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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시대 진단

기적과 우연을 대하는 인간의 세 가지 태도...

by Back2Analog 2017. 6. 14.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기적은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문명이 있기 전 인류는 그 규칙을 알 수 없는 모든 자연 현상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했고, 숭배했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문명시대 이전엔 모두 기적이었다. 과학문명이 발전하면서 기적의 영역은 끊임없이 축소되어 왔다. 그렇다고 모든 기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는 과학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아직 남아있는 기적의 영역 또한 언젠가는 인간의 힘으로 증명해 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기적과 비슷하게... 논리적으로 그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우리는 우연이라고 말한다. 우연은 인간의 능력으로 그 인과관계를 밝할 수 없는 객관적 우연과,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필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필연이 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주관적 우연이 있다. 때때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천재지변 등은 객관적 우연이지만, 만약 길을 가다가 예기치 못한 친구와 마주치는 것은 그 친구에게는 필연이 나에게는 우연이 되는 주관적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객관적 우연, 주관적 우연이라는 말은 학계에 발표되었는지도 모를 나의 주관적 정의이다. 만약 진짜 그런 개념이 있다면, 혹시... 난 무지한 천재? ㅎㅎ

그럼 이제 인류가 문명의 과정에서 기적과 우연을 대해왔던,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 가지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첫번째, 기적은 신의 영역이고, 우연은 인간의 의지 밖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노터치!

첫번째 태도는 별다른 부연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초기 인류가 자연 현상을 대했던 태도나, 문명화된 현대 인류의 대부분이 취하고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니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원시 인류와 현대 인류가 다른 것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기적과 우연을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켜 절망하거나 분노한다는 것?

두번째, 기적과 우연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 인식 안에 있을 뿐...

근대 철학이 취하고 있는 대표적인 태도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문명은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자연)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문명은 서서히 자연과 분리되었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는 문명의 사전적 정의처럼 문명은 모든 자연스러운 것에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이자, 존재 이유인 문명은 중세를 넘어 근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지나친 오만으로 발전한다. 인류는 자신이 이룩한 문명과, 그 문명 과정에서 동물적 본능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온 이성의 잣대로 여전히, 그리고 엄연히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하고 있는 기적과 우연을 무시하거나, 지극히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칼 마르크스를 포함한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 모든 근대 사상가와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모든 인류가 바로 이러한 두번째 태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 기적과 우연을 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문명에 대한 인류의 오만이 추악한 탐욕이 되는 지점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한다. 그리고 전 세계를 전쟁의 불바다로 만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치루고 난 다음에야 인간은 그 동안의 오만을 반성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기 시작했다. 문명과 이성에 대한 오만이 만들어 낸 인간의 집단적 폭력성을 경계하는 과정에서 바야흐로 포스트 모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포스트 모던의 시대를 가장 먼저 열어제낀 것은 예술분야였다. 

"현대 미술가는 낡은 르네상스 시대의 형식으로 비행기와 원자폭탄, 라디오 그리고 이 시대를 표현할 수 없다. 모든 시대는 각기 자기 시대만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 잭슨 폴록

그리고 자연과학이 그 뒤를 이었다. 자연과학은 복잡성, 불규칙성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 결과 카오스와 프렉탈 이론에 접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포스트 모던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문명에 대한 오만의 관성은 남아 있다. 그래서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아직도 두번째 태도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포스트 모던 시대의 불확실하고 복잡한 사회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최초의, 그리고 의미있는 사회과학자는 "니클라스 루만"이라고 생각한다. "괴물과 함께 살기"에서 정성훈은 장 자크 루소, 프리드리히 헤겔, 칼 마르크스 등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괴물에 맞서 싸우다 생겨난 괴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체계 이론에 대해 "괴물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괴물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문명이 만든 복잡성을 이성의 주관성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분리시켜 인식한 최초의 시도로 소개하고 있다. 니클라스 루만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면서도 없다. "많다"라는 말은 알고 싶다는 표현이고, "없다"라는 말은 알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루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각성자들은 대략 10년 안에 도래하게 될 루만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루만 학회를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루만을 예수와 마르크스의 뒤를 잇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찰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루만에 대해서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안타깝게도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 ㅠㅠ


@back2ana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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