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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스위치

by Back2Analog 2022. 3. 26.

사람들은 누구나 분노의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스위치가 켜지는 시기나 원인이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라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분노의 스위치가 육체적 불편함에 반응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심리적 불편함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가끔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다른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분노 스위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예전의 난 뒤통수를 맞으면 나도 모르게 분노의 스위치가 켜 졌다. 여기서 뒤통수는 고급진 은유 뭐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뒤통수다. 뒤통수를 친 사람이 나보다 어른이든, 친구든, 아니면 아이든, 뒤통수를 맞으면 정말 눈이 뒤집혔다. 지금도 그런지, 아니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최근엔 뒤통수를 맞아본 경험이 없기도 하거니와, 나와 친한 사람들이 어쩌다 내 뒤통수에 손을 댄 후 눈이 뒤집힌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분노의 스위치가 언제 켜 지는지 자각하게 된 후부터 스스로 그 스위치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을 수도 있고…

 

난 최근...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분노의 스위치를 발견했다. 두, 세 번 정도 비슷한 상황에서 분노의 스위치가 작동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분노의 스위치는 “금지”다. 왜 “금지”가 새로운 분노의 스위치가 되었는지 원인을 알 것도 같다. 아마 최근 항변이 쉽지 않은 대상으로부터 납득할 수 없는 금지를 반복적으로 당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가치 판단이 모호한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누군가 금지를 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더러워짐을 느낀다. 기분이 더럽다… 그 표현이 딱이다. 얼마 전 평소 잘 쓰지도 않는 그 표현을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을 금지하는 대상에게 직접 내뱉은 적도 있다. 내뱉고 난 후 기분이 더 더러워져 이내 후회를 했지만…

 

나는 얼마 전 진보와 보수의 개념 정의를 다시 내렸다. 그 내용과 무관하게 취향(好不好)을 가치(是是非非)라고 착각하는 게 보수라면, 가치마저도 취향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진보라고… 지난 대선이 불편했던 이유 중 하나도 아마 취향과 가치가 서로 어지럽게 엉키고 설켜 있었기 때문 아닐까?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야 먹고살 수 있는 언론에 의해 정책은 실종되고, 서로 혈안이 되어 누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떠들어 대니 그 와중에 취향을 가치로 착각하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가치의 자리를 취향 따위에게 내어주는 것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이익으로 한껏 버무려진 사회에 가치가 내재된 당파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파성은 그저 부동산의 유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부동산 정책 같은 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단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금지시켰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남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만만한 가족한테도… 그래서 사소한 이유로 - 사소함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내 부탁이 거절당하거나, 또는 취향을 가치로 착각하는 누군가에 의해 내 생각과 행동이 금지당하면 더 꼬라지가 나는 것 같다. 누가 나더러 그렇게 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물론 분노의 스위치가 켜 졌다고 해서 완전히 이성을 잃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감정을 숨기거나 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감지했을 뿐이다. 어쨌든...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분노의 스위치가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는지 알게 되었으므로 비로소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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