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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상상계 위에 세워진 철옹성 또는 모래성, 문명

by Back2Analog 2016. 7. 3.

상상계 위에 세워진 철옹성 또는 모래성, 문명


    1. 序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현재를 변화시키려는 자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자, 그리고 그것에 무관심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범벅이 되어 살고 있다. 누군가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이 너무 변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세상의 변화를 대하는 그러한 태도는 변화의 방향성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세상의 변화 여부, 속도 등에 대한 상대적 인식의 결과는 아니다. 즉, 현재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자는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늘 세상의 빠른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가 헐떡이고 있으며, 반대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자 또한, 세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동시에 변하지 않는 세상의 모습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지구는 존재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매일 한 바퀴씩 자전을 하고 있으며, 1년에 한 바퀴씩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고 있다. 위치와 각도가 변하는 것도 변화라면 지구는 지금까지 쉬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은하계에 속한 작은 태양계, 그중에 티끌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구는 수십 억 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생물의 흥망성쇠를 무심히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기도 하다. 

      관점에 따라 세상은, 그리고 지구는 변하지 않는 철옹성으로 보일 수도 있고, 금방 허물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모래성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발전시켜 온 문명은 어떠한가? 문명은 지금까지의 관성에 따라 앞으로도 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곡차곡 그 높이를 더해갈 철옹성인가? 아니면 마음만 먹으면 그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모래성인가? 누군가는 매일매일 문명이라는 철옹성에 계란을 던지며 문명의 모습을 바꾸거나 적어도 문명이 향하고 있는 관성의 각도를 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문명이라는 모래성이 혹시라도 무너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문명의 정의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 흔히 문화를 정신적ㆍ지적인 발전으로, 문명을 물질적ㆍ기술적인 발전으로 구별하기도 하나 그리 엄밀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각주:1]


      표준국어대사전의 사전적 정의처럼 문명은 문화와 엄밀히 구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문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웅대함에 비해 문화는 다소 현재 진행형에 갇힌 측면이 강하다. 다시 말해 문명이라는 단어 속에는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발전은 물론이고 문화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문화와 비교할 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깊이와 폭을 가지고 있다. 네이버 영영사전에서 찾아본 문명, 즉 civilization의 사전적 정의에는 그러한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는 듯하다. 


      A civilization is a human society with its own social organization and culture.[각주:2]


      정리하자면 문명은 약 20만 년 전 사피엔스로부터 시작한 인류가 인지혁명(약 7만 년 전), 농업혁명(약 1만 년 전), 산업혁명(18세기 중반), 그리고 최근 5백여 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온 과학혁명의 놀라운 결과뿐만 아니라 그 시작과 과정 모두를 아우르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태동

      힘도 없고, 보잘것없는 유인원에서 출발한 사피엔스가 순식간에 자연 생태계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어마어마한 문명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계기는 과연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직립보행이 작은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직립보행을 통해 사피엔스는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손으로 도구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뇌의 발달이 촉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립보행이 인류 문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보기에는 적지 않은 무리가 있다. 인류의 문명이 직립보행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면 원숭이나, 침팬지, 고릴라, 보노보 중 적어도 어느 한 종은 인류를 위협하는 천적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직립보행을 아예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사피엔스는 그 특유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정체성으로 인해 아주 오래전 네안데르탈인 등을 비롯해 다른 동물들을 여러 차례 멸종시켰던 전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립보행으로 인해 인류의 적으로 성장한 또 다른 유인원이 있었다고 해도 아마 사피엔스에 의해 멸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매우 특별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를 지어 두 번째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것이다. 이번에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인간 종들을 중동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몰아냈다.[각주:3]


      기후 변화의 누명을 약화시키고 우리 조상들을 호주의 대형동물 멸종과 연루시키는 세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 45,000년 전쯤 호주의 기후가 변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눈에 띌 만큼 급격한 변화는 아니었다. 둘째, 기후 변화가 대량멸종을 초래할 경우 해양 생명체는 육지 생명체 못지않게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45,000년 전 해양 동물의 개체수가 유의미하게 줄었다는 증거는 없다. 셋째, 호주에서 일어난 것과 유사한 대량멸종이 그다음 수천 년간 인류가 외부세계의 또 다른 지역에 정착할 때마다 거듭거듭 벌어졌다.[각주:4]


