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문화+교육/교육에 대한 엉뚱한 질문들

1부 2장, 사회문제로서의 교육

by Back2Analog 2019. 3. 3.

교육문제가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문제 중 하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범죄, 자살, 성 평등, 세대, 환경문제 등 수없이 다양한 사회문제 중에서도 특히 교육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는 첫째, 당면한 삶과의 밀접한 연관성, 둘째, 교육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셋째,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교육에 바라온 특별한 기대 때문이다. 

첫째, 가장 일반적인 사회문제인 범죄의 피해는 필연보다는 우연의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자살 또한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사회문제지만, 그 심각성은 피해의 범위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심리적 충격에 있다. 성 평등, 세대, 환경문제 등은 그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이나 관점에 따라 다분히 심각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회문제이다. 교육문제는 여타의 사회문제에 비해 가장 밀접하게 삶과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남녀와 노소를 막론하는 가장 구조적이면서 범위가 큰 사회문제이다. 

둘째, 교육문제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사회문제로 이어진다. 위에 언급한 자살문제를 청소년으로 제한한다면 그 원인은 과도한 경쟁교육과 연관이 있다.[각주:1] 입시가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 되고, 갈수록 입시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사교육 문제가 등장하였다. 사교육은 '하우스푸어'에 이어 '에듀푸어'를 양산하고 있다.[각주:2] 공공에서 담당해야할 기본적인 교육의 영역을 사교육이 대체하면서 가정의 소비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사교육을 소비하기 위해 높은 소득이 필요하게 되었고, 소비에 대한 기대와 소득 간의 간극은 다양한 노동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셋째, 교육문제가 우리사회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교육의 주목적이 성장이 아닌 선발이 되면서 교육에 대한 (선발)기대와 교육이 만들어 낸 (선발)결과에 대한 간극이 날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선발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겠지만, 에듀푸어를 감수하고 사교육비에 투자를 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기대한 선발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회적 고통은 행동과 그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과의 격차가 커질 때 발생한다. 행한 바가 실제 사정과 일치하지 않으면 세상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재화와 행운이 부당하게 분배되면 세상은 더 이상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대에 현실이 미치지 못하여 그 '간극'이 커질 때 문제가 생긴다. 간극에서 비롯한 불공정, 불만족, 부정의, 불평등은 고통을 참아내기 힘들게 만든다(전상진, 2014: 20)."[각주:3]

서구의 경우 교육의 선발 기능이 18세기 근대교육을 통해 비롯되었다면, 한국에서는 관료사회를 표방한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1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한영우는 <과거, 출세의 사다리>에서 조선 500년에 걸쳐 배출된 문과 급제자 14,615명의 신분을 조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조선 초기와 중기의 경우 평민 등 신분이 낮은 급제자가 전체 급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태조∼정종(40%), 태종(50%), 세종(33%), 문종∼단종(34%), 세조(30%), 예종∼성종(22%), 연산군(17%), 중종(20%), 명종(19%), 선조(16%) 등이었다. 하지만 인조이후에는 숙종(20%), 경종(34%), 영조(37%), 정조(53%) 고종(58%)까지 올라갔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영의정의 자리에 오른 사람도 있고 판서가 된 사람은 부지기수였다.[각주:4]



한영우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제도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힘없고 외로운 사람들이 오직 공부만으로 출세하는 길을 열어주고 문벌 독점과 횡포를 견제하는 구실을 했다”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의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각주:5]고 밝혔다.

이렇듯 교육에 대한 한국사회의 유별난 기대는 소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으로 귀결된다. 교육을 통하면 누구나 선발될 수 있다는 기대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압축적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마치 유전자처럼 각인된 한국사회의 교육에 대한 기대는 긍정성과 더불어 학벌사회와 입시경쟁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진다.  


