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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의 발전 방안과 과제

by Back2Analog 2016. 9. 30.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의 발전 방안과 과제


서울시교육청 채희태

1. 序, 2012년 교육연구모임을 추억하다

정확히 2012년 5월 2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으로 ‘지역사회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은평구청 기획상황실에 은평의 민과 관과 학이 함께 모였던 때가…. 녹번종합사회복지관 오은석 관장님, 마을N도서관 이미경 대표님, 평생학습관 김미윤 팀장님, 서부교육지원청 프로젝트 조정자였던 정용기 선생님, 시립 은평 청소년수련관 조정현 부장님, 은학네 홍기복, 유성룡, 정상용 선생님, 역촌초등학교 김동찬 선생님, 은평구 지전가 대표 고정원 선생님, 그리고 당시 비서실 정책보좌관이었던 저….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오리발질을 했던 교육복지과에는 박남춘 과장님, 김수지 팀장님, 채지현, 이지영 주무관님이 계셨습니다. 

사실 그 당시 저는 거버넌스라는 말도 잘 몰랐고, 은학네에서는 교육경비보조금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를 했고, 김우영 구청장님은 2012년 신년사에도 밝혔듯 교육경비보조금에 대한 강한 개혁의 의지가 있었고, 교육경비보조금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저는 그 비상식적인 집행 관행에 의문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당시 저는 제 앞에 놓여있는 여러 관성의 파편들을 어떻게 결합시킬지에 대해 이러저러한 상상을 했을 뿐, 그 상상에 대한 어떠한 확신이나 집착 따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뒤끝이 긴 제가 그 당시 받았던 오해에 대해 굳이 해명을 하자면….

 




다양한 입장에서 비롯된 다양한 생각들이 이해관계로 충돌해 제한된 파이의 크기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메워가며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콘텐츠를 통해 마을과 학교가 연계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 그 가능성이 열리자,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행정 경험을 축적해 왔던 녹번종합사회복지관의 오은석 관장님을 좌장으로 지역사회 교육콘텐츠 연계를 위해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를 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렇게 교육연구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육연구모임은 다음의 3가지 관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습니다. 
① 민관학 교육거버넌스의 맹아적 형태로서 교육연구모임이 가지는 위상
② 마을과 학교의 연계, 협력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
을 구체화한 최초의 모임
 교육연구모임을 통해 성공한 정책이 갖춰야 할 세 가지 요소인 예산, 정책, 주체가 마련된 점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수당도 받을 수 없는 비공식 모임인 교육연구모임이 지역사회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의 성공을 위해 8시간 넘게 도시락을 까먹으며 열정적으로 사업계획서를 검토했던 그 수많은 날들을…. 제가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의 발전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단순한 노스텔지어만은 아닙니다. 이미 관성의 수레바퀴 위에 올려진 정책의 발전 방안을 논의함에 있어 첫째 그 정책이 시작된 최초의 의도와, 둘째 그 의도가 만들어 놓은 예기치 않은 결과와, 마지막으로 이미 통제가 어려워진 정책의 매너리즘에 대해 살펴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서론을 대신해 그 첫번째를 이야기 했습니다. 본론에서는 두번째와 세번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2. 本, 교육콘텐츠 사업이 만들어낸 도착적(倒錯的) 결과와 매너리즘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2012년 말에는 ‘행복한 학교를 위한 은평의 실험’이라는 기존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정책연구가 진행되었고, 2013년에는 사업에 대한 수정 보완이 느슨하게 진행된 반면, 2014년에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교육우선지구에, 2015, 2016년에는 서울시와 교육청이 주도하는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 끌려다니느라 숨 쉴 틈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지금 은평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민관학이 함께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은평은 분명 교육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물결이 만들게 될 지류까지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게 삐져나간 지류가 현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결합해 의도에 역행하는 도착적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만약,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을 통해 마을과 학교의 관계망과 무관한 이해관계가 발생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애초에 의도한 결과가 아닙니다. 즉, 교육콘텐츠 사업의 핵심은 마을과 학교의 관계망이 안전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지, 오로지 교육콘텐츠 사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소규모 비교과 사교육 업자의 양산과 그 이해관계의 확대에 있지는 않습니다. 


