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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세대는 개인을 통해 구조화되고, 개인은 세대를 통해 자신을 합리화한다.

나는 한때  유명한 단행본 출판사에서 근무를  적이 있다 출판사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출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프로젝트  하나  당시 가장  나가 학습지 시장에 야심차게 도전장을 내 밀었던 적이 있다. 이름하여 '개념교과서 프로젝트' 

출판사는 학습지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재를 고액의 연봉에 영입하고, 2 동안 적지 않은 비용을 프로젝트에 쏟아 부었. 내가 가늠하기로 대략 2~30억? 아니, 그 이상?

출판이라고  같은 출판이 아닌지라단행본 출판에 잔뼈가 굵은 편집자가 갑자기 학습지 출판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 거의 1년 동안 야근에 야근이 이어졌다 신입 사원의 아버지가 야근이 너무 심하다며 회사로 항의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내가 말 하려니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맡고 있는 국어팀은 다른 팀원들의 부러움을 샀다. 프로젝트 담당 이사는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팀장들의 원고 작업을 금지 시켰지만, 나는 틈틈이 팀원들의 늦어지는 원고작업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원고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 업무를 도맡아서 처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야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팀 보다는 그 횟수가 적었다고 자신한다. (혹시라도 나와 같이 일했던 팀원 중, 이러한 나의 주관적 기억에 이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댓글로 이의를 제기해도 무방하다.)

어찌어찌 프로젝트가 끝나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팀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심한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 그 안에는 당연히 국어팀도 있었고, 나 또한 사장, 이사, 그리고 다른 팀장들과 함께 '죽일 놈'으로 매도되었다. 집단의 목소리 앞에 개개인의 사소한 경험의 차이는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느꼈다. 개인은 집단을 통해 자신을 합리화한다는 것을...


요즘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중학교 2학년 딸과 모종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여느 집안처럼 우리 집도 스마트폰을 둘러 싼 갈등이 갈수록 첨예화되어 있고, 그 와중에 딸이 스마트폰을 빠꿔 달라고 요구를 한 것이다. 딸과 2시간이 넘게 카톡으로 신뢰와 요구의 우선 순위에 대해 논쟁했다. 스스로 스마트폰을 통제할 수 있다면 즉 신뢰를 선행한다면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나의 주장과,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스스로 통제하겠다는 딸의 주장이 맞섰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되는 논쟁이었지만, 결국 난 가장 갈등이 첨예한 엄마와 합의를 한다면 스마트폰을 바꿔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딸은 일종의 결의문을 작성해 스마트폰을 바꿔 준다면 그 결의(합의?)를 지키겠다고 엄마와 다짐을 했고...

사실... 이런한 일은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다음은 그동안 있었던 갈등에 대한 포스팅들이다.


2014년(초등학교 5학년) 있었던 딸과의 스마트폰 갈등...

2016년 (중학교 1학년) 있었던 딸과의 스마트폰 갈등...

2017년 (중학교 2학년) 현재 진행중인 딸과의 스마트폰 갈등...



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딸에게 자발적인 통제를 요구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린 딸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도 통제하기 힘든 일을 딸에게 요구했으니...

내 논문 지도를 맡아 주신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님의 '세대게임'이라는 특강 PT 중 한 장이다. 동명의 책이 출판을 앞두고 있으니 꼭 사서 보시길 권한다. '세대 문제'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결과를 얻을 것이다. 감히 서구사회가 신대륙 발견을 통해 무지의 발견을 깨달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뒷통수를 조심하며 보시길...

소위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중2 딸과 전쟁을 시작하다니... 나의 무모함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중2뼝'에 대한 나의 견해는 바로 아래 포스팅,  "ADHD와 중2뼝...은 진짜 '병'일까?"를 참조하기 바란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만, 중2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단지 분리나 회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 무렵 아이들이 전두엽의 미성숙으로 인해 자신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마치 ADHD의 진단을 통해 부모도, 교사도, 심지어 당사자 본인도 회피, 분리를 통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것처럼, 중2라고 하는 집단이나 세대를 사회의 보편적 상식으로부터 분리해 마냥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딸과의 갈등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이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으나, 내가 딸에게 요구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본인이 스마트폰 교체를 위해 약속한 내용에 대한 이행이다. 

이 사회가 중2에게 덮어씌운 멍에의 아픔이 크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가장 기본적인 것,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한 책임까지 세대가 겪는 아픔을 이용해 비논리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딸의 성장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적응은 진화의 절박한 필요성이 되기도 하지만, 한 번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관성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중2 세대들의 고통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아니, 그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많은 것을 허용해 왔다. 그리고 우리 딸은 그 이해와 허용에 깊숙히 '적응'된 것처럼 보인다. 사춘기가 물리적으로 2차 성징기에 접어든 아이가 자신을 문화적으로도 성인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라면, 문화적인 어른이 갖춰야 할 책임성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어쩌면 결혼 후 가장 불행한 시기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신념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기꺼이 질 생각이다. 이상은 나의 짧은 생각일 뿐이다. 만약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나의 생각과 다른 아낌 없는 조언도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방치'와 '기다림'이 최고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어느정도의 확신만 있어도, 난 나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