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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근대교육의 종말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뭐예요?

내가 서울시교육청에 있을 때,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을 낸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관에서 제작하는 사례집은 주로 '사업 중심' 사례집이다. 난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을 기획하면서... 사업이 아닌 '사람 중심' 사례집을 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바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례집系의 대작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뭐예요?』이다. 

 

그냥, 소소하게 책임 편집으로 이름을 올렸다.


더 늦기 전에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의 기획의도를 밝히고자 한다. 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ㅠㅠ

첫째, 위에서도 언급했듯, 사업 중심 사례집이 아닌, 사람 중심 사례집을 만들고 싶었다. 사례는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참조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사례를 통해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사례의 빛나는 결과만을 '이식'해 왔기 때문이다. 사례는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업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참조'하는 것이다. 사례의 이식과 참조에 대해서는 '사례는 이식하는 것인가, 참조하는 것인가(링크 클릭)'를 '참조'하기 바란다.  


둘째, 사례집에 내가 생각하는 거버넌스의 원리를 의도적으로 우겨 넣었다. 

언젠가는 새로운 민이나 관, 학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정책에 참여할 것이다. 그 새로운 민, 관, 학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사례집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께서' 남북통일을 위해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잡이 노릇을 자처하듯... 소위 거버넌스를 함에 있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의 사례를 가장 먼저 참조할까? 당연히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의 사례를 가장 먼저 살펴 볼 것이다. 즉, 민이면 민의 사례를, 관이면 관의 사례를, 학이면 학의 사례를... 모름지기 모든 인식의 확장은 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관이라면 사례집에 등장하는 관의 사례를 먼저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쓴 사례라면 거부감 또한 적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사례에 등장하는 다른 주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제목은 "민관학이 함께 걸어온 2년의 혁신교육지구 이야기"이고, 저자는 "20개 혁신교육지구 68인의 민학"이다. 난 그것이 바로 거버넌스의 원리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나의 졸고 '아케이드 관점에서 바라 본 거버넌스(링크 클릭)'를 참조하기 바란다. 


셋째, 별 건 아니지만, 관 냄새가 덜 나는 단행본 스러운 사례집을 만들고 싶었다.

먼저 표지를 살펴보자. 표지는 2016년 1년 동안 20개 혁신교육지구에서 진행했던 다양한 행사의 웹자보를 마치 벽지처럼 이어붙였다. 그리고 그 위를 투명한 종이로 덮은 후 구멍을 뚫어 사례집의 제목을 썼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뭐예요?"


제목에는 고급지게 UV코팅을 입혔다. ㅋㅋ


여기까지가 사례집의 기획 의도였고... 내가 만약 기획만 해 놓고 누군가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누가 비아냥거린 것과 다르게 난 교육감의 은총과는 무관하게 설시굑청에 어공 따까리 주무관으로 들어왔다. 전에 있었던 구청의 잘난 보좌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획부터 실무, 실무의 따까리까지 혼자 감당해야 했다. 오죽하면 구청에 있을 때 내 따까리(?)를 해 주던 윤종인 주무관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겠는가! 내가 구청에서 우아하게 정책을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밑에서 열심히 오리발질을 마다하지 않았던 윤종인이라는 공무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기획 의도에 맞게 사례를 모은다는 게 사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샘플 원고를 쓰고,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사례를 모아달라고 자치구에 공문을 보냈다. 바쁜 와중에도 여기저기 독촉해 사례를 챙겨준 자치구의 담당 주무관님들께는 매우 죄송한 말이지만, 그렇게 해서 접수된 사례 원고는... 그나마 영등포혁신교육지구에서 보내온 사례를 제외하면 쓸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난 20개 혁신교육지구에서 내 의도를 이해해 줄 분들을 일방적으로 정해 다이렉트로 연락을 했다. 그래서 그당시 내 노트북에는 늘 20개의 카톡 대화창이 열려 있었다. 원고가 들어온 지구는 대화창을 하나씩 닫아가며 원고를 독촉했다. 차라리 내가 다 쓰고 말지... 누군가에게 원고를 독촉하는 일은, 그것도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무려 20명... 그 20명은 또 자기 지구의 민관학 주체들의 원고를 독촉해야 했으니... 얼추 원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끝끝내 원고가 들어오지 않은 곳은 나랑 같은 어공인 대변인실 권혜진의 도움을 받아 시민 기자단을 섭외해 직접 인터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원고에 맞는 사진 자료를 모으고, 디자인 편집에 들어가면서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쉬운 프로젝트라도 복병은 늘 존재하는 법! 연말이 다가오자 재정과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빨리 마무리 하고 대금 지불까지 마치라고 독촉이 왔다. 이런 분야에서 법을 집행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한마디로 유두리가 없다. 거기다가 추상같은 재정과 담당자가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도 모를 어공 따까리 주무관의 말을 들을 리 없다. 옆자리에서 행정 업무를 도와주던 주무관은 재정과에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며 복지부동...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왜 없겠는가! 과에서 서무를 맡고 있는 나이 어린 임은주 주무관이 내 모습이 하도 딱했는지 재정과에 사정해 일정을 며칠 미뤄 주었다. 첫 직장에선 3일 밤낮을 한 숨도 안자고 꼬박 세운 적도 있지만, 오십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시간에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밤샘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그 때 쓴 페북글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례집은 나왔고,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 사례집이 어떤 산고 끝에 나오게 되었는지...