      직립보행과 함께 지금으로부터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있었던 인지혁명은 인류가 문명이라는 문을 열 수 있었던 보다 정교한 열쇠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각주:5]


      인지혁명을 통해 출현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은 언어를 말한다. 분절할 수 없는 동물의 울부짖음이 아니라 정확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분절된 언어와 그 언어를 저장하여 후대에 전달할 수 있게 해 준 문자의 발명은 분명히 문명의 성립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문명의 토대

      인류에게 문명의 계기를 제공한 언어와 그리고 그 후에 등장하는 문자는 사고(思考)의 도구이다. 인류는 자신의 생각을 보다 정확하게 언어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생각의 덩어리를 문자를 통해 보다 논리적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으며 그 넓이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어 갔을 것이다. 언어와 문자라는 도구를 통해 한 인간이 가지는 사고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이 되었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가 되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무더운 여름밤, 잠을 쫓아 뒤척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혹시라도 그 상상에 끝을 잡았던 기억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꿈 속에서 낯선 상황 속의 “”를 만나 본 적이 있는가? 현실의 ‘나’와는 아무런 맥락도 닿아 있지 않은 그 “”는 꿈의 세계에서 현실의 ‘나’와는 무관한 자기완결적인 “”의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가 ‘나’가 아니라고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꿈 속에서 만난 말도 안되는 상황은 적어도 꿈 속에서 만은 말이 되는 “”의 성장과정을 동반한다. 오죽하면 장자는 호접지몽(胡蝶之夢)[각주:6]이라고 했겠는가? 우리는 매일 밤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블랙홀의 나락과 우주의 끝을 경험한다. 언어와 문자를 통해 확장된 인류의 사고 능력은 이렇게 상상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각주:7] 


      하지만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만져 보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원숭이를 설득하여 지금 우리에게 바나나 한 개를 준다면 죽은 뒤 원숭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갖게 될 거라고 믿게끔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각주:8]


      수렵과 채집이 생존의 수단이었던 인류는 기원전 1만 여 년 전 밀의 재배를 시작으로 농업이라는 생산 방식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곳에 정착하며 안정적으로 개체수를 늘려나갔고, 생산성의 확대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소유에 따라 계급이 발생하였다. 계급사회로 이전된 농경사회 속에서 잉여생산물을 차지한 소수가 다수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신화라는 허구적 상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A가 B를 가까이 불러 B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나, 사실은 신이다.”

      이후 B는 열심히 일했다. A가 일을 시키면 즐거운 마음까지 들었다.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번졌다. 신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A가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것이나, 그에 따른 모든 생산물을 소유하는 것이나, 자신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 B는 아무런 불만도 없게 되었다.[각주:9]


      피지배 계급 B는 그렇게 만들어진 신화를 거역할 수 없는 ‘철옹성’이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배계급 A가 만든 신화는 자신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그저 ‘모래성’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명은 결국 상상계 위에 세워진 철옹성일 수도 있고, 동시에 모래성일 수도 있다.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현재를 변화시키려는 자에게 문명은 참으로 고집스러운 철옹성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현재를 유지하려는 자는 때때로 문명이라는 모래성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철옹성과 모래성은 문명화의 과정을 겪으며 변증법적으로 절합되어 때로는 철옹성 같은 모래성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모래성 같은 철옹성이 되기도 한다.[각주:10]


      지금까지 충분하지는 않지만 문명과 상상계와의 관계를 어렴풋하게나마 살펴 보았다. 본론에서는 상상계 위에 세워진 문명이 언제 어떻게 철옹성의 성격을 띠게 되었는지, 또 언제 어떻게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새로운 문명으로 전이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本

          1) 상상계 위에 세워진 철옹성, 문명

          인류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조차도 확보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아주아주 오래 전, 소위 원시시대라고 불리던 때의 일이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는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이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과잉소비 국가에서 매일 버려지는 음식물들을 식량이 부족한 곳에 제대로 공급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식량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하고도 남을 것이다. 즉, 원시시대와 달리 현재의 식량 문제는 생산의 문제가 아닌 분배의 문제이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구하러 다녔던 원시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여 년 전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고질적인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른바 농업혁명은 인류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농지를 중심으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했으며, 덕분에 안정적으로 개체수를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석기에서 청동기, 청동기에서 철기로 도구가 발달함에 따라 보편적으로 생산량도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소비하고 남은 생산물, 소위 잉여생산물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계급’이 생겨났다. 

