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핀란드+덴마크 교육 연수 0일차

by Back2Analog 2019. 8. 23.

비행기 안에서는 진짜 시간이 느리게 간다. 한 이틀은 지난 거 같은데 6시간이 겨우 지났다. 비행기 바퀴가 지면에 닿으려면 아직도 3시간 24분이나 더 가야 한다...고 눈 앞에 있는 무정한 모니터가 알려 준다. 나는 지금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다. 혁신교육지구 지방정부협의회 주관으로 핀란드-덴마크로 해외 연수를 가는 길이다. 덴마크는 2년 전에 다른 주제로 잠깐 다녀온 적이 있지만 ‘교육의 성지’ 핀란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한국을 떠날 때 동료들에게 연수가 아닌 “교육 망명”을 떠나는 거라고 신소리를 했더랬다. ​

비행기 안에서 다양한 구름의 윗모습을 지겹도록 볼 수 있었다.

내가 2013년에 구산동 도서관마을을 제안할 수 있었던 건 2012년, 독일과 프랑스로 주거복지 연수를 다녀 왔던 덕이 컸다. 독일과 프랑스에선 멀쩡한 건물을 때려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물을 짓는 기술보다 리모델링 기술이 더 발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산동에 있는 멀쩡한 8채의 건물을 때려 부수고 도서관을 짓는다고 하길래, 리모델링을 통해 주제별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게 구산동 도서관마을의 시작이 되었다. 최초 아이디어는 내가 제안했지만 ‘도서관 마을’이라는 네이밍은 당시 비서실장을 하고 있던 작명소집 아들 남진우의 작품이다.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지만...

구산동 도서관마을 전경

2017년 11월, 사회적경제 연대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 니오르에 갔을 때 접했던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횡단성(transversity)이라는 단어였다. 대충 내 생각을 버무려 정리하자면... 근대 자본주의를 성장시켜온 다양한 전문성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전문성에 몰입한 결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를 야기시켰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전문성과 전문성을 연결하는 횡단성이 필요하다는 의미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그 후 난 마치 전도사처럼 여기저기를 다닐 때마다 횡단성이 필요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랑 말을 섞어본 사람이라면 횡단성이라는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 보았으리라. 귀에 딱지가 앉은 사람도 몇 있을 것이고... 

얼마전 난 공무원이 실천해야 할 황단성을 한마디로 정리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종인아,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네가 열심히 일할수록 민과의 간극만 넓어져...”

횡단성이 필요한 시대,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 대충 일할 필요가 있다.

요 짧은 글을 쓰는 사이 30분이나 지났다. ㅠㅠ 내가 교육 정책에 발을 들인 후 숟가락을 얹으려고 할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아니라 못이 박히게 들었던 나라가 바로 핀란드고, 학교가 바로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다. 핀란드와 에프터스콜레를 가 보지 않은 자 교육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그 누구도 말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모종의 지격지심이 되어 나를 괴롭혀 왔다. 그래서 마치 교육 정책에 대한 자격증 시험을 보는 심정으로 무리해서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이번 연수에서 대략 3가지 관점을 견지할 생각이다. 첫째는 주체적 관점이다. 연수 오기 전에 얼핏 선행학습 차 읽었던 ‘핀란드 교육혁명’에 ‘핀란드 교육이 발전한 이유는 적은 인구로 척박한 환경에 맞서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대한민국 교육이 개판인 이유는 그래도 국가의 존망에 큰 영향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절박한 의제가 있는 나라들은 모두 국가 차원의 교육 목표가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대한민국은 국가가 아닌 오로지 선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개인의 탐욕과 탐욕이 모여 국가 차원의 교육 목표가 된 것은 아닐까? 성공한 용의 입장에서 개천에 사는 모든 이에게  “따라 올테면 따라와 봐”라고 외치는 교육, 용이 되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개천이 경쟁의 아수라장이 되고 있는 교육 말이다. 암튼 핀란드는 핀란드의 사정이 있고,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사정이 있다. 난 이번 연수에서 핀란드의 교육을 맹목적으로 사대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볼 생각이다.

둘째는 실천적 관점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부러움은 실천의 의지를 꺾는다. 우리는 금방 따라 잡을 수 있는 대상을 부러워 하지는 않는다. 소위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넘사벽인 대상에게 부러운 마음을 갖는다. 로또 당첨자가 부러우면, 당장 이불을 박차고 나가 로또를 사 와야 한다. 그 당첨자는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숫자가 맞기를 자랔ㅅ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불 속에 웅크리고 누워 로또도 안 사면서 당첨을 꿈 꿈다. 연수 과정에서 핀란드와 덴마크의 교육을 마냥 부러워 하지 않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성찰적 관점이다. 우리는 흔히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을 ‘타자화’ 하는데 익숙하다.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는데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성찰하는 개인을 본 적이 없다. (나 빼고... ^^) 그 때 누군가 나의 탓이라고 성찰적 고백을 하는 자가 나타나면 많은 개인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이렇게 생각한다. 휴~ 내 탓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곤 그 성찰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책임을 묻는다. 이 두 심리 현상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거의 동시에 나타날 정도로 우리는 비겁해졌고, 뻔뻔해졌다. 난 핀란드와 덴마크 연수를 통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는 나를 성찰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가 성찰의 기회를 갖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비행 전체 일정을 보여주는 스크린...

가벼운 식사가 나올 모양이다. 시간은 두 시간쯤 남았다. 역시 뭔가를 해야 시간도 간다. 하늘에선 와이파이가 안되는 것 같다. 이 글은 헬싱키에서 코펜하겐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갈아타는 사이에 올릴 예정이다. 밥 먹고 눈이나 좀 붙여 볼까? 시차 적응을 위해...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