암튼 그 와중에 내가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해 썼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썼다는 흔적을 남길 수 없었던 글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글쓴이가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 편집부'라고 되어 있지만, 편집부는 개뿔... 그 편집부가 바로 나다!

그리고 총 3장으로 나뉘어진 일본말로 '도비라'의 시작글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책 만들고, 글 쓰느라 열나 고생했으니, 제발 10분만 투자해서 읽어만 주시라...

댓글이나 공감까지 눌러주면 베리베리 땡큐고...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을 펴내며

2015,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경계를 넘어 마을과 학교의 분업이 아닌 협업의 방식으로 당면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한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지난 2년간의 시험 운영(?) 마치고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있습니다. 그동안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중앙이나, 다양한 변수와 싸워가며 정책을 추진하고 집행해야 하는 현장이나 이루 말로 표현할 없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과정에서 서로를 변화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마을과 학교가 비로소 교육이라는 배를 타게 되었고, ·· 거버넌스가 새로운 교육의 주체로 등장하는 성과 또한 없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2015 서울형혁신교육지구는 경쟁 공모 방식을 취하면서 과도한 경쟁으로 비롯된 교육의 문제를 자치구 경쟁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다소 모순된 방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자치구들이 혁신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 동안 서울의 25 자치구 20 자치구가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 참여하는 예기치 않은흥행 거두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정책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학을 만족시켜주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거슬러 서로 아무런 소통도 이해도 없었던 2 ··학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충분히 느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은 경쟁 방식을 버리고 지정에 의한 신청으로 공모 방식을 바꾸었고, 미흡하나마 하향식 정책 관성에 상향식 의사 전달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으며,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일반자치와 교육자치, 마을과 학교 사이에 이해가 확대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례집을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에서 어떤 사업이 펼쳐지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밝혔듯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진정한 성과는 사업이 아니라 사업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학의 거버넌스 경험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교육청 장학사의 시야는 학교를 넘어 마을로 향하게 되었고, 순환보직을 통해 교육관련 부서에 배치된 자치구청 주무관은 교육과 거버넌스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민은 제도에 묶여 있는 관의 처지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관은 민이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열정을 행정에 반영하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를 우리나라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이식 오고 싶은 충동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빛나는 성공 사례 이면에는 우연에 기인한 특수성과 주체들의 노력이라는 필연의 과정이 숨어 있습니다. 성공 사례를 이식해 오면서 고단한 과정이 아닌 빛나는 결과만을 섣부르게 취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례라고 할지라도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에 직면하게 것입니다. 성공한 사례는 과정 속에 다양한 문제와 실패의 경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정 참조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 맞는 빛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 2년의 경험을 담은 사례집은 마을과 학교의성공 아닌성장 기록입니다. ·· 거버넌스의결과 아닌과정 기록입니다. 모쪼록 사례집이 그동안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함께 가면서 어려움을 헤쳐온 서울시 20 혁신교육지구의 ·· 담당자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험난한 과정에서 생긴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할 있으면 좋겠습니다. 걸음 나아가 아직은 어렴풋하게 있는 혁신교육의 길로 접어든 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줄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현재진행형이며, 길에 많은 ··학이 함께할 있기를 기원합니다.