본질적 기능에서 비롯된 교육문제

위에서 살펴본 교육문제가 사회문제로서 교육이 가지고 있는 현상적 문제라면, 보다 본질적으로 교육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육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 탓이다. 교육은 인류의 오랜 역사와 문명을 관통하며 성장과 선발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 중 선발 기능은 근대교육의 산물이다. 적어도 혈통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었던 중세 이전 계급사회에서는 교육이 계급상승을 위해 작동하지는 않았다. 즉, 교육을 통해 지배계급을 선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근대교육의 모든 문제가 교육의 선발 기능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발 기능은 근대 초기, 인류가 중세의 암흑기를 탈출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재였다. 나아가 현대 인류가 누리고 있는 빛나는 문명의 성취는 교육의 선발 기능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근대교육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교육이 성장의 기능을 무시한 채 과도하게 선발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이 인류의 숙제이듯, 성장과 선발의 균형은 장차 교육이 풀어야 할 본질적인 과제이다. 

부르주아 혁명에 성공한 시민계급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교육의 선발기능 강화로 이어졌다. "이제 아이들은 여전히 특정한 사회적 환경 - 귀족, 상인 혹은 수공업자의 자식으로서 - 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가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인지는 적어도 "원칙적"적으로 출생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시민계급에게 만연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출생의 원칙 대신에 개인의 업적이라는 원칙이 관철된 귀족계급의 특권은 깨뜨려질 수 있으며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상승도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각주:6] 오직 선발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시민계급에게 루소(J.J. Rousseau)는 교육소설 '에밀'을 통해 "아동은 작은 성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닌 독립된 존재이며, 이러한 이유에서 아동의 현재 삶은 성인의 미래에 의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각주:7]고 주장하였다. 루소의 이러한 주장은 '아동기'의 발견으로 이어지며 선발기능으로 기울어져 가는 교육의 성장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교육문제는 오히려 아동기의 발견을 통해 등장했다. 소위 교육전문가가 아니면 "어떤 것이 아동발달에 도움이 되는지"[각주:8]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나아가 교육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사회의 보편적 구성원이 아닌 교육전문가의 몫이 되었다. "이제 아동은 교육 관련 직업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정당화 근거가 되었으며"[각주:9] 교육전문가로 인해 교육은 사회의 필요성이 아닌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가 "자신을 재생산함으로써 함께 속하지 않는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구별"[각주:10]하는 하나의 독립된 사회체계가 되었다.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앞에서 성장과 선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교육의 본질적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교육문제의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사회적 쓸모로부터 제도화된 교육이, 그리고 교육의 제도화를 통해 교육의 자격을 획득한 교육전문가들의 전문성이 사회의 성장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시도는 1989년 참교육을 기치로 내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건설 운동이었다. 전교조 운동은 1987년 6⋅10항쟁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억눌려 있었던 다양한 민주화의 요구가 한국사회의 다양한 부문별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된 결과이다. 전교조는 10년간의 사회적 진통을 겪으며 마침내 1999년 1월 6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을 국회가 의결하면서 합법화되었다. 하지만 2013년 10월 24일 박근혜 정권에 의해 다시 법외노조가 되기까지 외적으로는 보수 성향 단체들로부터 다양한 이념 공격에 시달렸고, 내적으로는 한국사회가 노동조합에 요구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역할과 교육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조합원들의 요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지 못하면서 전교조는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교육개혁을 위한 핵심동력으로서의 신뢰를 잃어 가고 있다.