          계급은 상상계 위에 세워진 첫 번째 철옹성이다.’ 계급 발생 초기에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차이는 미미했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려 했을 것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때로는 지배의 불합리성에 대항하는 피지배 계급도 없지 않았겠지만, 지배 계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정신적 힘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지배를 재생산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배 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재생산하기 위해 취했던 정신적 힘 중 하나는 아마도 자연현상을 이용한 협박이었을 것이다. 21세기 최첨단 과학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지진이나, 이상기후로 인한 다양한 자연현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자연의 규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문명 초기의 피지배 계급은 오죽했겠는가? 

          농업혁명을 통해 수렵이나 채집을 포기하고 농업에 종속된 인류는 자연현상에 더욱 민감해졌고, 가뭄이나 홍수로 인해 농사를 망치게 되면 지배 계급은 힘없는 피지배 계급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을 것이다. 너희들이 신의 대리자이자 너희들의 지배자인 나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아서 하늘이 노했다고…. 자연현상을 통한 협박에 재미(?)를 붙인 지배 계급은 아예 자신을 신이라고 지칭하거나,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존재에 신적 지위를 부여해 자신만이 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피지배 계급을 세뇌했을 지도 모른다. 지배가 아예 없던 시절이었다면 모를까?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이미 익숙해진 상태라면 그 관계의 관성으로 인해 피지배 계급은 그러한 지배 계급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을까?

          신석기 시대의 어느 날, 달이 태양을 가리는 천문현상이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자. 이미 태양은 그 당시 인류에게 가장 힘이 센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태양을 낮에는 태양의 빛에 가려 떠 있는지도 몰랐던 달이 가렸다면? 피지배 계급뿐만 아니라 지배 계급도 그러한 자연현상이 얼마나 공포스러웠겠는가? 농업의 발달로 밤과 낮뿐만 아니라 계절의 순환과 우기와 건기 등 기초적인 자연 현상을 갓 이해하기 시작한 인류에게 자신이 모르는 모든 부분은 신이 관장하는 영역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배 계급은 그러한 자연현상을 자신의 지배질서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데 적절하게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종교는 상상계 위에 세워진 두 번째 철옹성이다.’ 본격적으로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계급의 발생은 문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계급의 발생으로 인해 지배 계급의 이익에 복무할 다양한 전문 영역이 생겨나게 되었고, 계급 사회라는 긴 터널 속에서 문명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먼저 신과 동격이거나 신과 대화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과 같은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지배 계급을 더욱 위대하게 보이기 위해 옷을 만드는 각종 기술들이 발달했을 것이고, 지배 계급이 치장할 장신구를 만들기 위해 정교한 수공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지배 계급의 권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음악, 미술, 건축 등 다양한 예술 또한 발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인문학의 발전을 이끈 자연과학의 성취는 모두가 평등하게 노동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사회였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약진은 피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계급사회가 만든 불합리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그럭저럭 견딜 만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소위 신이 인간을 압도했던 중세시대를 암흑기라고 부른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해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지배할 수 있는 물리력을 확보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배 계급의 의도와 무관하게 피지배 계급의 사회적 인식 또한 성장했다. 물리적 지배는 가능했겠지만, 동시에 정신적 지배가 가능하기 위한 장치 또한 끊임 없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신화가 등장했고, 보다 정교한 종교가 등장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이며 심지어 찌질하기까지 하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며, 질투나 복수는 신들의 일상이다. 아마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의 모습 속에는 그 당시 지배 계급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도덕성을 문제 삼지만, 그 당시에는 신이나 지배 계급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숭배나 지배를 거부할 피지배 계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이 그들의 수준에 맞는 대통령을 가지듯, 신의 모습 또한 그 시대 대중들의 보편적 인식을 반영한다.

