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4달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전 2018년 새해 벽두부터 교육감 선거에 대한 불길한 예언(2018년에 대한 예언 or, 통찰... 링크 클릭)을 한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두고 볼 수만은 없기에 교육감 선거와 관련하여 몇가지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 첫 번째, 교육감 선거, 경험의 연장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최선과 최선의 투쟁은 매우 전근대적인 방식일뿐만 아니라, 최선이 아닌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서울시교육감을 준비하고 있는 후보들에게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경험의 연장’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인지 묻고 싶다. 서울시교육감은 아마도 한국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기대의 무게로 인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임기를 채운 적이 없었다. 더 과격하게 가치를 중심으로 밀어붙인다고 대한민국의 교육이 바뀔 거 같았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블랙하우스에서 김어준이 했던 말처럼 어떤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없을 땐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동안 진보 교육감이 이루었던 미흡한 성과가 마음에 안들어 새로 맨 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에 대한 질문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두 번째, 교육감 선거의 목표가 고지의 점령인가?
선거를 보통 전쟁에 비유해 선거전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대에 따라 전쟁의 양상은 바뀌어 왔지만, 여전히 선거전은 구시대의 정치공학적 사고 안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근대전의 목표가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면, 현대전에서 고지의 점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군 희생의 최소화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군인 한명의 목숨값이 달라졌고, 인권의식의 보편적 성장으로 반전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아군의 희생이 늘어난다면 반전 여론의 확산으로 인해 전쟁을 유지해 나갈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베트남전과 그나마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02년 걸프전이다. 걸프전의 전략적 목표는 대놓고 아군 희생의 최소화였다.
그렇다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할까?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보다 진보적 가치를 앞세운 교육감이 교육청이라는 고지의 점령하는 것인가? 아니면 벼랑끝으로 폭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의 가속도를 약화시키거나 방향을 바꾸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장이 아닌 선발로 치우쳐 있는 현재의 교육은 매우 보수적인 주제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 개천에서 용을 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간신나라의 충신이 간신인 것과 다르지 않은 논리로 보수적 이슈인 교육을 진보적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의도와 무관하게 교육 담론을 분산시켜 교육을 더욱 보수화시킬 뿐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교육이 그래오지 않았는가! 진보가 서로 피 터지게 가치 투쟁을 하는 사이 교육의 기득권 세력들은 꼼꼼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왔다.
진보 교육은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는 교육이 아니라 시민의 생각을 담는 교육이고, 시민에게 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교육이다. 설마 촛불을 들어 박근혜를 탄핵했던 80%가 넘는 시민들이 모두 진보 교육 담론에 찬성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노동자와 자본가로 이분화된 초기 자본주의가 아니며, 교육을, 그리고 이념을 진보와 보수로 완벽하게 분리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노동자의 당파성이 대기업의 노동자와 공무원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당파성을 아우를 수 있는가? 자본가의 당파성이 재벌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가? 진보 교육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녀들은 자사고가 아닌 죽어가고 있는 일반고를 다니고 있는가? 정에 반하면 합으로 나아간다는 변증법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지 오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사회는 영웅이 사라진 탈영웅주의 시대라고도 말한다. 시민 개개인이 영웅인 시대이고, 그 영웅들이 모여 인류 역사상 초유의 촛불 혁명으로 샤머니즘 정부를 파면했다. 탈영웅주의 포스트모던 사회에선 반을 무시한 정이나, 정과 반하는 지나치게 강한 주장은 영웅이 된 시민들에 의해 역설적 결과로 이어진다. 여전히 진보적 가치를 목놓아 부르짖는 영웅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탈영웅주의 시대를 이끌고 있는 영웅인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라!
❏ 세 번째, 교육감 선거의 전선, 기득권 세력인가, 구조화된 교육의 관성인가?