전교조 건설 운동은 한국의 교육운동 역사에 매우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그 주축이 교육전문가인 교사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동시에 한계를 노정한다. 전교조는 교육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사의 노동조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교조는 교사들의 조합적인 요구인 교육전문성의 보장 및 확대를 위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철이 니클라스 루만의 책, 『사회의 교육체계』를 소개하며 밝힌 바처럼 “모든 체계는 맹목적으로 자기(재)생산에만 몰두”[각주:11]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육문제로 인해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계층은 소위 교육의 3주체라고 불리는 학생, 교사, 학부모이다. 그 중 학생은 교육 주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교육에 대한 그 어떠한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가장 철저한 객체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교육학에서 교육의 3요소를 교육의 주체(교육자)와 객체(피교육자), 그리고 매개체(교육 내용)로 구분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교사는 전교조 운동을 통해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에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해방 이후 누적된 교육의 제도적 문제와 문화적 폐해를 경험한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전교조 운동을 지지했다. 전교조 운동은 이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혁신학교 운동으로 이어진다. 교사들이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의 인정을 받는 교직원 노원조합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면, 학부모는 오로지 선발에만 몰두해 있는 교육의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도의 지원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공동육아와 대안교육 운동은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관련 시민단체들의 집단적인 공교육 불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대안교육 이전에 근대교육의 긍정성과 부정성에 대해 송순재는 "해방 후 근대 교육제도가 도입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중요성이 설파되고, 정치적인 분기점마다 교육개혁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많은 성과를 보았다고 하지만, 한편 그 성과라는 것은 늘 새로운 위기를 담보로 한 것이었으며, 상황은 날로 악화되었다. 성공이라면 교육의 국가의 발전, 특히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고, 문맹을 퇴치하고 교육의 민주화를 기하여 중등교육 이상, 특히 고등교육 인구를 증대시켰고, 따라서 지적인 엘리트 집단 폭이 넓어졌고, 국민 대중은 지적으로 좀더 높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등등의 것인 반면, 위기라면 국가발전 이데올로기 아래 개인을 전체주의적 틀에 복속시켰고, 지식교육만을 추구하여 인간과 삶 그리고 개성을 억제하고 평균화시켰으며, 맹목적 학력주의를 부추겨 얼빠진 교육지상주의만을 확산시켰으며, 경쟁적 인간만을 양산하였으며, 결국 우리가 사회가 미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전망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각주:12]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안교육운동의 유형을 "국가가 주도하는 제도권 공교육 틀을 비판적으로 넘어서려는데 초점을 맞춘 형태와 우리나라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교육 문제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춘 형태"[각주:13]의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해석했다.

논의의 순서로 인한 오해를 막기 위해 첨언하자면, 대안교육 운동이 전교조 운동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교조 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만큼, 역으로 대안교육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전교조의 지지와 연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차후에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Back2Analog

  1. 이세형. 2015. “중고생 자살원인 1위는 ‘성적’... 학업 스트레스 크다.” 󰡔동아일보󰡕 (5/25). http://bitly.kr/byEx (검색일: 2018/5/1) [본문으로]
  2. 윤명미. 2016. “자녀 둔 직장인 44.6% 나는 에듀푸어.” 󰡔한겨레신문󰡕 (6/15). http://bitly.kr/UHL0 (검색일: 2018/5/1) [본문으로]
  3. 전상진. 2014. <음모론의 시대>. 제1판 제2쇄. 문학과지성사. [본문으로]
  4. 최진환. 2013. “조선 초 문과급제 40∼50%가 평민.” <한국일보> (1/21). http://bitly.kr/rDI9 (검색일: 2018/5/1) [본문으로]
  5. 최원형. 2013. “조선시대는 신분이동 역동적인 사회였다.” <한겨레신문> (1/29).http://bitly.kr/SPgx (검색일: 2018/5/1) [본문으로]
  6. 기섹케, 헤르만(Giesecke, Hermann). 2002. <근대교육의 종말>. 조상식 역. 내일을 여는 책. p.28-29. [본문으로]
  7. 기섹케, 헤르만(Giesecke, Hermann). 2002. <근대교육의 종말>. 조상식 역. 내일을 여는 책. p.30. [본문으로]
  8. 기섹케, 헤르만(Giesecke, Hermann). 2002. <근대교육의 종말>. 조상식 역. 내일을 여는 책. p.30. [본문으로]
  9. 기섹케, 헤르만(Giesecke, Hermann). 2002. <근대교육의 종말>. 조상식 역. 내일을 여는 책. p.30. [본문으로]
  10. 루만, 니클라스(Luhmann, Niklas). 2015. <사회의 교육체계>. 이철 역. 이론출판. p.18. [본문으로]
  11. 이 철. 2015. “끊임없이 확장하는 소통의 의미장... 루만의 ‘교육소통’이란?”. <교수신문> (12/23). http://bitly.kr/54b0 (검색일: 2018/5/1) [본문으로]
  12. 송순재. 2006. “한국에서 대안교육의 전개과정, 성격과 주요 문제”. <신학과세계> 56, 156-201. p.158. [본문으로]
  13. 송순재. 2006. “한국에서 대안교육의 전개과정, 성격과 주요 문제”. <신학과세계> 56, 156-201. p.152-163. [본문으로]