      1) 마을과 학교의 관계 밀도를 높이기 위한 교육콘텐츠의 연계

      학교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작은 마을이 교육콘텐츠 사업을 이루는 최소 유닛으로 본다면 은평구도 꽤 넓은 공간입니다. 진관동에 있는 교육콘텐츠가 수색동에 있는 학교와 연계하는 것은 교육콘텐츠 사업의 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2012년, 최초에 교육콘텐츠 사업을 구상할 시기에는 학교에서 신뢰할 수 있는 마을의 교육콘텐츠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은평 지역에서 벗어나 있는 교육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중복이 되지 않는다면 승인을 해 주었습니다만, 교육콘텐츠 사업 설명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은 마을과 학교의 일차적인 관계을 높이는 것이라는 방향을 수차례 역설했던 기억이 납니다. 

      은평의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은 서대문, 강북, 성북 등으로 벤치마킹되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번은 성북구청의 요청으로 성북구의 교육콘텐츠 사업 참가자 대상으로 사례 발표를 하는데, 중간 쉬는 시간에 많은 분들이 은평에서 왔다며 인사를 하더군요. 저는 쉬는 시간을 마치고 발표를 이어가면서 성북 교육콘텐츠 사업의 성공을 위해 은평의 경험이 필요는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성북의 자원을 발굴해 학교와 연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제 발표를 들으셨던 은평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모든 현장은 각기 다른 장점과 극복 가능한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미디어의 발전은 그 각기 다른 다양성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폭력적으로 일원화시켰고, 극복 가능한 단점을 무기력한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교육은 성장의 계기를 제공합니다. 동시에 교육은 산업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교육을 통해 성장한 개인을 선발해야 하는 목적도 갖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이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듯, 성장과 선발의 균형은 근대교육의 시작과 함께 던져진 숙제입니다. 일찌기 조선시대부터 관료사회가 시작된 우리나라와 영국에서 독립해 그 역사가 짧은 미국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소위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지향하며 교육의 선발 기능을 더 중시해 왔습니다. 반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복지국가를 표방한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은 개인의 성장에 무게를 두는 교육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교육의 목적이 산업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와 다른 환경 속에 있는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교육의 결과가 경쟁에서 이기는 자와 패배한 자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그 길을 선택하겠지만, 과도한 기대와 현실 간의 간극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우리 모두를 불행의 늪으로 내몰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현실 속에서, 이제는 경쟁을 통한 선발이 아닌 다른 목적의 교육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은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잣대에 맞추려는 선발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고 있는 날 것 그대로의 마을과 학교가 만나 관계의 밀도를 높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성장 중심의 교육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매너리즘의 혁신, 플랫폼과 콘텐츠의 관계를 생각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지 않으면 밥을 지을 수 없고, 숭늉도 만들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우물 앞에서 밥을 짓고 숭늉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물이 밥과 숭늉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물을 제공하는 하나의 플랫폼이고, 그 우물에서 퍼 올린 물로 쌀을 씻고, 밥을 지어 각기 다른 맛으로 만들어지는 숭늉이 다양한 콘텐츠라면, 탑다운 방식의 정책 추진에 익숙해진 우리는 우물에서 밥도 짓고, 숭늉도 만들어서 각자의 집에 나눠주는 비효율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물을 관리하는 사람은 숭늉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거나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지요. 숭늉이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밥을 짓는 각자의 집에서 할 고민입니다.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은 마을과 학교의 협력을 지향하는 교육정책 플랫폼입니다. 마을과 학교의 협력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고, 그 필요성 또한 수면 아래에 잠자고 있던 사업 초창기에는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역할 보다는 구체적인 콘텐츠 사례의 발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올해로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을 추진한 지 만 5년이 됩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하나의 정책이, 다른 정책도 아니고 백 년 뒤를 생각해야 하는 교육 정책이 자리를 잡아 시스템화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그 사이에 마을과 학교의 협력 필요성이 대중적으로 확장되는 외부 지형의 변화 또한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은평의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은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며 매너리즘에 빠진 하향식 정책 관성을 혁신하고, 마을과 학교의 다양한 연계 협력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2년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을 시작할 때, 몇 가지 원칙들을 세웠습니다. 첫째 공교육과의 경쟁이 아닌 상호 보완을 위한 ‘비교과 원칙’, 둘째 정책 추진 과정에서 마을과 학교가 함께 성장한다는 ‘상생 의 원칙’, 마지막으로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학교가 기꺼이 선택할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하여 제공한다는 세 가지 원칙이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2014년 설명회 때, 세번째 원칙인 ‘콘텐츠 경쟁력’ 보다 ‘마을과의 연계성’이 더 우선한다는 원칙의 수정이 있었습니다. 그 원칙의 플랫폼 위에 다양한 교육콘텐츠들이 얹혀지고 성장해 지금의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이 되었습니다. 정책이 만들어 놓은 변화된 결과에 맞게 원칙을 점검하고, 혹시라도 그 원칙이 또다른 관성이 되어 정책의 확산에 장애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살펴보아야 하는 것도 매너리즘을 혁신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은평은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민관학이 협력해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했고, 그 성장의 경험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시교육청에서 20개 혁신교육지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민관학 협력사례를 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다양한 갈등 유형이 있고, 또 다양한 주도 유형이 있습니다. 은평의 민관학은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없지 않았으나 꾸준히 그 관계가 깊어져 왔고, 그 품이 넓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민관학 정책 당사자들을 넘어 마을과 학교 속에서 더 깊어지고, 은평구의 구석구석으로 그 정책의 넓이가 보다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小結, 마을과 학교의 협업적 중간지대에 대한 제언