          구약에 등장하는 유대의 신 또한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보다 크게 ‘신격적’으로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구약에 등장하는 유대의 신은 인간처럼 분노하고 질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다.[각주:11] 매우 중요한 차이점은 자연에 존재하는 특정 대상에 국한된 신이 아니라 그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유일신이라는 것? 신화가 지배 계급의 지배를 위한 정신적 자산으로써 그 쓸모를 다 했을 때, 그리고 유대의 신이 가지고 있는 오만함과 편협함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정확한 실체 없이 막연한 상태로 인류의 정신세계에 축적되고 있을 때, 예수가 등장했다. 예수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계급과 종교가 향하고 있던 관성의 철옹성이 아니라, 그 관성 속에서 성장해 왔으나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던 인류의 보편적 상상에 수렴하는 가치였다. 그래서 그 시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피지배 계급은 예수에 열광했고, 예수의 말과 행동은 마치 불치병을 치료하듯 명쾌하게 보였을 것이다. 급기야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과거에 탄압하던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리고 인류는 역사상 가장 길고 어두운 중세의 터널로 진입한다.[각주:12][각주:13]


          계급과 종교 외에도 ‘국가와 민족, 법과 질서, 도덕, 규범, 제도 등 문화를 포함한 인류의 문명은 그 자체가 상상계 위에 세워진 단단한 철옹성’이다. 시간과 지면만 허락한다면 위에 열거한 각각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본고에서는 ‘특권’이라는 철옹성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계급이 사라진 자리에 계급과 비슷한 위치에 자리잡은 ‘특권은 매우 골치 아픈 상상계 위의 철옹성이다.


          우리는 특권이라는 상상계가 인정한 철옹성 속에 살고 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는 통치의 특권을 주었으며, 그렇게 국회의원을 욕하면서도 우리는 국회의원들의 입법 특권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공무원에게는 행정의 집행에 대한 특권을 주었으며, 교사에게는 교육의 특권을 부여했다. 그 특권은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 온 장구한 역사와 비교해 보면 눈 깜짝할 새에 등장하여 철옹성처럼 단단해졌다. 문제는 그 특권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특권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마저 인정하고 있는 특권에 대한 ‘착각’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합법적인 투표 결과에 따라 그 특권을 부여받았으니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무원과 교사는 각각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쟁을 뚫고 시험에 합격했으니 행정과 교육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정말 그러한가? 

          투표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자신을 뽑지 않은 사람까지도 대표해 통치와 입법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수결’이라는 제도를 상상 속에서 인정한 결과다. 공무원과 교사가 행정과 교육의 권리를 가칠 수 있는 건, 적어도 공무원 시험과 임용고시를 통한 자격의 획득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결과이다. 과거 어느 무정부주의자가 했을 법한 주장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는, 현실에서의 특권이 애초에 그 특권이 시작되었을 때 규정되었던 방향성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통치의 특권을 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 또한 자신의 특권을 유지, 확장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입법의 특권을 사용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난하는 공무원과 교사 또한 그 특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문명은 처음엔 모래성처럼 그 형체가 불분명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단단한 철옹성이 되어 간다. 상상계 위에 세워진 철옹성인 문명은 실재 물리적인 철옹성보다 깨거나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문명이 영원불변한 철옹성이었던 적도 없다. 이제부터는 상상계 위에 철옹성처럼 세워진 문명이 어떻게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는지 살펴보겠다.


          2) 상상계 위에 세워진 모래성, 문명

          ① 중세라는 철옹성에 균열을 가져온 십자군 전쟁


          중세 서유럽,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은자 피에르라는 광신도를 이용하여 교묘히 전쟁을 선동한다. 1095년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가톨릭교도들에게 이슬람교에 대한 군사 행동을 호소하여 전쟁에 참가하는 자에게는 전대사를 주겠다고 반포하였다. 그에 따라 레몽고드프루아보에몽 등 여러 쟁쟁한 인물들이 성지를 회복(노략질)하러 떠난다. 그런데 그에 앞서 은자 피에르가 엉뚱한 생각을 품고 기사 레이날도무일푼의 발터와 함께 한발 앞서 떠난다. 이를 군중 십자군이라 한다.[각주:14]


          십자군 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명분은 예루살렘이라는 성지의 회복이다. ‘10세기 이후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서의 생애를 보냈던 지역을 방문, 즉 성지순례 여행을 해왔다. 이슬람의 통치자들이 종교적인 목적의 성지순례를 용인했음에도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를 시작으로 동로마 제국이 점차 쇠퇴하자 서유럽은 교황 우르바노 2세를 중심으로 성지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안티오키아(안타키아), 예루살렘 등 기독교 성지에 대한 군사적 원정을 단행한다.’[각주:15] 십자군 원정은 중세 교황의 권위가 최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 권위에 만족하지 못한 교황이  오히려 권위의 확대를 위해 일으킨 원정 전쟁이다. 이는 상상계를 배척해 왔던 서구 실증주의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의도와 무관하게 상상력에 힘을 불어넣어 준 것과 마찬가지로 도착적 결과를 낳는다. 

