어 정치인을 뽑는 것입니다. 현재 법이 지정한 자원 재활용 시설은 혐오시설이 아닌 필요시설입니다. 그래서 소각장이나 음식물 처리장과는 다르게 환경 영향성 평가 항목 자체가 다릅니다. 아르미님이 아무리 집값에 영향을 주는 혐오시설이라고 주장하셔도 시대에 상식을 대체하고 있는 법에는 그렇게 되어 있질 않습니다. 공무원에게, 그리고 구청의 행정 수반인 구청장에게 나의 이익을 위해 법을 어기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르미님은 제가 본문에 어떻게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 부지를 난지물재생센터나 수색 재활용 집하장으로 옮기는 것은 '어떻게(how)'가 아니라 '어디에(where)'의 문제입니다. , 스스로는 님비가 아니라고 주장하시지만, where how 생각하시는 순간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님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어떻게 5W, 중에서도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where 상수로 인정하고, 현재 생각하고 계시는 환경의 문제, 교통의 문제, 그리고 집값의 문제를 해결할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은평뉴타운을 쓰레기장이라는 프레임으로 주장하시는 것은 은평뉴타운의 가치를 지키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 때문에 은평뉴타운이 쓰레기장이 된다면 전 그 쓰레기장에서 살아 보는 게 소원입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선은 없습니다. 누구나 최선을 주장한다면 우리 사회는 최악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 백지화는 지축지구를 위한 최선일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광역자원순환센터가 지어진다고 해서 지축지구 입장에서 최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최악이 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축지구의 최선을 위해 광역자원순환센터를 짓지 않는다면 결과는 우리 모두의 최악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성스런 댓글을 달아주신 아르미님께서 원하시는 답변을 드리지 못해 참으로 송구합니다. 잠시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입장에서 한번 살펴봐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 사회가 더이상 최악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Back2Analog


P.S.  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은 얼마든지 수용하겠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비논리적 님비성 댓글은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Comments 4

  • 아르미 | 댓글주소 | 수정/삭제

    긴글 짬을 내서 찬찬히 이해하고 읽으려다보니 답변이 늦어졌습니다. 이해 부탁드리고 '어떻게'에 대한 단어부터 설명드립니다.
    Back2Analog님의 이전 글 서두에 갈등의 본질이 무엇일까?로 시작했었죠? 결론도 지혜를 모아가는 '어떻게'로 나아가길 바란다 하셨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장소도 갈등을 해소할 방법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에 고양시가 제안한 난지물재생센터 유휴부지(Where)를 이야기 하면서 '어떻게(How)'라고 쓴겁니다. 진관동 예정지를 고집하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니라 행정적 과제를 완수하고자 하는 것일 뿐 갈등의 해결의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관동 예정지에 짓는 것이 법을 지키는 것이고 반대하는게 불법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국가의 정책이 상황과 필요에 따라 바뀌는 경우를 인정 못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어떤 정책을 주민이 반대하면 무조건 범법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한낱 먼지와 같은 인생이 어떻게 신을 알까요? 신은 죽었다고 생각하든지 신은 살아있다고 생각하든지 각 개인의 신념이겠죠! 신은 항상 있었지만 인간이 신을 떠난 건 아닐까요? 부모가 말려도 집 나가는 자식처럼 말이죠!
    님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감정의 표출입니다. 님비현상에 따른 집단이기주의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아닌 것처럼 생각하여 저들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이라 생각합니다.
    공익에 대한 개념도 대의 명분을 앞세우면 해석도 달라지나요? 공공의 이익에 대해 사전에는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두루 보탬이 되는 것. 또는 그런 일이나 결과.'라고 나와 있습니다. '물질적' 정신적' 모두를 포함합니다. 두 집단이 있는데 어떤 시설을 지어서 두 집단에게 두루 보탬이 되면 공익이 성립하지만 어느 한쪽에 득보다 실이 많으면 공익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주거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야되고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보는 소수가 있다면 이주대책이나 응당한 보상을 해줘야 공평한 것 아닌가요?
    이재오의원이 창릉천 범람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1998년에 넘쳤다면 고작 2년 후인 2000년에 계획한 것도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창릉천변에 살아봐서 아는데 2000년 초에도 범람 직전까지 비가 왔었고 현재도 폭우때는 넘칠까  두려울 만큼 많은 물이 흘러내려 갑니다.
    정책은 문명의 발달과  갈등없는 세상을 동시에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는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반드시 주거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을테니까요!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를 진관동 예정지에 지으려하는 행정의 상식은 반대하는 주민의 상식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님비에 의한 집단 이기주의를 꺾으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님비의 문제라기 보다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나 도시로 탈바꿈한 은뉴 지축 삼송지구나 정책에 의한 것이며 진관동에 자원순환센터가 들어선다면 두 정책 중 하나는 실패한 정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Back2Analog님의 주장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제 주장이 앞서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 블로그에 다녀가는 분들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Back2Analog | 댓글주소 | 수정/삭제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되었을 땐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 이해관계 밖에서 자신을 살피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에 제 블로그에 올린 “내로남불”이라는 허접한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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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에서 남들과 똑같은 A+을 받았을 때... 가진자들이 왜 차별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아파트값이 은행 대출금 아래로 떨어졌을 때... 사람들이 왜 아파트값에 목을 매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중3 딸아이의 대안학교 면접을 준비하면서... 자식 앞에서 한껏 작아질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을 경험하였다.

