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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미디어 비평

'B'급 논픽션 콘텐츠의 공중파 진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by Back2Analog 2017. 11. 5.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긴 잠 속에서 단편 소설쯤 되는 꿈을 꾸고 일어난 나는 은기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모든 꿈은, 그 꿈이 아무리 개꿈일지라도 거부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디테일을 가진다. 하지만 꿈에서 깨는 동시에 그 디테일이 가지고 있는 개연성은 어이없게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어제 꿈도 그랬다. 우리 가족은 다른 여러 그룹과 말도 안되는 캠프를 갔다.(당연히 꿈 속에서는 충분히 말이 되는...) 그 캠프 안에서 나는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욕망을 표현했고, 현실 세계와 이어진 나의 이성의 끈으로 인해 괴로워 했다. 꿈 속에서 표현'된' 나의 욕망이 사실은 엄청난(?) 음모에 의한 누명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나는 뒤늦게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던 중 겨우 잠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잠에서 깸과 동시에 너무나 쉽게 꿈 속의 음모와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휴~ 이래서 꿈은 아무리 현실적 개연성과 맞닿아 있다고 하더라도 B급일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꾼 꿈에 진진하게 공감할 수는 없다. 꿈이야말로 모든 개인이 각자 소유하고 있는 은밀한 블랙박스기 때문에... 은기엄마는 내 꿈에 공감하는 대신 어제 밤에 혼자 본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이야기를 해 줬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그럼 좀 깨워서 같이 보지... 사람 인정머리 참...) 아직 블랙하우스에서 어떤 내용이, 그보다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직접 확인하지 못하였다. 대충 은기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그동안 공중파가 담아낼 수 없었던, 아니 담아내려 하지 않았던 내용과 방식들이 난무했을 거라는 것은 얼추 짐작이 되지만...


김어준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B급 인물이다. 김어준이 총수가 되어 만든 '딴지일보'와 이명박 정권 시절 온국민을 열광시켰던 '나꼼수'는 그래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의를 한다고 해도 B급 매니아들의 콘텐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2016년 덜컥 서울시 교통방송의 '뉴스공장' 진행을 맡으면서 김어준은 정통 언론인의 반열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뉴스공장으로 대한민국 PD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정경훈 PD는 수상소감에서 "김어준이라는 재야의 한 음모론자를 양지로 끌어내어 정통 언론인으로 만들었다."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한낱 교통방송, 그것도 서울에만 송출되는 라디오와 공중파 TV는 그 '급'이 다르다. 훗날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는 'B급 논픽션 콘텐츠의 첫번째 공중파 TV 진출'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많은 대중들은 'A급' 보다 'B'급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현실을 반영하기 보다는 가진자들의 이익을 대변해 왔던 공중파(의 지배자들?)가 이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B급 C급, 나아가 막장급 현실을 외면한 채 '가공'된 A급 현실(논픽션) 만을 다뤄왔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공중파 등장은 그나마 찔끔찔끔 아침 드라마에서 막장급 드라마(픽션)를 통해 억지로 그 균형을 맞춰왔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공중파 방송이 B급 논픽션 콘텐츠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시대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B급 콘텐츠 생산자인 김어준이 공중파에 등장하기까지 공중파가 모든 콘텐츠들 A급으로만 채워왔던 것은 아니다. 공중파가 처음으로 허용한 B급 콘텐츠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픽션 콘텐츠인 아침 드라마였다. 나도 잠시 백수 시절에 아침 드라마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 KBS, MBC, SBS 세 방송사의 절묘한 편성시간으로 인해 채널만 잘 돌리면 세 드라마를 아침 시간에 다 볼 수 있었다. 그 중독성에 대해서는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말을 하지 마시라! 

‘픽션’에 이어 공중파를 침투했던 B급 콘텐츠는 소위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등장한 1박 2일을 위시한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비록 후편집 과정에서 블라인드, 또는 자막 처리 등을 통해 A급과 B급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현장의 언어를 그대로 방송한다는 것이 가지는 ‘리얼리티’는 그동안 공중파가 고집해 왔던 ‘가공’된 A급 콘텐츠의 포기라고 할 수 있다. 반 발짝만 더 나가서… 예능이 가지고 있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특성으로 인해 인터넷 방송을 대표하는 B급도 아닌 C급 쓰레기였던 ‘김구라’의 공중파 진출은 이러한 공중파의 변화가 가지고 온 덤 쯤으로 보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구라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B급 논픽션 콘텐츠 최초의 공중파 진출인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가지는 의미는 대략 그러하고…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인터넷 방송, 케이블 TV, 종편 등으로 인해 공중파 TV의 영향력이 매우 약해졌다.

둘째,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B급 콘텐츠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을 공중파 TV가 더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셋째, 형식에 얽메이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던 B급 콘텐츠의 생산자들이 의도치 않게 A급 공중파 TV가 원하는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동안 엄숙하고, 진지하기 만을 바라왔던 이 사회에 대한 저항이 B급 콘텐츠를 등장하게 했고, 대중들은 시나브로 B급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리얼리티에 열광하게 되었다. 김어준에 대한 호불호와 무관하게 블랙하우스를 통해 공중파 TV가 자본에 의해 가공된 콘텐츠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