          원정 과정에서 약탈해 온 유물, 서적들은 당시 암흑시대를 지내고 있던 중세에 큰 영향을 미쳤고, 농업을 기반으로 한 중세의 생산 수단이 상업으로 이동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활발한 상업을 통해 피렌체, 밀라노, 로마, 베네치아 등 도시국가들이 등장하였고, 상업을 통해 성장한 시민계급은 자신들의 재력에 부합하는 지위를 얻기 위해 학술과 예술을 후원했는데, 미켈란젤로를 후원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보티첼리가 1476년에 그린 성화(聖畵)인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는 주체는 종교적이지만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메디지 가문의 남자들이다.[각주:16] 즉, 예술의 표현 대상이 신에서 인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신은 하나지만 인간은 그 수만큼 다양하다. 획일한 대상만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표현하며 기술적 발전을 해왔던 예술이 인간이라는 다양한 대상을 주제로 삼으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러한 문예 흐름이 바로 중세의 어둠을 종식시킨 르네상스이다. 르네상스를 통해 중세라는 암흑의 철옹성은 서서히 무너지고, 근대라는 새로운 모래성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중세 교황이 자신의  권위를 확대하기 위해 십자군원정이 가져온 도착적 결과였다. 



          동방박사의 경배에 등장하는 메디치가 남자들의 이름

          1. Lorenzo the Magnificent 2. Poliziano 
          3. Pico della Mirandola  4. Gaspare Lami 
          5. Cosimo the Elder 
          6. Piero the Gouty (Lorenzo’s Dad)  

          7. Guiliano de’ Medici 
          8. Giovanni de’ Medici (Piero the Gouty의 동생) 
          9. Filippo Strozzi  

          10. Joannis Argiropulos 

          11. Sandro Botticelli (보티첼리 본인)
          12. Lorenzo Tornabuoni




          ② 성(性)의 금기를 깬 놀란스의 섹시한 음악

          얼마전에 초등학교 4학년 딸과 대화를 하던 중, 자신은 누구처럼 섹시하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말을 듣고는 당황했던 적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성관계를 뜻하는 ‘sex’뿐만 아니라 ‘성적 매력이 있는’으로 해석되는 ‘sexy’는 물론이고, 성과 관련이 있는 일체의 단어는 암묵적 금기어였다. 오죽하면 자신이 어디서 나왔냐는 아이의 물음에 부모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중의적인 답변을 했겠는가? 그 금기를 허물어 뜨린 건 어이 없게도 영국의 4인조 여성 그룹 놀란스(Nolans)였다. 4명의 자매로 구성된 놀란스는 1981년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sexy music’이라는 노래를 불러 대상을 받았고, ‘sexy music’의 인기는 곧바로 한국의 음악 시장을 강타했다.[각주:17] 1981년과 1982년은 sexy music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길거리, 라디오, 디스코텍(그 당시 중학생이라 가 보진 못했지만….) 어디를 가든 ‘sexy’란 단어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인 3S정책[각주:18]과 맞아 떨어져 더 극성스럽게 대한민국에 ‘sexy music’이 울려 퍼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놀란스는 1982년 서울과 부산에서 두 차례나 내한 공연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어쨌든 5.16 군타 쿠데타로 시작된 유신 군부독재가 여자들의 스커트 길이를 재고, 남자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면서까지 무리를 하며 지키려 했던 성적 금기는 전두환 군부의 국민 유화 정책과, 때맞춰 등장한 ‘sexy music’이라는 노래 한 곡으로 인해 모래성 처럼 무너져 버렸고,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무기인 ‘성(性)’을 장착한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은 비로소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질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③ 대만 선거를 움직인 트와이스의 쯔위 사태


