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문화+교육/미디어 비평

진보의 종편,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블랙하우스"

by Back2Analog 2018. 1. 19.


얼마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던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가 드디어 정규편성된 것 같다. 어제 졸린 눈으로 TV에서 김어준 얼굴을 살짝 보긴 한 거 같은데, 세상의 디테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블랙하우스가 정규 편성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길에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이 떠드는 걸 보고 어제 잠결에 본게 헛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김어준의 지저분한 얼굴을 공중파에서, 그것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다니.., 호불호를 떠나 어쨌든 세상이 달라지긴 한 것 같다. 김어준의 공중파 진출에 대해선 "B급 논픽션 콘텐츠의 공중파 진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링크 클릭)를 읽어 주시면 베리베리 땡큐하겠다.

2015년 한국을 공포에 떨게한 메르스 사태... 그 공포를 한 방에 코메디로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박근혜의 "살려야한다" 퍼포먼스(?)였다. TV를 통해 그 장면을 본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분노를 넘어 실소를 금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천박을 넘어 초딩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 퍼포먼스를 보편적인 상식의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구의 기획인지는 모르겠으나 "살려야한다" 퍼포먼스는 박근혜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SOS 신호 정도로 이해한다면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 부분은 세대 학자 전상진의 따끈따끈한 신간 세대 게임 중 제 6장 "세대 투쟁 - 시간의 실향민이라는 정치 세대의 등장" 편을 읽어보면 깊이 이해가 될 것이다. 유신 시절의 암울함을 공유하고 있고,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의 향수를 재현하고 싶은 어르신들에게 "살려야한다"라는 다섯 글자는 어린(=어리석은) 백성들을 생각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읽혀졌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소위 시대를 아우르는 상식이 진보와 보수, 세대와 세대, 나아가 분업화된 전문성으로 잘게 쪼개져 산산히 부서진 시대에 살고 있으며, 더이상 나의 상식으로 다른 누군가의 상식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이 시대의 상식을 파괴했는가! 더이상 나와는 무관한 문제라고 분리하여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조화된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어떤 행위의 의도나 결과도 사회 구조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식을 선을 긋고, 나만의 갈라파고스를 구축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주제로 돌아가자. 손석희가 jtbc 사장으로 옮겨간 후 출근 시간대 최고의 시사프로그램이었던 "시선집중"의 청취자들은 최근에 서울교통방송에서 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갈아탔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마치 김어준과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만큼이나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손석희가 감성에 호소하는 보수나, 어설픈 논리로 대응하는 진보마저도 냉철한 객관의 잣대로 꾸짖었다면, 김어준은 지극히 편향된(?) 논리로 진보의 손을 들어주고, 보수의 논리를 개무시한다. 마치 진보판 종편, 진보판 "살려야한다"를 보는 것 같다. 내가 감히 김어준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김어준의 종편식 대응은 무논리와 비논리로 점절된 종편에 우아를 떨며 논리적으로 대응해 왔던 기존 방식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정확히 보수 언론과 종편의 논리에 일대일로 대응한다. 어제 보수 언론에서, 종편에서 이런 얘기를 했는데, 그건 이러이러해서 말이 안된다는 식이다. 하여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명절 때 어르신들이 종편이나 폐쇄된 카톡을 통해 무장한 무논리에 적절하게 대응할 무기를 제공해 준다. 사실 논리, 나아가 당위는 매우 공허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논리와 당위를 가지고 허공에 칼을 휘둘러 왔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논리와 당위의 공허함...
사실 논리와 당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닥 많지 않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논리와 당위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논리와 당위에 집착한다.
왜? 문제의 해결과 무관하게 나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 질문...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쟁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논쟁하는가?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빌어먹을 논리와 당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논리와 당위가 공허하다면, 무논리와 비논리는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이 시대의 짐이다. 외롭게 자식들의 전화만을 기다리며 살고 계시는 우리 부모님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무한경쟁으로 버거워진 삶의 무게가, 이미 적응되어버린 소비의 편리함이, 그 사이를 파고든 자본과 정치논리가 세대와 세대의 단절과 양극화를 낳았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그리고 "블랙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김어준의 B급 콘텐츠가 우리 사회의 모든 논리를 대체한다면 그 또한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단지 무논리와 비논리에 대응할만한 좋은 보완재가 마련된 것 뿐이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고 합의해 나갈지는 논리와 비논리, 당위와 현실이 보다 융합적으로 버무려져야 가능한 일이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