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누군가는 탈도 많길 바랐지만 탈은 없었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그 아쉬움이 배부른 아쉬움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컬링의 스웨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메달을 딴 것이었다. 날씨가 추워 길거리 응원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컬링은 2002년 월드컵 4상 신화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여자들이 그동안 가장 싫어하는 스포츠였던 축구의 그 단순한 룰을 이해하게 된 것처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이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다소 복잡해 보였던 컬링의 룰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하고 보니, 확실히 컬링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처음엔 괴상한 포즈로 빙판에 돌을 미끄러뜨리는 것도, 돌 앞에서 마구 빗자루질을 해 대는 것도 그렇게 우수꽝스러웠는데...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여자 이름은 ‘영희’가 아니라 ‘영미’가 된 것 같다. 영미를 중심으로 구성된 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은 국민을 웃게 만들었다. 이제는 모든 국민들이 다 알게된 얘기지만 재미있으니 한 번 더 리바이벌을 해 본다면... 엄근진 스킵 김은정은 리드 김영미의 친구다. 경기 때마다 시원한 테이크 아웃을 보여줬던 서드 김경애는 영미의 동생, 언니한테 심부름 왔다가 컬링을 하게 되었다고... 귀여운 덧니의 세컨 김선영은 영미의 동생인 김경애의 친구다. 그동안 대한민국을 망쳐왔던 학연, 혈연, 그리고 모두 마늘로 유명한 의성 출신이라 지연으로 엮인 팀이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끝나고, 올림픽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준 컬링도 끝나고... 아쉬움도 달랠 겸 컬링을 보며 느꼈던 몇몇 소소한 느낌들을 정리해 보겠다.
1. 시원한 수비와 다소 치사한 공격...
컬링 경기를 보며 가장 의아해했던 것은... 선수들이 시원시원하게 상대팀의 돌을 쳐내는 테이크 아웃을 하면 수비를 잘하고 있다고 하고, 반면 치사하게 돌이 가는 길을 막는 가드를 많이 세우면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해설자의 설명이었다. 구글링을 해 보았다. 나무 위키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보통 가드를 세우는 행위를 수비적인 플레이라 착각하기 쉬운데, 가드를 세우는 것은 일반적으로 공격적인 플레이에 해당된다. 스톤을 계속 테이크 아웃시켜 변수를 만들어주지 않게 되면 설령 선공을 들고있더라도 1점만 내주고 엔드를 마치게 되므로 대량 실점을 하지 않게 되지만 반대로 하우스내에 남길 스톤도 없어지므로 대량 득점도 불가능해지기 때문. 특히 센터라인을 빗겨서 세우게 되는 코너 가드의 경우는 코너 가드를 이용하여 득점이 가능한 스톤을 보호하거나 상대의 버튼 컴어라운드 샷을 방해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다득점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드들이 많아지면 후공을 들고 있는 경우 다득점을 하기도 용이해지지만 스틸을 당해 점수를 빼앗기게 될 경우 대량 실점을 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지므로 여러모로 양날의 칼이 된다. (출처 : 나무위키)
실제로 양팀 모두 수비형 전략을 구사했던 스웨덴과의 결승전은 버튼에 돌이 올라가기만 하면 테이크 아웃으로 쳐내 별로 재미가 없었다. 졌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왕 이렇게 될 거 치사하게 공격형 전략을 시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ㅋ
2. 변수와 상수의 대결
컬링의 목표는 후공을 할 때 2점 이상의 점수를 내는 것이다. 반면 선공은 후공하는 팀의 점수를 1점으로 묶는 것이 핵심적인 전략이다. 후공에서 1점을 딸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블랭크(0득점)를 만들어 다음 경기의 후공을 차지하는 것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바둑에서 선수가 가지는 유리함과는 반대로 컬링에서는 후공이 그만큼 유리하다. 중앙에 돌이 많으면 다음 돌로 쳐 내면 되니 그만큼 변수가 줄어든다. 반면 앞에 장애물이 있고, 그 뒤에 돌이 숨어 있으면 변수가 많아져 대량 득점이나 대량 실점이 가능해진다. 처음엔 그저 돌을 던지고, 빗자루로 닦는 단순한 스포츠로 봤는데, 변수와 상수를 놓고 벌이는 선공과 후공의 전략 대결을 이해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선공이 센터라인에 가드를 세워놓고 시작하는데, 그 가드를 쳐 낼 것인지, 다른 가드를 세울 것인지, 버튼에 돌을 올려 놓을 것인지, 버튼에 돌을 올려 놓는다면 어디에 둘 것인지... 그렇게 던진 돌을 상대방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따라 상수는 변수가 되고, 변수는 상수가 되어 서로 대결을 벌인다. 컬링의 전략을 좀 더 이해한다면 보다 재미있게 컬링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3. 방과후학교의 역설?