-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사례집 편집부 



1장, 마을과 학교의 협력이 시작되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관료사회를 표방하며 건국한 조선은 나라를 경영할 관료를 선발하기 위해 과거제도라는 시험을 통해 신분 상승을 위한 좁은 문을 귀족이 아닌 평민에게까지 열어 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빗대어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비루한 개천이고, 개천을 탈출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교육이 과연 올바른 교육일까요? 

서울형혁신교육지구는 마을 속에 존재하는 학교가 이상 개천을 탈출하기 위한 등용문이 아닌, 맑고 아름다운 개천을 만들고, 개천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어놀 있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마을과 학교는 서로를 위한 성장의 지렛대가 되고,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배움을 영위할 있는 터전이 것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이전의 학교는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교육복지 사업의 확대와 혁신학교 운동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학교의 대표적인 노력입니다. 하지만 마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학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시 중심의 경쟁 교육의 관성은 계속되었고, 사교육비 증가로 인해하우스 푸어 이어에듀 푸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마을에서는 공교육의 보완이 아닌 대안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공동육아, 대안학교 제도의 지원을 포기한 학교 울타리 밖에서 파편적으로 교육의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누구도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과 학교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보자고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이전에 교육의 문제를 대하는 마을과 학교의 태도였습니다.

2017 서울형혁신교육지구 주요 운영 방침 연구를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81%(6,357 5,238) 마을과 학교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 2년을 지나며 적지 않은 교사들과 마을이, 그리고 혁신교육지구가 교사의 업무를 가중시키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마을과 학교가 협력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동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한 자리에서 학교 교육과 혁신교육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시간에도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학교 교육과 혁신교육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학교 교육 VS 혁신교육 

개천에서 용 나는 교육 VS 개천을 행복하게 만드는 교육 

자신을 부정하는 교육 VS 자신을 긍정하는 교육 

경쟁하는 교육 VS 협력하는 교육 

남과 비교하는 교육 VS 자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비교하는 교육 

선발을 위한 교육 VS 성장을 위한 교육 

아이만 성장하는 교육 VS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교육 

지금의 내가 결과인 교육 VS 지금의 내가 과정인 교육


혁신교육은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해 마을과 학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입니다.


2장, 협치에 구체성을 더하다. 민・관학 거버넌스

··학의 생각과 행동이 완벽히 일치한다면 우리는 굳이 ·· 거버넌스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각자 다른 역사와 다른 경험에서 비롯된 서로 다른 관성을 갖고 있지만, 그중 어떤 열등한 1 다른 우월한 1 흡수되어 1+1+1 결국 1 되는 것은 진정한 거버넌스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가진 1 더해져 때로는 서로의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때로는 장점과 장점이 만나 무한한 가능성이 되는 창의적 거버넌스가 필요합니다.

