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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프랑스, 니오르를 떠나며...

by Back2Analog 2017. 10. 21.

경제를 '사회적'이라는 말로 꾸미고 있는 '사회적 경제'라는 단어는 대표적인 형용 모순, 또는 형용 반복이다. 애초에 경제라는 개념은 사회의 쓸모로부터 출발하였다. 태초에 경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이 있었고,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있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자연에 개별적으로 대응할 때까지만 해도 인간은 그저 자연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이 집단으로 사회를 이루고, 자연을 통해 깨달은 다양한 경험을 후대에 물려주면서 인간은 서서히 자연과 분리되어 갔다. 자연에 대한 인류의 이해, 즉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간 사회는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계급이 발생하게 되었고, 계급사회의 요구에 따라 인간 사회의 다양한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이해가 필요했던 자연의 규칙이 있었다면, 이제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규칙, 즉, 사회과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과학이 분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분리된 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인간 사회 안에서도 서로 다른 사람과 사람 간의 다양한 분리가 진행되었다. 마치, 노동과 예술, 그리고 문화와 교육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라는 개념도 아마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를 굳이 사회적이라는 단어로 꾸미지 않더라도 경제는 당연히 사회적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회적이어야 할 경제가 사회로부터 떨어져 독립된 체계로 존재하게 되었다. 즉 사회의 생존, 지속, 성장과 무관하게 경제는 경제 그 자체를 위해 사회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확대, 재생산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라는 단어는 형용 모순 또는, 동어반복이다. 사회적 경제라는 단어를 제대로 된 개념어로 대체한다면 '경제의 사회성 복원' 쯤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대중적으로 퍼지고 있는 '사회적 경제'라는 말을 '경제의 사회성 복원'이라는 다소 설명이 필요한 단어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회적 경제가 가지고 있는 실천적 의미를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에 하는 말이다.


니오르에서 있었던 사회연대경제 포럼에서 반복적으로 나온 단어가 있다. 바로 횡단성! 포럼에 참석한 차성수 금천구청장의 설명에 따르면, 서구의 사회적 경제는 교육, 문화, 복지 등 다른 분야와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의 확대, 지속가능성을 위해 다른 분야로의 횡적 확대가 절박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횡단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분야를 아우르는 횡단성보다는 중앙집권적으로 수직화된 국가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여튼, 마오가 사회주의 건설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 실패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근대 한국의 중앙집권적 성향은 압축적 경제성장이라는 명분을 위해 필요했다. 아니 경제 성장의 결과가 중앙집권의 명분을 넘어 면죄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중앙집권이라고 하는 구조적 딜레마 속에서 살고 있다. 사회연대경제 포럼에서 말하고 있는 '횡단성'을 한국사회에 실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중앙에 모든 권한과 책임이 집중된 수직구조를 넘어뜨려 횡적 역할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중앙이든, 현장이든 그 개념을 위와 아래의 위계질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역할의 수평적 다양성으로 치환해서 인식해야 한다. 

상하가 존재하는 위계질서를 역할의 수평적 다양성으로 치환하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문화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한국사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하의 위계질서로 이해하는 것에 매우 익숙하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직업은 역할의 다양성이다. 아니 역할의 다양성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다양한 역할에 상하의 위계 질서, 즉, 귀천을 부여해 왔다. 빙산의 일각이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위해선, 더 큰 빙산의 덩어리는 물 아래에 잠겨 있어야 하는 역할의 다름을 한국사회에서는 상하의 관계로만 인식한다. 우리 사회는 빙산의 일각으로 떠오른 성공한 일부와 차디찬 바닷속에 잠겨 있는 실패한 다수가 구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사회연대경제 포럼에서 강조하는 '횡단성'이 한국사회에서는 분야 간의 횡단이 아니라, 상하로 존재하고 있는 위계질서를 넘어뜨려 수평적 역할의 다양성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