          구청을 비롯한 행정기관에 민원을 제기해 본 사람이라면 공무원이 서로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다른 부서에 책임을 떠넘기는 소위 ‘핑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은평구청 비서실에서 근무해 본 경험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오롯이 한 부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민원이 아닐 경우 그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공무원의 입장에선 자신의 권한 밖에 일에 관여를 하는 것은 월권이고, 만약 공무원이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넘어섰다면 그 공무원은 반드시 감사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답답한 민원인의 입장에서야 속이 터질 일이지만 그렇다고 만약 공무원의 월권을 조금씩 허용한다면 우리는 더 큰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는 누군가가 여러 부서가 협력해 그 민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또한 쉽지는 않습니다. 

          마을과 학교의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8월 22일 한겨레신문에 “서울 ‘방과후학교’ 지자체가 맡는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정규교과 후에 이루어지는 ‘방과후’학교는 학교의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고, 방과후학교로 인해 다양한 행정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빨리 마을로 그 업무를 이관하고 싶은 절박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과후’학교’가 오롯이 마을이 책임져야 하는 것 또한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마을과 학교의 협력 지원을 필수과제로 제시한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마을과 학교는 이미 만나 다양한 협력 사업을 펼치고 있거나 서로 만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2015년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학교가 마을로 향하는 ‘마을결합형학교’를, 서울시에서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를 통해 마을이 학교로 향하는 ‘마을과 학교의 상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울시, 교육청, 자치구에서 추진하는 교육 정책의 추진 방향은 마을과 학교의 협력이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인식의 확산을 가져 왔고 그 결과 마을과 학교 사이에 새로운 접점과 교집합이 확보되고 있습니다. 

          현대 산업사회의 발전이 낳은 분업화와 전문화는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많은 다양한 영역들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분산시켰고, 분업화와 전문화된 영역의 이해관계가 확장되어 다른 영역과 충돌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사회문제에 대해 책임의 회피와 전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업화와 전문화가 효율적인 생산의 확대를 위해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당면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나가는데는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마을이 해야할 역할이 학교로 떠넘겨져 학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애초에 교육의 분업화와 전문화가 낳은 예기치 않은 결과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을 또한 개개인의 경쟁적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버린 결과가 교육문제라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구조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방과후학교, 돌봄, 교육복지 등 마을과 학교가 서로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오롯이 자신의 전문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다양한 업무들은 당분간 마을과 학교의 접점 지역인 ‘협업적 중간지대’에 놓고 마을과 학교가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최선과 또 다른 누군가의 최선의 충돌은 최선이 아닌 최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서로다른 누군가의 최선과 최선의 충돌이 낳은 악순환의 결과입니다. 교육콘텐츠 연계 사업의 시작은 누군가의 반대와 또 누군가의 우려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최선을 조금씩 양보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 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최선은 자신의 최선을 양보해 최악을 막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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