2015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필수 과제 하나였던· 거버넌스 구축 지원 사업 사업이 진행되는 사이 자연스럽게·· 거버넌스 구축 지원 사업으로 개념이 보다 구체화되었습니다. 그것이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성과인지,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인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지의 결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든 · 거버넌스의 논리는 ·· 거버넌스와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교육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교육주체 생각과 교육의 결과가 만들어 놓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교육객체 생각의 차이가 어쩌면 민과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보다 훨씬 크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민과 관과 학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습을 만약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왼쪽과 같은 그림이 되지 않을까요? 학은 과잉된 교육에 대한 기대로 인해 교육을 완전무결한 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일반적으로 관은 교육을 밋밋하고 단순한 평면으로 인식합니다. 일반행정에서 바라보는 교육은 건설, 교통, 문화, 복지 다양한 행정 분야 하나일 뿐입니다. 현재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되어 혁신교육지구를 담당하고 있는 과장, 팀장, 주무관은 교육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보직을 순환하며 돌다가 우연히 자리에 앉게 것뿐입니다. 그리고 교육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고 있는 민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습은 울퉁불퉁하고 정확한 형체가 없습니다. 장님이 자신이 만진 부분을 일반화시켜 코끼리의 모습을 상상하듯, 교육 거버넌스의 당사자인 민과 관과 학은 각자 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교육의 모습을 우리 사회의보편적인교육의 모습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래서 교육 거버넌스가 내딛어야 첫걸음은 지금까지 교육을 바라보고 있었던 자신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민과 관과 학이 함께 느끼고 있는 교육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모습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교육에 대한 다른 인식과 가치와 지향을 가지고 있던 민과 관과 학이 처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서툴고 갈등도 있지만, 지금 보고 있는 ·· 거버넌스의 모습은 결과가 아닙니다.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키기 위해 흔들림을 멈추지 않듯이, ·· 거버넌스라는 나침반은 앞으로도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릴 것입니다


3장,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입니다

인간은 유아기와 아동·청소년기를 거치며 인류가 수천 동안 이루어낸 진화와 문명화의 과정을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 함축적으로 학습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 아마 인류에게 있어 가장 영향을 미친 교사는 바로 자연일 것입니다. 발전을 거듭해 과학문명의 관심이 인간이 딛고 있는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고 있는 21세기에도 자연은 마치 교실에서 말썽을 부리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엄격한 교사처럼 여전히 인류에게 두려운 존재입니다. 

자연의 일부에서 비롯된 인류가 자연에서 벗어나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인류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떠한 규칙도 읽어낼 없는 자연에게 신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처음에는 경외로움 자체였던 자연의 거대한 섭리 속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인류는 자연을 이용할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의 축적이 인간의 문화가 되었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을 이용하기 위해 자연을 관찰하고, 관찰한 자연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교사가 자연이고, 인류가 자연의 가르침 속에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면, 인류의 역사는 자체가 하나의 장대한 교육과정이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교육과정과는 다르게 인류의 역사라는 교육과정은 교사인 자연이 아닌, 학습자인 인간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교사인 자연 앞에서 보통은 겸손한 자세를 취했지만, 때로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처럼 반항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성장의 바퀴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학습자의 본분을 망각한 인간의 그러한 태도는 이따금씩 자연의 분노를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지만, 과정 속에서 인류는 당당한성인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인류가 인간의 내재적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자의 주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요? 한때 토관과 신토(土官과 紳土)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던 영화, 사관과 신사(士官과 紳士) 생각해 볼까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교사라는 우월한 지위에 있던 하사는 자신에 의해 우월한 존재인 장교로 성장한 리처드 기어에게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교육을 교육 제공자의 입장이 아닌 학습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의 창의적인 성장 가능성에 경의를 표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교육 문제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주도해 인류의 교육과정과는 다르게, 학습의 모티브를 제공할 뿐인 교육 제공자의 주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는 교육의 주체는 학습자인 학생이고, 교사는 지원자 또는 협력자일 뿐이라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검증된 공식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때는 아닐까요?


서울형혁신교육지구를 통해 학생들은 그동안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에 억눌려 왔던 자신들의 생각을 하나씩 펼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혁신교육지구에서 청소년의회를 구성하여 학생들도 사회의 당당한 주인임을, 나아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할 있는 주체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의 필수과제인 마을과 학교의 협력, ·· 거버넌스의 구축은 교육을 통해 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고 과정이 것입니다. 서울형혁신교육지구가 지향하는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학생이 교육의 주체가 되고, 사회를 구성하는 당당한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입니다.


이상 넋두리 끝!!! @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