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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조국 사태를 바라보며...)

by Back2Analog 2019. 9. 8.

1. 序
마크 고울스톤은 저서, “뱀의 뇌에게 말을 걸지 마라”에서 인류의 뇌는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온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가장 안쪽에는 원시적인 ‘파충류’의 층, 그 밖에는 좀 더 진화한 ‘포유류’의 층,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장류’의 층이 그것인데, 인간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뱀의 뇌가 작동되며 영장류의 뇌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가 뱀의 상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려고 하는 불평등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현재의 상태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고통스러운 불평등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평등’해야’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가 오히려 인류의 평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가진 자들이 원하는 것은 불평등과 차별

조국 사태(사태라는 말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 중에는 불평등을 대하는 태도도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명석한 두뇌로 서울대 법대 최연소 합격, 훤칠한 키에 연예인 부럽지 않은 외모, 심지어 풍성한 머리숱까지... 많은 사람들은 모든 걸 다 가지고 태어난 조국을 부러워하거나, 자신의 비루한 처지와 비교해 시샘하기도 한다. 조국처럼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소수는 이미 우월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그 지위를 누리지 않는 조국을 비난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김주원(현빈)은 "사회경제체제에서 노동조직에서의 부의 분배 방식과 수량의 다름에 따라 생기는 인간 집단이 바로 계급이며, 가진 자들이 1년에 1억씩 쓰면서 원하는 두 가지는 불평등과 차별"이라고 말한다.

조국처럼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김주원(현빈)

맞다. 나 또한 대학원에서 죽어라 공부한 결과 출석도 발표도 하지 않은 원우와 같은 A+을 받았을 때, 왜 가진 자들이 불평등과 차별을 원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현재 누리는 권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나보다 더 누리는 자와 평등하길 원한다. 공무원은 자신이 평생 동안 누릴 수 있는 연금의 혜택을 불평등의 결과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교사는 교실에서 누리고 있는 자신의 어마어마한 지위를 망각한 채 교육의 문제를 사회와 제도의 탓으로 돌린다. 나 또한 내가 누리고 있는 불평등한 권리를 나의 필연적 노력에 의해 획득한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 볼 일이다.


3. 다름으로부터 비롯된 불평등
사람은 모두 '다르'게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부모로부터 명석한 두뇌를 물려받기도 한다. 선천적으로 키가 큰 사람도 있지만, 우유에 자신의 키를 맡겼다가 평생 유전자 탓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을 모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평등이라는 침대에 뉘어 놓고 늘리거나 잘라야 할까?
다름은 시대의 기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불평등을 낳는다. 생존을 위해 다산이 필요했던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는 마치 벌이나 개미처럼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경이 시작된 이후 인류의 개체수는 그 이전보다 빠르게 증가했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더 필요한 것은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이 아니라 생산 노동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생산한 것을 약탈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근육질의 남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부장제는 농경을 통해 인간의 노동이 ‘생존 노동’에서 ‘생산 노동’으로 바뀌면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불평등의 해소는 새로운 불평등으로...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평등한 세상이 올까? 불평등의 해소는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부르주아 혁명이다.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들은 타고난 혈통에 의해 지위가 결정되는 귀속 지위에 반대해 후천적 성취에 따라 지위를 결정하는 성취 지위를 주장한다. 그들만의 힘으로 강력한 문화적 정당성과 물리력을 가진 귀족에 대항하는 것은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고통받고 있는 기층 민중들을 유혹했다. 나와 함께 귀족들을 물리쳐 준다면 그대들에게도 귀족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계층 사다리를 놓아주겠노라고... 그것만으로 민중들을 움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혁명을 위해서는 기층 민중들의 ‘분노’가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가짜뉴스가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굶주린 민중들에게 했다는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어라.”라는 막장 발언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폭제가 된 이 말은 사실 마리 앙투와네트가 프랑스로 시집도 오기 전 이미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등장했던 문장이다.

Enfin je me rappelai le pis-aller d’une grande princesse à qui l’on disait que les paysans n’avaient pas de pain, et qui répondit : Qu’ils mangent de la brioche.

최종적으로 나는 빵이 없다는 농부들의 말에 대한 고귀한 공주의 임시 방편 - 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이자! -  대해 떠올렸다.

멀리 서구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조선시대 계층을 표현했던 단어인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도 시대에 따라 다름이 불평등으로 이어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농업이 경제의 근간이었던 조선시대 농자는 천하의 큰 근본이었고 士의 역할은 정치를 통해 농업의 생산물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었다. 근대 산업 자본주의 초기 이 순서는 ‘사상공농’으로 바뀌었다. 士가 정치를 통해 생산물을 분배했다면, 商은 시장을 통해 생산물을 분배한다. 예나 지금이나 재주는 곰(農工)이 부리고 돈은 되놈(士商)이 챙기는 형국이다. 자본주의가 충분히 숙성되어 말기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지금은 士와 商의 위치가 바뀐 ‘상사공농’의 시대는 아닌지 의심해 봄직 하다(이 말이 이해가 안 간다면 ‘삼성 장학금’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시라!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이 누구한테 있는지...). 그리고 정보가 생산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기계의 언어인 코딩 교육 운운하는 걸 보면 오랫동안 숨 죽이고 살아왔던 이른바 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것은 아닌지... 


5. 먼저 불평등을 인정하자.
이렇게 ‘다름’은 장대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그나마 제도적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인류는 영원히 완전한 평등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평등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일 뿐, 막무가내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다름을 구속하는 기계적 평등에 대한 막가파식 요구는 불평등의 간극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정무수석을 지냈고,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된 조국은 불평등하게도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고, 후천적인 노력이 더해져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반열에 올라섰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나같이 찌질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본인도 모르는 불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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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아이 문제에 대해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다.”고 사과했다.


6. 小結
혹시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것과, 그리고 노력을 통해 획득한 많은 것을 하나씩 포기하고 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은 아닐까? 그런데 혁명을 통해 새로운 지배계급을 차지한 부르주아지들이 그랬듯, 장작 불평등과 차별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자들이 조국이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으라고 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조국 사태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본질은 불평등한 현실이 아니라 불평등한 현실을 헤치고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설사 또 다른 불평등을 낳더라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불평등 자체는 해소될 수 없지만, 그 간극은 조금씩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