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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인간은 어떻게 소비의 노예가 되어 가는가...

2016년 1월 23일에 썼던 글을 앞으로 당기다...


많은 사람들이 외벌이를 하고 있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혼자 벌어서 감당이 되냐고... 난 그럭저럭 감당이 된다고 얘기한다. 

매달 아파트 대출이자에, 보험비에, 생활비가 어마어마하게 빠져 나가지만 매일매일의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행복의 중심에는 물론 은기와 은슈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직 아이들이 어려 본격적으로 사교육비가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비단 사교육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한 가정을 행복하게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소비에 대한 욕망을 지속적으로 채워줘야 하는데, 아이들이 커 갈수록 소비에 대한 욕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오늘 아이폰 앱이 자꾸 튕긴다며 투덜대는 은기에게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 성질이 워낙 드럽기도 하지만…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었던 은기의 말에 갑자기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1. 자녀에 대한 지원과 통제의 줄다리기에 실패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

난 군대에 있을 때 내 밑에 들어온 쫄병한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맞아서 100% 하는 것 보다 스스로 50% 하는 게 더 소중하다.”

물론 그 쫄병은 내 기준에 스스로 50%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쫄병을 구타하거나, 얼차례를 주거나 심지어 구박한 적도 없다. 난 아이들에게 아이폰을 사 주며 끊임없이 스스로 통제하기를 바랐다. 아이들 문화에서 비롯된 작은 욕망을 폭력적으로 누를 수 없기에 스마트폰을 사(?) 줬고, 이왕 스마트폰을 쓸 거라면 아나로그적 감성을 디지털화한 아이폰을 쓰게 해 주고 싶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눈에서 못 떼는 아이들을 보며 은기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준 것이 잘 한 짓일까 고민을 하곤 한다. 

일방적으로 스마트폰을 보지 말라고 하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이미 멈추기 어려운 서로의 문화적 관성이 있기에 그것도 만만치는 않다.


2. 친구들이 ‘구린’ 아이폰을 그만 쓰라고 했다. 

은기는 내가 쓰던 아이폰4s를 쓰고 있다. 아이폰4s가 2011년 가을에 나왔으니 어지간한 앱이 튕길 만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아이폰에 빠져 사는 은기에게 앱이 쌩쌩 돌아가는 새 아이폰을 사주고 싶은 마음도, 그럴 경제적 여유도 없다. 난 늘 새 아이폰을 쓰고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내가 쓰던 아이폰을 물려줘야 하는 미안함도 분노를 논리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한 이유였으리라...

주로 콘텐츠의 소비도구인 스마트폰은 말 그대로 스마트해야 한다. PC의 운영체계인 윈도우처럼 설정을 하기 위해 앱의 백단으로 접근해야 하는 안드로이드의 조잡함을 난 참을 수가 없다. 대략 한시간 동안 썰을 풀 수 있을만큼의 다양한 이유로 난 은기와 은슈가 안드로이드폰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주로 게임을 하고 음악만 듣는 아이들에게 직관적 UI니, 아나로그적 감수성이니 하는 이유로 아이폰만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합당하게 느껴질까? 

설득과 이해 사이의 만만치 않은 간극도 내가 화를 낸 이유 어처구니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3. 결론이다. 이제야 어렴풋하게 외벌이 하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다출산 시대엔 아이들에 대한 관리 품만 아니라 비용도 적게 들어간다. 저출산이 아이들의 과잉보호와 과잉소비를 낳았다. 한국은 문화적 특수성 때문인지 그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아이들에 대한 과잉 애정의 시작은 산부인과에서부터 시작한다. 만약 인간의 종족번식 행위인 출산이 의료행위였다면 인간은 지금과 같은 번영을 못 누렸으니라…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출산은 과잉된 의료행위다. 임신 후 거의 매주 산부인과를 가야 하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확인도 되지 않은 초음파 사진을 찍는다. 출산의 과정도 가족 분만, 그네 분만, 수중 분만 등 다양하다. 

애가 태어난 후에는 반드시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야 하며, 아이가 걷기 전까지는 거의 중고차 가격과 맞먹는 유모차를 끌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교육시장에 진입하고 나면 어마어마한 사교육비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은기엄마가 일을 하겠다고 하길래 자아실현을 위한 것인지,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인지 물은 적이 있다. 만약 후자라면 내가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할 테니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짧은 생각에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사교육보다 학교 다녀오면 따뜻하게 맞아줄 부모 중 한 명이 더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돈을 버니까 마음대로 소비하고, 너희들은 돈을 벌지 않으니 소비를 줄이라고 얘기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칫 아이들이 자신의 소비욕망을 못 참고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돈만 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부터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대학원을 그만 둬야 한다. 내가 대학원을 다니겠다고 하니 둘째 은슈가 그랬다. “아빠는 배울만큼 배웠으니 우리를 가르치는데 돈을 쓰라고…” 


우리가 접하는 모든 매체에서는 매순간 자극적으로 소비의 욕망을 부추긴다. 그 앞에서 어떻게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지…

은기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위에 열거한 3가지… 아니 그 이상의 생각이 함축적으로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화와 토론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그리고 이미 무거운 얘기는 시작부터 거부하는 은기와 나 사이의 관계가…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게 한 이유였던 것 같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으나… 난 이미 틀렸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