      단지 마음을 먹은 것이 죄라면... 인간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죄는 이미 내 양심을 오염시켰다.
      이 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모순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개인이 몇이나 될까? 힘이 없는 자라면 더더욱 그 모순에 맞서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학원이 정하는 평가의 기준을 넘었다면, 그 사람의 노력과 재능이 비록 나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A+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아파트 값이 오르길 바랄 때마다, 널려 있는 많은 집들 중 왜 내 집은 없는지 한숨 지었던 때를 떠올릴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아이의 절박함을 외면한 채, 우리 아이가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합격하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대안학교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이야기 했다.
      고생했다고… 최선을 다했으니 떨어지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아니 말자고…

      간음한 여인에 대한 판결을 묻는 성난 민중에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바야흐로 내로남불의 시대다. 내가 나의 생존을 위해 한 행위에는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서, 다른 이의 행동에는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 어떤 역할로 존재하든 그저 사람일 뿐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악마나 마녀로 몰아세우지는 말자.
      그 잘난 판사도 세상과 독립된 헌법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양모 대법관을 보며 깨닫지 않았는가!

      그저 이 모든 것은 부족한 인간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과정을 살다가… 세상과 이별을 하는 순간, 그토록 바라던 결과가 되는 것이니…

      출처: https://www.back2analog.kr/426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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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는 아르미님이 쓰신 글을 직접 인용하여 저의 견해를 밝혀 보겠습니다.

      아르미님 :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장소도 갈등을 해소할 방법 중 하나라고 보기 때문에 고양시가 제안한 난지물재생센터 유휴부지(Where)를 이야기 하면서 '어떻게(How)'라고 쓴겁니다. 진관동 예정지를 고집하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니라 행정적 과제를 완수하고자 하는 것일 뿐 갈등의 해결의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관동 예정지에 짓는 것이 법을 지키는 것이고 반대하는게 불법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국가의 정책이 상황과 필요에 따라 바뀌는 경우를 인정 못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어떤 정책을 주민이 반대하면 무조건 범법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Back2Analog : 너무 나가셨네요. 반대하는 주민이 범법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익을 위해 법을 지켜야 하는 구청장에게, 그리고 공무원에게 범법자가 되라고 주장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은평 구청장은 은평뉴타운 구청장이 아니며, 은평구청의 공무원도 은평뉴타운만을 위한 공무원이 아닙니다. 하물며 이 문제는 거듭 말씀드리만, 그 중심에 지축지구의 이해가 더 깊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난지물재생센터를 대안제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합의되지 않은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르미님 : 한낱 먼지와 같은 인생이 어떻게 신을 알까요? 신은 죽었다고 생각하든지 신은 살아있다고 생각하든지 각 개인의 신념이겠죠! 신은 항상 있었지만 인간이 신을 떠난 건 아닐까요? 부모가 말려도 집 나가는 자식처럼 말이죠!

      Back2Analog :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신과 인간의 관계로 표현하신 거 같은데… 전 이러한 부모의 오만이 바로 대한민국 교육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신이 아닙니다. 부모도 자식도 모두 부족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부모는 확신에 찬 자신의 신념을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아이에게 강요하지요. 마치 드라마 <SKY 캐슬>에서 처럼… 말꼬리를 잡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주 관심분야가 교육이다 보니 오바를 하게 되었습니다. ^^

      아르미님 : 님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감정의 표출입니다. 님비현상에 따른 집단이기주의는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아닌 것처럼 생각하여 저들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이라 생각합니다.
      공익에 대한 개념도 대의 명분을 앞세우면 해석도 달라지나요? 공공의 이익에 대해 사전에는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두루 보탬이 되는 것. 또는 그런 일이나 결과.'라고 나와 있습니다. '물질적' 정신적' 모두를 포함합니다. 두 집단이 있는데 어떤 시설을 지어서 두 집단에게 두루 보탬이 되면 공익이 성립하지만 어느 한쪽에 득보다 실이 많으면 공익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주거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야되고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보는 소수가 있다면 이주대책이나 응당한 보상을 해줘야 공평한 것 아닌가요?