          한국의 다국적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멤버인 쯔위(17)가 대만 독립 논쟁을 야기시키며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당선자의 득표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대만명 저우쯔위(周子瑜)인 그는 지난해 11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대만 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들었다. 중국 가수 황안(黃安·54)은 최근 이같은 장면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렸고 대만 독립분자로 의심된다고 썼다. 중국에서도 쯔위를 대만 독립분자로 부르며 비판이 거셌다. 쯔위는 결국 지난 15일 밤 유투브를 통해 공개사과하고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대만에서 분노 여론이 강하게 일었고 차이잉원의 표가 더 결집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대만의 한 정신과 의사는 17일 대만중앙통신에 “1999년 출생한 쯔위는 대만 사회에서 아이로 인식되며 거기에 여성이었다”면서 “대만인들에게는 그의 사과가 굴욕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쑤신황(蘇新惶) 대만 중앙연구원 연구원은 대만연합보에 쯔위 사건으로 차이잉원의 득표율이 1∼2%포인트 올라갔을 것이라고 추산했다.[각주:19]


          상상계 위에 세워진 문명의 관성이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한때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쯔위의 대만 국기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쯔위나 쯔위가 소속된 JYP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박진영이 대만의 선거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대만 국기를 흔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목적 없는 행위가 어떠한 목적을 가진 행위 보다 더 큰 나비효과가 되어 한 국가의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다행히 선거 결과를 뒤집을 정도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 박빙의 선거였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쯔위의 목적 없는 행위로 인해 뒤집혔다면 그 파장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쯔위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쯔위의 동영상을 중국에 배포한 ‘황안’은 강한 목적의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황안의 동영상 배포는 황안의 의도대로 중국인들의 공분을 샀고, 그 공분을 잠재우기 위한 쯔위의 사과가 대만인들의 분노로 이어져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애초에 쯔위의 동영상을 배포한 황안의 목적과는 반대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강한 목적의식성은 그 반발력으로 인해 오히려 ‘도착적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접하게 된다.


          위에 열거한 3가지 예 외에도 우리는 단단한 철옹성이었던 문명이 의도와 무관하게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경우를 인류의 역사를 통해 무수히 확인해 왔다. 예수는 기존의 종교적 관성을 지키려는 무리들의 강한 목적의식성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지만, 죽음 이후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중세의 몰락은 중세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려는 교황의 욕망이 십자군 전쟁으로 표출되면서 시작되었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칼 막스의 외침은 자본주의 세력의 전 세계적 단결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낳았다. 

          예수는 타락한 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민중들의 영혼 속에 잠재되어 숨어있던 보편적 기대를 보았다. 칼 막스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인류의 역사를 통찰하기 위해 자신의 철학적 지향 반대편에 있던 관념적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을 끌어 들였다. 예수와 칼 막스의 위대함은 이러한 상상력에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본 것이 아니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 것도 아니다. 현실의 본질을 보았으며, 더 웅대한 통찰을 위해 그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문명 자산을 활용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상상력은 과거의 당위에 갇혀 있으며, 현실의 이해관계에 묶여 있다.

            3. 小結

              "앞으로 숙제할 시간은 7~8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때쯤부터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기 시작할 겁니다. 패닉 상태가 되면 어떤 정책 수단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각주:20]


              서울대에서 사회발전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장덕진 사회학과 교수는 희망제작소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공동기획한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위와 같이 비관했다. 

              비관은 비관을 낳는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전 세계 금융 자본가들을 단결하게 만들고, 신자유주의라는 위명을 떨칠 수 있게 된 가장 핵심적인 동력은 미래를 낙관하는 상상력이다.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의 시작은 대부분 터무니 없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상의 힘은 단지 과학문명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한 번 ‘상상’해 보자. 중세 봉건시대 인간은 신으로부터 부여된 계급의 존재를 상상 속에서 인정했기 때문에 누군가는 군림하고, 또 누군가는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겠지만, 21세기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은 계급이 아니라 인권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 계급이나 인권은 모두 인간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이다. 그 뿐인가? 이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 관습, 질서, 통틀어서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야 말로 인간의 상상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인간들의 집단적인 상상, 즉 소셜 픽션(Social Fiction)이 시장과 경쟁으로 인해 무장해제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상상의 관성[각주:21]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상상계에 기초 위에 세워진 문명은 때로는 철옹성이 될 수도, 또 때로는 모래성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을 답답한 철옹성으로 인식하느냐, 얼마든지 그 모양을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는 모래성으로 생각하느냐는 모두 인간의 상상력에 달렸다. 마지막으로 레비 스트로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문명의 과거이자 현재이면서 미래인 상상계에 대한 헌사(獻辭)를 목적으로 시작했던 졸고를 마친다. “인간은 언제나 똑같이 잘 생각해 왔다.[각주:22]

