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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교육/교육에 대한 엉뚱한 질문들

1부 서문,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by Back2Analog 2019. 3. 3.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마 아이들이 태어나서 말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받게 되는 최초의 질문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러한 프레임 안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딸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육아 노동에서 다소 벗어날 수밖에 없는 아빠 입장에선 정말 궁금하긴 하다. 자신의 아이가 아빠인 나를 더 좋아하는지, 아니면 늘 곁에 있는 엄마를 더 좋아하는지…. 이렇게 우리는 의도와 무관하게 이미 짜여진 프레임 안에서 삶을 시작한다. 아이가 출제자가 원하는 대답을 한다고 해서 그 유치한 질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부모는 오히려 신이 나서 더 자주 질문을 반복할 것이다. 만약 아이가 출제자의 의도에 반하는 대답을 한다면? 이번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고 싶은 출제자가 같은 질문을 반복할 것이다. 반복된 질문에 지친 아이는 시나브로 타협과 절충을 배워간다. 


“둘 다 좋아.” 


아이들이 쿨하게 “둘 다 싫어. 난 내가 좋아.”라고 얘기한다면 부모가 같은 질문을 반복 할 수 있을까? 만일 당신의 아이가 주어진 보기 밖에서 답을 찾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영재 교육을 알아보기 바란다. 그 아이는 인류가 풀지 못한 숙제를 풀 천재일지 모른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주어진 보기 안에서 답을 찾도록 반복적으로 훈련 받는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주어진 답이 이미 있고, 그 안에서 답을 찾으면 되는 시대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럴까? 그리고 미래도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과거에 강산을 변하게 했던 주기인 10년을 현재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 1년? 한 달? 하루? 아니면, 1초? 씨앗을 뿌리고, 적당히 물을 주고, 햇볕을 잘 받게 해 주면 그 씨앗은 시간이 지나 열매라는 결과를 우리에게 돌려준다. 적어도 씨앗을 뿌리는 현재의 노동 행위를 통해 우리는 열매를 수확할 미래를 예견한다. 그 예측 가능한 미래가 바로 현재 노동 행위의 동기가 된다. 농경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소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었던 사회는 그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현재 바로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1초 뒤 네이버 실검 1위에 어떤 단어가 올라갈지 예측할 수 있는가? 당신의 아이가 스마트폰을 통해 BTS의 Army가 될지, 트와이스의 Once가 될지, 그리고 그들로부터 언제 벗어나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가?[각주:1]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보다 더 극심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을 위해 보기 밖에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미래의 답은 늘 보기 좋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보기를 무시하니 말이다. 

주어진 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교육에 대한 엉뚱한 질문을 하기 전에 틀에 박힌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 보겠다. 


“지식이 중요할까, 관점이 중요할까?” 


천재가 아니더라도 앞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출제자가 원하는 답이 둘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 챘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가 원하는 정답은 “지식도, 관점도 중요하지 않다”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하고 있고, 주로는 과거라는 권력에서 허우적거리며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적당히 지식과 관점을 섞어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정도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전엔 너도나도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며, 누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널린 게 바로 지식이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손 안에 늘 붙어 있거나, 시야에서 벗어나면 불안해지는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 세상의 모든 지식에 접속할 수 있다. 그래서 사라진 것이 있다. 바로 ‘지식 내기’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다식이)은 가끔 자신의 지식을 뽐내다 실수를 하기도 한다. 많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한 가지 지식을 가진 사람(일식이)은 그 실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지식 내기를 제안한다. 


다식이 : 일찍이 안창호 선생님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셨지.

일식이 : 웃기시네~ 그건 안중근 의사가 한 말이거든!

다식이 : 이런 무식한 놈, 안중근 의사는 하얼삔역에서 이또 히로부미를 저격하신 분이고! 그 말을 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국개몽운동을 하셨던 안창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야. 

일식이 : 좋아! 그럼, 우리 내기할까?

다식이 : 그래, 너 잘 걸렸다. 10만 원 빵?

일식이 : 오케이, 코올~


오랜만에 만난 다식이와 일식이는 각자 정답을 확인한 후 다음에 만나 내기에서 진 사람이 술을 사기로 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요즘엔 이렇게 가슴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지식 내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식이 : 일찍이 안창호 선생님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셨지.

일식이 : 웃기시네~ 그건 안중근 의사가 한 말이거든!

다식이 : 이런 무식한 놈, 안중근 의사는 하얼삔역에서 이또 히로부미를 저격하신 분이고! 그 말은 일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국개몽운동을 하셨던 안창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야. 

일식이 : 좋아! 그럼, 우리 내기할까?

다식이 : 내기? 자… 잠깐만…, (스마트폰을 검색을 한 후) 어? 안중근 의사가 하신 말씀이 맞네?


니체는 중세를 벗어나 근대들 향하고 있는 어느 날, ‘신은 죽었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근대에서 벗어나고 있는 현재의 어느 날인 오늘, 인간이 죽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인류는 버젓이 살아 그들을 위한 번영을 거듭하고 있으니, 대신 인간이 발견하거나 만들어 낸 모든 지식이 죽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통해 중세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면, 난 지식의 죽음을 통해 근대의 가치를 허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그 양을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만 의미가 있었다. 만약 10개의 유한한 지식 중 8, 9개의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지식의 양으로 인간의 지위를 결정해도 좋다. 한발 물러나 지식의 총량을 특정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어도 그 중 가장 많은 지식을 소유한 이에게 기꺼이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2017년을 기준으로 매년 16ZB[각주:2]의 데이터를 생산해 내고 있다. 하루에 482억GB, 초당 56만GB, 이를 영화 파일의 데이터 크기로 환산하면 1초에 영화 28만 편이 탄생하고 있는 셈이다.[각주:3]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매초마다 데이터 빅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의 집합체인 데이터가 무한 확장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이 소유한 지식의 양이라는 것은 얼마나 하찮은가? 10중 8,9가 아니라, 무한대의 지식 중 8,9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아무리 사소한 자격이라도 줄 수 있겠는가!

니체가 말했다고 신이 죽은 것은 아니듯, 하찮은 내가 지식이 죽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존재는 하되 죽어 있는 지식에 생명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지식에 대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주전자 안에서 끓고 있는 물이 100도씨가 넘어 기체로 변하고, 부피가 늘어난 기체가 주전자 뚜껑을 들썩이게 한다는 사실은, 수증기의 팽창하는 힘을 이용해 기계를 움직여야겠다는 관점이 있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지식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교육에 대한 엉뚱한 질문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 추호의 의심도 할 수 없는 교육이라는 지식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나는 교육을 다음의 세 가지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볼 것이다. 첫째, 인류의 문명을 여기까지 성장시켜온 전문성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볼 것이다. 둘째, 교육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에 걸맞게 교육의 문제를 보편적인 사회문제의 관점으로 접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 교육을 교육의 체계 안에서 자기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밖의 관점에서 외부 서술할 것이다. 


다시 글을 시작했던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딸들에게 했던 유치한 질문을 멈추게 된 것은 어느 날 둘째 딸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고나서부터이다. 

“아빠, 언니가 좋아, 내가 좋아?”

@Back2Analog

  1. Army는 방탄소년단의 공식 팬클럽, Once는 Twice의 공식 팬클럽 이름. [본문으로]
  2. 1ZB(Zeta Bite) = 1021bite, 1GB = 109bite, 1TB = 1012bite [본문으로]
  3. 연합뉴스 “'데이터가 곧 자산'…1초에 56만GB 생성”. (2017/7/15). (http://bitly.kr/Se2S)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