전쟁에서 적과 아를 구분하는 전선을 어디에 형성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자칫 잘못된 전선으로 아군을 적으로 오인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전략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적을 아군으로 오인하게 되면 전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 것이다. 진보라는 가치, 그리고 교육이라는 특정 영역에서 치루어지는 교육감 선거의 전선은 그래서 매우 복잡하고 애매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도 밝혔듯 현재 과도하게 선발기능에 치우쳐 있는 교육은 진보와 보수가 복잡하게 서로 엉켜있기 때문이다. 전선이 마치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엉켜 있을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꼼꼼하게 엉켜 있는 전선을 푸는 방법과,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기 위해 나머지 부분을 강제로 끊어내는 방법... 성미가 급한 우리는 쉽게 후자를 택한다. 사람은 실타래와 달라서 끊어낸다고 쉽게 쓰레기통에 처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끊어낸 가치와 필요성의 기준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력이 형성된다. 가치를 중심으로 편의적으로 적과 아를 분리해 왔던 진보의 관성과, 가치에 의해 배제, 분리되어 왔던 반발력의 축적이 현재 교육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거대한 장애물이다. 나는 이를 구조화된 교육의 관성이라 칭한다.
교육감 선거의 전선...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 없이 편의적으로 그어진 가치의 선인가, 아니면 교육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부터 비롯되어 가치의 칼날에 난도질당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구조화된 교육의 관성인가!
❏ 네 번째, 교육자치에 대한 오해와 진실...
교육자치가 교육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인정하고, 확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선발된 교육 기관의 전문가들이 모여 교육감을 뽑는다면 모를까, 시민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하는 교육자치는 오히려 교육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시민의 상식에 맞게 해체하는 것에 더 가깝다.
일반자치는 오랫동안 시민의 요구와 무관하게 작동되어 온 일반행정의 전문성이 시민의 상식에 맞게 작동될 수 있도록 일반행정의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의 대표를 투표로 선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육자치도 시민의 상식과 어긋나고 있는 교육행정의 전문성을 시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한 교육감을 통해 어긋난 교육의 방향을 바로잡는 것이다. 즉, 교육감은 교육 기관의 대표가 아니라 시민의 대표이다. 그런 관점에서 서로 벽을 사이에 두고 다른 교육을 지향해 왔던 마을과 학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으로 상대방을 보완하는 혁신교육은 시민의 요구이자 교육자치가 지향해야 할 기본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교육의 문제를 교육 전문가들이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을 종교화시키는 전근대적인 발상이다. 종교는 신도들이 신을 대리하는 성직자의 말과 가르침을 따른다. 그렇다면 교육이 종교인가? 교육에 대해 이견을 주장하고, 교육 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이단’이고, 시민의 상식으로 선출한 교육감이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박해'인가? 그렇다면 정치도 정치 전문가인 정치인만 해야 하는 것인가? 신성한 교육을 감히 정치 따위와 비교하는 것이 불쾌한가?
모두 다 알고 있겠지만, 경영학은 business를 배우는 학문이고, 경제학은 economy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교육감이 교육기관을 대표하는 자리라면 마치 경영학처럼 교육 기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교사가 되는 것도 무방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교육감은 교육 기관인 학교를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민의 상식을 바탕으로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자리이다. 그런 이유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교사가 교육감을 하는 것에 원칙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교육감을 반드시 교수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자치는 주관성의 강화가 아니라 교육에 대한 객관적 요구에 대한 응답해야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 조잡한 견해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누가 꼼꼼하게 읽고 논평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으며, 나의 주관적 생각이 누군가의 생각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이런 생각도 있을 수 있다는 작은 보완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back2analog
'사회+문화+교육 > 근대교육의 종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는 그대의 촛불을 들어라! - 박근혜 탄핵 1주년을 돌아보며... (4) | 2018.03.10 |
---|---|
여자 컬링, 영미 신드롬과 방과후학교... (2) | 2018.02.27 |
'합의'와 '인정'의 거버넌스... 2018년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 바람! (0) | 2017.12.14 |
전문직을 중심으로 한 '자격'과 '내용' 논쟁 (0) | 2017.12.08 |
청춘에 고함! (0) | 201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