대한민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 리드 김영미가 방과후학교로 컬링을 시작하면서 결성되었다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게 된 사실이다. 방과후학교... 사실 교육계에서 방과후학교는 마치 계륵과도 같은 존재이다. 2004년 사교육 대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방과후학교는 사교육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공교육이라고도 볼 수도 없는 대한민국 교육의 사생아이다. 현재 방과후학교의 시장 규모는 약 5조원 내외로 추정된다. 공교육 진영에서는 교사의 행정업무가 가중된다는 이유로 방과후학교를 학교 밖으로 내 보내려 하고 있고, 학교 밖에서는 안전성의 문제와 더불어 현재 수익자가 부담하고 있는 저렴한 수업료로 원하는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방과후학교를 ‘좋은 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제가 보니까 학교에 너무 많은 혹이 달려 있어요. '초등돌봄'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방과후학교' 학원을 공교육 안으로 흡수하는 의미도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 때 붙었습니다. 좋은 혹이에요. 그런데, 학교가 너무 고통스러워요. 반대로 학교가 중심 교육에 집중하도록 '초등돌봄'이나 '방과후학교'는 지역 사회가 담당하는 식으로 이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희연 “우리 아이들, ‘이중 국적자’가 돼야 합니다” 2016. 7. 13. 오마이뉴스)
지난 2017년 7월 14일, 문재인정부 출범 후 교육부가 개최했던 “2017 방과후학교 국제 포럼”에 참가한 다양한 국가들의 방과후학교 사례를 들으며 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다른 나라의 방과후학교 사례가 대부분 방과후학교 ‘어떻게’였다면, 대한민국 방과후 학교의 사례는 방과후학교 ‘누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참 대한민국답다는 생각을 했다. 덴마크에서 공교육의 ‘보완재’로 확대된 에프터스콜레도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순간 공교육과 사교육의 대체재로 변모한다. 대한민국 교육에서 ‘보완’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누군가를 기필코, 반드시 ‘대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이다. 공교육은 사교육을 대체해야 하고, 대안교육은 공교육을 대체해야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에서는 관전 포인트가 ‘영미’였지만, 지난번 소치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의 컬링 경기를 보며 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컬링 강국이라고 불리는 북유럽의 컬링 선수들은 대부분 컬링 선수가 직업이 아니었다. 교사나, 의사나,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 컬링 경기에 출전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컬링선수는 그냥 직업이 컬링 선수였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컬링팀을 울리고, 또 웃게했던 일본 대표팀의 스킵, 후지사와 사츠키 선수의 직업도 컬링 선수가 아닌 보험회사의 사무직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마 부족한 저변에서 대한민국이 빠르게 컬링 강국이 된 배경에는 생활 스포츠로 하는 컬링과 직업 스포츠로 하는 컬링의 차이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컬링 대표팀이 교육계의 계륵인 방과후학교를 통해 발굴되고 성장해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사실은 매우 대견한 일이다. 다행히 영미 신드롬으로 컬링이 국민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부족한 저변에, 대중의 주목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연습해 왔을 선수들을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대한민국에서도 컬링 선수들이, 아니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스포츠를 직업이 아닌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다행히 오는 3월에 경기도 의정부에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국제규격의 컬링훈련장이 생긴다고 하니 컬링을 즐기러 가족 나들이를 해 볼까도 생각 중이다. 그런데 당분간은 경쟁력이 장난이 아니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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