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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ADHD와 중2뼝...은 진짜 '병'일까?

by Back2Analog 2017. 11. 28.

ADHD, 소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병이 있다. 1902년에 조지 F 스틸(George Frederic Still, 1868~1941)이라는 소아과 의사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 '정신병'은 그 이전에 스코틀랜드의 의사였던 알렉산더 크라이턴(Alexander Crichton)이 1798년에 최초로 저서를 통해 ADHD의 구체적인 내용을 남겼다. 그는 그 증상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어떤 한 물체에 대해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이 없고, 대개 끊임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리게 된다."
"타고나기도 하고 우연히 병에 걸려 생기는 효과일 수도 있다."
"타고난 경우에는 일찍부터 눈에 띄게 되며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음" 
"어떤 한 가지를 교육시키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못함"
"모든 면에 다 심하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며, 다행인 것은 대개 나이를 먹으면서 사라진다"
"이런 신경 상태를 특별히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다름아닌 안절부절못함이다."

공식적으로 ADHD라는 병명으로 불려지기 전에도 아마 주의력이 부족하고, 과잉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천적일 수도 있고, 또 후천적일 수도 있는 이러한 증상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게 된 데에는 의학의 발달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과학의 발달로 인류는 많은 자연의 규칙들을 알게 되었다. 차라리 몰랐거나 알 필요가 없었다면 모를까, 위대한 자연의 이치는 알면 알수록 아는 것보다 규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더욱 더 늘어났을 것이다. 위대한 인류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과학은 아는 것, 그리고 극복할 수 있는 것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 그리고 극복할 수 없는 것마저도 오만하게 '규정'해 버렸다. 난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ADHD라고 생각한다. 

ADHD라는 병명으로 규정되게 전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장애는 마땅히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러한 사회의 역할에 동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는 소위 정상적이지 않은 아이들까지 감당하도록 이 사회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했고,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경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들과의 분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ADHD는 사회 속에서 격리된 채 마땅히 극복할 방법도 없는 '병'이 되었다.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소위 '중2뼝'은 ADHD와 어떻게 다를까? 어른들도 감당할 수 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정상인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것이 오히려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관계가 해체되고, 해체된 관계로 인해 사회의 어떠한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 앞에 자본은 미디어라는 쾌락의 도구를 무기로 자신들의 무한 탐욕을 채워나가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중2뼝의 원인을 다음의 세 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첫째, 초등학교 시절 현실과는 무관한 보편적 정의, 질서 등을 주입식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해 자신이 배운 교육의 내용과 현실 사이에 어마어마한 괴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시기가 바로 중2 즈음일 것이다. 어른들은 정의를 가르치지만 가장 정의롭지 못한 것이 바로 어른들이다. 나아가 아이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의롭기를 바라고 있는 이 사회이다.

둘째, 몇 년 전, 은평구청 청소년 참여위원회에 가장 잘 나가는 자사고 중 하나인 하나고 학생이 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아이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많은 중학생, 그리고 일반고 아이들을 보며 그 당시 난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서울시교육청에 2년 동안 있으면서 난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심지어 자사고와 일반고를 과거 서열화된 대학을 지칭하듯 전기고, 후기고로 명명하고 있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친구와 수평적 관계를 맺었던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올라와 '경쟁'과 '서열'에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겪는 고통을 어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셋째, 난 초등학교(내가 다닐 땐 국민학교) 때 선생님을 신과 동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서 받은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선생님이 욕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때 만난 학생주임 선생님은 거의 학교라는 조직에 속한 깡패나 다름 없었다. "쌀자루", "개코", "쇠다마"... 그 당시 선생님들의 별명이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자신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뻥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과거를 아이들에게 드러내며 피가 거의 말라가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통제했다. 시나브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현실에 익숙해졌던 과거 세대와는 달리 우리 아이들은 중2, 머리가 말랑말랑한 시기에 그 단단단 구조적 모순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직도 중2뼝이 중2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중2뼝은 이 사회의 병이고, 그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가 걸린 사회구조적인 정신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병을 우리사회로부터 분리하여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다.

어쩌면 북한의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중2가 아니라, 무기력한 중2들에게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전가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뻔뻔함 아닐까?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