      Back2Analog : 아르미님은 스스로 님비임을 인정하신 것 같습니다. 맞나요? 님비는 맞지만, 님비를 무조건 악으로 몰면 안된다고 주장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저 또한 님비는 ‘현상’일 뿐 그것에 선과 악의 가치를 개입시켜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말씀드리면, 물질적 피해는 구체적으로 집값이고, 정신적 피해는 계량화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물질적 피해에 대해 보상을 주장하시려면, 반대로 물질적 이득에 대한 댓가도 지불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공평입니다. 참고로 뉴타운에 살고 있는 제 친구는 몇 년 동안 오른 집값이 제가 살고 있는 집값을 훨씬 상회하더군요.

      아르미님 : 이재오의원이 창릉천 범람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1998년에 넘쳤다면 고작 2년 후인 2000년에 계획한 것도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창릉천변에 살아봐서 아는데 2000년 초에도 범람 직전까지 비가 왔었고 현재도 폭우때는 넘칠까  두려울 만큼 많은 물이 흘러내려 갑니다.
      정책은 문명의 발달과  갈등없는 세상을 동시에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Back2Analog : 창릉천 범람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해결 방법이 없지 않습니다. 망원동처럼 침수를 막기 위해 빗물 펌프를 설치한다든지, 둑방을 높이면 됩니다. 이미 그러한 조치를 취했으니 20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거 아닐까요? 하지만 1998년의 범람 사례를 가지고 백지화를 요구하는 것은… 이미 답은 백지화로 정해 놓고, 그 반대의 명분을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내로남불만큼 위험한 답정너처럼…

      아르미님 : 광역자원순환센터는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반드시 주거지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을테니까요!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를 진관동 예정지에 지으려하는 행정의 상식은 반대하는 주민의 상식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님비에 의한 집단 이기주의를 꺾으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님비의 문제라기 보다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나 도시로 탈바꿈한 은뉴 지축 삼송지구나 정책에 의한 것이며 진관동에 자원순환센터가 들어선다면 두 정책 중 하나는 실패한 정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Back2Analog : 드디어 광역자원순환센터를 혐오시설이 아닌 필요시설로 인정하신 것 같아 반갑네요. 나머지는 여전히 서로의 상식에 대한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은 성공한 정책이고,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정책은 실패한 정책인가요? 그렇다면 주거지 인접한 곳에 자원회수 시설을 짓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실패한 정책의 나라인가요? 정책은 개인보다 집단을, 집단보다 지역을, 지역보다 국가를, 국가보다 인류를 위해, 그리고 현재의 이해관계가 아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수립해야 합니다. 개인의 이익을 지키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입니다만, 그 행위가 다른 대중에게,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에 피해가 된다면 그러한 이익의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마무리입니다.
      몇 년 전,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도시 가운데 수로가 지나가는데, 도로와 수로 사이에 어떤 안전 장치도 없더군요. 덴마크에선 개인의 부주의로 사고가 나는 것을 국가나 행정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총기 휴대가 합법화되어 있는 미국에선 아무리 억울한 개인도 경찰에게 감히 저항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행정 권력에게 그 정도 권한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공의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우리나라의 국가 행정이 국민들에게 그 정도의 믿음을 주지 못해 왔다는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국민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있듯, 행정의 수준은 곧 시민의 수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익에 반한다고 행정을 마치 악마로 규정하는 것은 그 주장을 하는 시민 스스로를 악마라고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주, 은평뉴타운 6단지에 살고 있는 한 선배를 만났습니다. 광역자원순환센터 이야기를 하니 자신은 집값을 떠나 늘어나는 현수막이 부끄럽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현재 은백투의 활동이 이성적인 단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합니다. 은평구청의 어설픈 대응도 문제지만, 백지화라는 답을 정해놓고 다른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은백투의 태도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르미님은 행정의 상식이 반대하는 주민의 상식을 이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보기엔 여전히 주민의 상식이 아닌 님비의 상식으로 보입니다. ‘백지화’라는 아젠다의 설정 자체가 이미 지극히 님비적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상식 위에 법이 있는 나라입니다. 은평구청은 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고, 은백투는 이익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백지화라는 목표 자체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은평구청과 은백투의 불행한 치킨 게임에서 모두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며, 결국 법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 예상합니다. 가 보지 않은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 아르미 | 댓글주소 | 수정/삭제

    상식을 두고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여튼 세월이 답을 주겠지요!

    • Back2Analog | 댓글주소 | 수정/삭제

      장문의 논쟁으로 우리는 겨우(?) 서로 상식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 같네요. 제가 쓴 두 개의 잡문을 추천합니다.

      다음 웹툰, 미래의 시간을 읽고...
      https://www.back2analog.kr/m/364

      니끌라스 루만 말하는 소통에 대하여
      https://www.back2analog.kr/m/171

      루만이 소통의 한계를 깨달아야 비로소 제한적인 소통이 가능하다고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논쟁이 이후 서로의 상식을 인정하고 접근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제 다른 글도 읽어봐 주시길...
      진지한 논쟁, 즐거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