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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그대는 그대의 촛불을 들어라! - 박근혜 탄핵 1주년을 돌아보며...

by Back2Analog 2018. 3. 10.

  대한민국의 위대한 시민이 촛불을 들어 박근혜를 파면시킨 지 꼭 1년이 지났다. 하여 촛불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고, 아직도 '근대주의의 망령’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촛불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이 글은 지난 2월 6일 쓴 글이다. 하지만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에서 대형 촛불을 들고나오는 몇몇 사람들을 보며 글 일부를 고쳐 다시 올리게 되었다. 고백하건대, 이른바 자기 표절인 셈이다.




  촛불의 승리는 목소리 크고, 잘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승리가 아니다. 먹고 사는데 바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보잘것없는 개인과 개인의 연대가 만들어 낸 승리이다. 그동안 잘난 누군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위임해 온 소심한 삶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바로 촛불 정신에 녹아 있다. 이제 내 생각은 내가 대변할 테니 진보도 보수도 더이상 내 생각을 대변하지 말라는 것이 촛불의 명령이다. 누가 감히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내 촛불을 사칭한단 말인가! 촛불을 ‘대변’하겠다는 오만이야말로 가장 촛불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촛불은 화염병이 아니다. 동의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남녀노소가 들고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촛불이다. 그러니 수고스럽게 누군가의 촛불을 대신 들려 하지 마라. 그대는 그저 그대의 촛불을 들면 된다.


광화문 촛불은 첫째,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개인과 개인이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한 사건이다. 

  가슴 아프지만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 이 시대에 ‘가만히 있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처음엔 거칠게 몰아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과 개인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내면화되었다. 그리고 그 내면화된 깨달음이 하나의 촛불이 되고, 백만의 촛불이 되고, 천만의 촛불이 되어 촛불 혁명으로 이어졌다.


둘째, 능력 있는 전문가에게 나의 목소리를 위임한 결과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다.

  분업화된 산업사회 속에서 우리는 시나브로, 그리고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바쁜 삶에 익숙해져 왔다. 어느새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잊게 되었다. 그저 정해진 체계 안에서 바쁘게, 열심히 살면 나도 행복하고, 사회도 성장하리라 생각했다. 우리가 벼랑끝으로 밀려가는 줄도 모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 꼭대기 누군가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만든 평가의 잣대에 놀아나며 경쟁했고, 또 경쟁에서 이기면 우쭐해 했다.
  위임받은 전문가는 절대 자신을 위임한 누군가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을 대변할 뿐이다. 때로는 똑똑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내 생각을, 시대의 절박함을 대변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시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으로 이분화된 근대 사회가 아니며, 이성의 오만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로 이어진 영웅주의 시대도 아니다. 현재는 자본가가 아닌 비인격적인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다. 자본가가 지배하는 사회라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그리고 구글의 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각주:1] 예술분야에서 '폴록'[각주:2]이, 자연과학에서 '망델브르'[각주:3]가, 사회과학에서 '푸코'[각주:4]와 '루만'[각주:5]이 개척했던 탈근대에 대한 진단과 통찰을 바탕으로 마침내 시민들은 위임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깨달게 되었다. 더이상 진보도, 그리고 보수도 건방지게 나를 대변하지 마라! 이제 나는 내가 대변하겠다...는 포스트모던, 탈 영웅주의 시대의 목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촛불을 대변하겠다며 나서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어떤 촛불이 그대들에게 내 생각을 대변해 달라고 위임했는가! 그대들이 내 생각을 대변할 생각이 있기는 한가? 그대는 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촛불을 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의 촛불을 들어라.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누구도 위임한 적이 없는 촛불을 대변한다고 감히 주장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셋째, 광화문 촛불 혁명은 당장의 적당한 합의가 만들어 낸 "개인 연대 혁명"이다.
  광화문 광장에 지도부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주도한 세력은 없었다. 누구라도 큰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여지없이 무시를 당했다. "그건 당신 생각일뿐이야. 아직 우리는 거기까지는 합의하지 않았어!" 지도부는 그저 개인과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담는 플랫폼의 역할에 충실했다. 누군가는 과거의 시위 전문성을 끄집어 내 우리가 폭력으로 시위를 주도할테니 촛불은 뒤에서 우리를 지지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치 지난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자 자신들이 자본을 쏟아부어 쌓아놓은 IT 생태계를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면 2년 동안 아이폰의 국내 출시를 막아온 대기업과 통신사의 카르텔처럼, 현실에 등장한 개인과 개인의 어설픈 연대가,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과학적, 전위적 투쟁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늘 매력적인 프레임을 만들어 시민들의 시선을 본질에서부터 떨어뜨리고 분산시킨다. 기득권의 본질은 여전히 계급이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은 계급이라는 본질에 시민들의 시선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이념, 인종, 성별, 지역, 나아가 세대라는 프레임을 통해 시민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서로 싸우도록 부추긴다. 아직 공부가 짧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난 그 최초의 시도를 '낭만주의' 프레임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본질로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프레임 전략의 첨병은 바로 미디어다. 미디어를 통해 비쳐지는 가공된 판타지에 시민들은 현실과 유리된 기대를 갖게 되고 그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때로는 자본이 원하는대로 소비하고, 때로는 기득권층이 짜 놓은 프레임 안에서 투쟁한다. 


  변증법이 사라진 역설의 시대... 나의 확신이 역설적 결과로 이어지고, 종교화된 가치와 신념은 무논리와 비논리를 장착했다. 우리가 서로의 당위를 주장하며 투쟁하는 그 시간에도...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꼼꼼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 그래서... 정말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장’의 ‘적당’한 ‘합의’일지 모른다. 그 당장의 적당한 합의는 당위와 당위의 칸막이를 허무는 물꼬가 되어 때때로 연대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기도 한다. 2016년과 17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광화문 촛불혁명은 당장의 적당한 합의가 만든 개인 연대의 승리이다.


그러니, 거듭 말하거니와, 그대는 그대의 촛불만 들어라!


@back2analog

  1. 아무리 거대한 자본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흥하기도, 망하기도, 성하기도, 쇄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이미 자본가의 손을 떠난지 오래다. [본문으로]
  2.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현대 미술가는 낡은 르네상스 시대의 형식으로 비행기와 원자폭탄, 라디오 그리고 이 시대를 표현할 수는 없다. 모든 시대는 각기 자기 시대만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 Jackson Pollock [본문으로]
  3. 브누아 망델브르(Benoît B. Mandelbro. 1924 ~ 2010). 프렉탈의 창시자. 1975년에 망델브로는 이런 구조의 도형을 나타내는 말로 ‘프랙털’이라는 낱말을 만들어서 그의 생각을〈Les objets fractals, forme, hasard et dimension〉(프랙털 - 형태, 우연성과 차원)이라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본문으로]
  4.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푸코는 후기구조주의 사상가일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제목 하에 포함되기도 한다. 만일 우리가 모더니티를 합리성, 목적, 총체성, 종합, 결정성과 같은 용어와 결합시킨다면 포스트모더니티는 비합리성, 유희, 해체, 반(反), 비결정성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세계이다.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 1985.) [본문으로]
  5.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1927 ~ 1998). 루만은 사회체계이론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복잡성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킨 최초의 사상가이다. 루만은 자신의 체계이론을 사회학의 사회학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