              @back2analog


              - 참고 자료 -


              - 단행본은 출간순으로 정렬함

              - 기사 + 인터넷은 본문 참조 순으로 정렬함


              • 단행본
              • 질베르 뒤랑, 『신화비평과 신화분석』, 유평근 옮김, 살림, 1998.
              • 질베르 뒤랑,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 진형준 옮김, 문학동네, 2007.
              • 로버트 커밍, 『미술의 세계』, 신혜연 옮김, 21세기북스, 2009.
              •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 한빛비즈, 2014.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


              • 기사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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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구약성서>, 출애굽기 34:14.
              • “콘스탄티누스 1세”,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콘스탄티누스_1세>, (검색 - 201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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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전 한국인을 위한 ‘뽕’ 팝(상)”, <IZM>,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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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쯔위 사건’ 나비효과... 대만 대선 차이잉원 지지표 결집?”, <경향신문>, 2016년 1월 17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171624201&code=970204>, (검색 - 2016. 7. 2.)
              • "남은 시간은 7~8년뿐, 그 뒤엔 어떤 정책도 소용없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6년 2월 11일.
                <http://www.huffingtonpost.kr/zeitgeist-korea/story_b_9108486.html>, (검색 - 2016. 6. 23).





              1. 문명의 사전적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본문으로]
              2. “civilization”, <네이버 영영사전> [본문으로]
              3.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 28/339쪽(e-book은 뷰어에 따라 페이지 배열이 바뀌므로 전체 쪽수를 표기하였음). [본문으로]
              4.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 62/339쪽(e-book). [본문으로]
              5.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 29/339쪽(e-book). [본문으로]
              6. 昔者莊周夢為蝴蝶,栩栩然蝴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為蝴蝶與,蝴蝶之夢為周與?周與蝴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나비의 꿈”, <위키백과>. [본문으로]
              7. 현실의 나는 작은 따옴표의 ‘나’로, 꿈 속의 나는 큰 따옴표의 “나”로 표시하여 구분함. [본문으로]
              8.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 31~32/339쪽. [본문으로]
              9.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 한빛비즈, 2014, 21/200쪽(e-book) [본문으로]
              10. 마치 상상력에 힘을 부여한 이미지 생산 기술이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과학기술의 정교화가 만든 도착적 결과이듯이…. 질베르 뒤랑, 『신화비평과 신화분석』, 유평근 옮김, 살림, 1998, 20쪽. [본문으로]
              11.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구약성서>, 출애굽기 34:14. [본문으로]
              12. “콘스탄티누스 1세”, <위키백과>, [본문으로]
              13. “콘스탄티누스의 이런 결정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그는 제국을 통합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그리스도교를 이용했으며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을 로마제국에 융화시키고자 했다.”, 로버트 커밍, 『미술의 세계』, 신혜연 옮김, 21세기북스, 2009, 62쪽 [본문으로]
              14. “십자군”, <위키백과>. , [본문으로]
              15. 위 위키백과의 ‘십자군’ 중 직접 인용. [본문으로]
              16. “메디치 가문의 르네상스 미술 후원”, <김미연의 아트노트>, 2011년 4월 17일. [본문으로]
              17. “순전 한국인을 위한 ‘뽕’ 팝(상)”, , 2005년 9월. [본문으로]
              18.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던 시절, 즉 제5공화국 때 시행되었던 우민화 정책을 빗댄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 원랜 미국의 일본 점령기 당시 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탈피를 위해 미군정이 의도적으로 실시한 정책에서 유래했다. 이름에서 3S는 S로 시작하는 3단어(스크린, 스포츠, 그리고 섹스)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3S정책”, <나무위키>. [본문으로]
              19. “‘쯔위 사건’ 나비효과... 대만 대선 차이잉원 지지표 결집?”, <경향신문>, 2016년 1월 17일. [본문으로]
              20. "남은 시간은 7~8년뿐, 그 뒤엔 어떤 정책도 소용없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6년 2월 11일. [본문으로]
              21. 신자유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국제금융위기는 대부분 인간의 집단적 상상의 관성이 경제 성장 쪽에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로 인해 시작되었다. 어차피 금융자본주의는 미래 가치에 대한 상상의 기초 위해 세워진 모래성이다. [본문으로]
              22. 질베르 뒤랑, 『신화비평과 신화분석』, 유평근 옮김, 살림, 1998, 63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